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나 백수였지
참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쇼핑을 징글징글하게 좋아했었다.
매번 습관처럼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을 하고 원정 쇼핑까지 하던 턱에, 계절마다 옷정리 하고 안 입는 옷 비워 내는 게 일이었다.
거기서 끝나면 내가 아니지, 먹고 마시는 것은 또 왜 그리 좋아하는지. 특히 치즈나 와인만 보면 환장을 하고 코로나 시절 휴지 쟁이듯이 쟁여댔다. 주량도 형편없는 주제에.
하나, 오늘은 달랐다.
주방 보조 구인 광고 몇 군데 지원 메일을 보내고 나서 우울해진 맘을 달래러 친구와 쇼핑을 나갔다. 세일 막판이니 정말 큰 득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맘에 드는 바지를 골라 입어보고 가격표를 보는데,
헐. 주방에서 20시간을 일해야 세금 떼고 그 바지 값이 나온다고?
조용히 내려놓고 나니 현타가 와서 쇼핑이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커피 마시는 돈도 왠지 아까웠다. 얼마 전 신나게 사재 낀 신발들이 갑자기 후회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며, 낼모레 마흔에 최저 임금 받으면서 일하려고 하는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앞으로 먹고살 일이 걱정되기도 하며 우울함이 나를 덮쳐왔다.
잠깐, 그런데 나는 그 돈조차 못 벌고 있지 않은가?
백수인 나의 시급은 0원 아닌가.
(사진출처: highonfilms.com. 문제시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