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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joon Jan 09. 2022

소룡포든, 소롱포든, 맛있으면 그만이지

만두계의 육즙 대장님


 그런 말이 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문화권에 가도 꼭 있는 음식 중에 하나가 바로 ‘만두’라고. 중국에선 무려 삼국지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만터우’가, 이탈리아에는 무려 깔조네와 뇨끼 그리고 라비올리가, 스페인은 엠파나다, 인도의 사모사. 지구 곳곳에 뿌리내린 그 수많은 만두들 중에 제가 가장 좋아라하고 찾아먹는, 만두계의 육즙 대장님, 소롱포를 먹으러 오늘은 이태원에 왔습니다.


 많이들 ‘소룡포’라고 부르는 이 만두의 정식 명칭은 사실 ‘소롱포’입니다. 20세기에 ‘이소룡의 할리우드 진출을 틈타 글로벌한 인지도를 얻기 위해 이소룡의 이름을 붙여 만들었다’는 썰이 사실은 더 매력적이고 끌리지만, 작은 대나무 통에 쪄냈다 하여 ‘작을 소, 대바구니 롱’의 소롱포가 본명이죠. 하지만 누가 봐도 소룡포가 더 입에 짝짝 붙고, 온갖 육즙과 고기 맛으로 점철된 파워풀한 맛이 이소룡과도 퍽 잘 어울리기 때문에 상당수의 식당에서는 소룡포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동네 중국집에서 ‘작장면 하나요’라고 하지 않으니, 소롱포든 소룡포든 괜찮지 않을까요. 자고로 음식이란 맛있으면 그만이니까요.


 하여튼 간에 이 소롱포는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음식입니다. 정확힌 시기는 기억이 안 나고 찾아보기도 약간 귀찮아서 기억나는 대로 씨부리자면(죄송합니다), 대략 18세기쯤에 전국 유랑을 즐기던 청나라의 황제가 양쯔강 남쪽 지역을 돌다가 소롱포를 접했고, 그 맛에 반해 그때부터 중국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는 설이 있습니다. 뭐 그런갑다…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 소롱포의 조리법을 알게 되면 중국의 방대한 식문화와 기술력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건드리기만 해도 주욱-하고 쏟아져 나오는, 소롱포를 먹는 이유이자 최대의 매력인 풍부한 육즙. 이 육즙은 사실 만두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두소에 특별한 작업을 거친 결과물이죠. 자, 그럼 이 육즙은 어떻게 추가된 것일까요? 위에 있는 동그란 구멍으로 조리 도중에 주입하는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만두소에 따로 젤라틴 형태로 굳힌 닭&돼지 육수를 고체 형태로 넣어 쪄내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최소 4백여넌 전에, 고체 형태의 육수를 넣어 인위적으로 육즙이 터져 나오는 만두를 만들어낸 것이죠.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먹던 소롱포의 감칠맛 나는 육수가 약간은 더 맛있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런 장치가 없어도 충분히 맛있긴 하지만요.


 먹는 방법에서도 소롱포는 특별합니다. 터져 나오는 육즙을 받아낼  있는  숟가락 위에 만두를 터지지 않도록 조오오심스럽게 잡아 올리고, 피를 살짝 찢어 안에 가득  육수를 빼냅니다. 약간 식힌  바로 진한 육수를 호로록 마시고, 바람을 후후 불어 남은 만두피와  위에 생강채를 약간 얹어  입에 넣고 양껏 즐깁니다. 이렇게  개를 먹다가 뒤에 가서는 육수를 따로 빼지 않고 통째로  안에 넣어, 자신의 성급함을 후회하며 바람을 후후 불어대며(보기에는 굉장히 숭하지만) 즐기는 것도 재밌습니다. 아마 지구 상 만두 중에 가장 먹는 법이 복잡하고 그만큼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소롱포  , 사천풍의 국수  그릇, 어향가지에 공깃밥까지. 살인적인 웨이팅을 피하기 위해 엄한 시간대에 미적미적 기어 나와 먹는  끼이지만, 반쯤 잠들어있던 뇌까지 깨워주는 날카로운 맛입니다. 소룡포든 소롱포든 작장면이든 짜장면이든, 맛있는 중식이 사방 천지에 널려 있는 서울에 사는 것이 다시 한번 감사해지는 오후입니다.


-오늘의 식당은 야상해이며, 이태원역 근처 골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최자로드에 소개된 이후로 바글바글해진 집이고 웨이팅 시스템도 없으니, 피크타임을 피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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