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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파리 Aug 05. 2021

거쳐 가려고만 했던 도시에서 만난 뜻밖의 선물

스페인 사라고사

사라고사를 가기로 한 건 순전히 비행기가 타고 싶지 않아서였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한 번에 가려면 비행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정말 비행기가 싫다. 대륙을 건너가는 거 이외에는 정말 비행기가 타기 싫었다.

어차피 긴 여행이라 시간도 많으니 버스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안 가 본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기 때문에...

나의 경로는 그렇게 포르투 - 살라망카 - 사라고사 - 바르셀로나로 정해졌다.


여행 중에 경로가 정해졌으니 정보를 검색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슬슬 모든 게 귀찮을 시점이었다. 다시 또 새로운 도시의 볼거리와 가 볼 만한 곳을 찾아보고 거기 가는 법과 교통편을 알아보고 일정을 짜고 하는 것들이 너무 귀찮아졌다.

그냥 쉬어가는 도시로 생각하고 도착해서 발길 닿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그게 또 여행의 묘미니까!


그렇게 포르투에서 6시간 20분 버스를 타고 살라망카에 도착... 2박을 하고 

살라망카에서 2시간 버스를 타고 마드리드에 도착 후 환승을 하여 또 4시간 버스를 타고 사라고사에 도착하였다.

(살라망카에서 사라고사까지 직행버스도 있었는데 7시간이라는 시간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환승을 했건만 이것이 실수였다. 표를 예매하고 보니 환승하려는 터미널이 다른 곳이었던 것! 마드리드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 후 다른 터미널에 가서 사라고사로 가는 버스를 타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다.)

어쨌든 여기 사라고사에 도착해서 2박 3일을 머무르기로 했다.


스페인의 사라고사는 정말 큰 도시였다.

버스터미널이 같이 있던 기차역의 스케일이 남달랐다. 최근에 완공된 거처럼 보이는 기차역은 굉장히 크고 내부가 깔끔했으며 슈트와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 이용객들이 많았다. 이 역에서 구시가지까지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걸릴 만큼 큰 도시였고 가는 길에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굉장히 현대적이었다.


숙소는 일단 올드타운 광장 근처로 잡았다.

오랜만에 호스텔의 1인실을 방으로 잡았는데 쏘~ 스윗한 호스텔 주인장이 주변에 가까운 맛집들을 알려 주었고 덕분에 나는 그날 저녁 정말 맛있는 로컬 타파스 집을 갈 수 있었다. 맥주잔과 타파스가 내 머리 위로 왔다 갔다 하고 퇴근길의 수다를 떨며 서서 한 잔 하는 현지인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bar에 혼자 앉아 있던 나는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그렇게 태연한 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거기에 있던 사람들 중 아무도 내가 그 속에 있는 걸 이상히 여기지 않았고 주인장도 활짝 웃으며 여기 온 걸 환영해~라는 느낌으로 신경 써서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쭈뼛쭈뼛 어색해하면 정말 분위기가 이상해질 정도였다^^


일단 무작정 구시가지의 광장으로 갔던 다음 날. 

유명한 <필라 성모 대성당> 앞에 있는 안내센터부터 들렀는데 버스 시스템에 관해 물어보러 들어갔다가 정말 매우 매우 훌륭한 지도와 팸플릿을 받았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얻으니 안내센터에 들러 지도나 팸플릿을 잘 안 챙기지만 옛날에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현지 지도부터 받는 게 국룰 아니었던가?!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적 방법을 종종 이용하는 나는 이런 발견이 너무나 즐겁다.


지도에는 볼거리들이 그림과 번호로 지도에 잘 표시되어 있었고 각각 볼거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는데 놀라운 건 지난번 포르투의 마토지뉴스에서처럼 가볼 만한 건축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도를 살펴보면 이슬람 양식의 알하페이라 궁전만 좀 떨어져 있고 문화유적과 미술관 박물관등이 타원형의 구시가지에 다 몰려 있었다. 그런데 저 작은 구도심안에 볼거리가 어찌나 많은지 정말 깜짝 놀랐다.

조금 자료를 찾아보니 사라고사는 스페인 북동부의 주요 도시이며 이름도 멋진 아라곤 자치지방의 수도라는데 역사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었다. 찾아본 정보로 몇 자만 적어 보면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 북부를 점령하였을 때 여기를 군사기지로 발전시켰기 때문에 로마 유적도 많고 이후에는 무어족의 지배를 받다가 또 이베리아 반도가 통일이 될 때까지는 이름도 멋진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문화유적이며 박물관들이 널려 있고 게다가 화가 고야의 고향이어서 고야 박물관과 함께 미술관도 많은...... 그야말로 역사가 깊고 문화와 건축양식이 풍부한 그런 도시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나 같은 역. 알. 못이 몇 줄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화와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




아무튼 첫날은 팸플릿을 보며 구시가지에 있는 볼거리 중... 몇몇을 선택해 유적지와 명소들을 하루 종일 돌아다녔고 이런 사진들을 남겼다.

가장 유명한 <필라 성모 대성당>

성모 마리아가 기둥을 주면서 이 위에 교회를 세우라고 했다는 그 성당.

지붕의 모자이크는 색다르게 이뻤고 이 성당 탑에서의 전망과 Puente de Piedra 다리에서의 전망은 장시간 버스여행으로 쌓여 있는 여독을 풀어 주려는 듯 선물과도 같았다.



팸플릿을 받았던 그날 나는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숙박을 하루 더 연장했다. 

팸플릿을 체크하면서 본 건축물들을 하루를 더 투자해서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의외의 건축물을 하나 발견했는데......

응??? 자하 하디드 설계 작품이 여기에 있다고?! 그럼 또 안 보러 갈 수가 없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조차도 완공된 후 한참 있다가 볼 만큼 주류 건축가에 관심이 없다지만 자하 하디드 작품 중 하나가 이 도시에  있다니 하루쯤 더 시간을 내어서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참 안 좋은 병인데 우리나라에 있는 건물은 안 찾아가면서 외국에서 여행하다가 발견하면 기를 쓰고 보러 간다는......ㅠ.ㅠ)




Pabellón Puente

브리지 파빌리온


다음 날.

그래 여기를 가보자... 정보는 없지만 가서 일단 한번 보자! 라는 생각으로 가는 길에 팸플릿에 있던 다른 건물도 몇 개 보기로 했다. 하지만 가는 길에 보았던 건물들은 사진도 거의 안 찍을 만큼 인상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커피나 한 잔 하려고 들어갔던 카페에서 난 눈물이 날 뻔했다.

관광지 이외에는 동양인이 한 명도 안 보이고 영어도 잘 안 통하는 이 생경한 도시에서 나도 모르게 경직되어 있었는지 커피를 주문하려고 말을 꺼내는데 직원분이 벌써 내 마음을 잘 알겠다는 듯이 "괜찮아~ 어려워하지 말고 이야기해~"라는 표정으로 너무나 다정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눈빛과 표정으로 토닥토닥해주는 느낌! 주문을 받고 거스름돈을 줄 때에는 잔돈을 내 손에 꼭 쥐어 주면서 또 따스한 미소를 지어 주는데 정말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날 뻔...ㅠ.ㅠ

어제 타파스 집에서도 그렇고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어쨌든 이 사람들 왜이케 나를 감동시키는지!

덕분에 사라고사는 지금도 나에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로 남아 있다.


그렇게 카페 언니에게 힘을 받고 이제 버스를 타고 자하 하디드 설계의 보행자 다리로 향한다.




가는 법 : 사라고사 기차역에 가까이 있어 걸어갈 수 있지만 나는 시내에서 34번 버스를 타고 제일 가까운 정류장에 내려서 걸어갔다. 간혹 구글이 안내해 주는 도보길이 차로를 막 지나가야 한다거나 걷기 어려운 길을 안내해 주는 경우가 있어서 걱정했는데 버스정류장에서 굉장히 가까웠고 기차역에서도 큰 도로를 건너가야 했지만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조금 걸어가니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거 뭔가 좀 이상하다. 

이 적막감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렇게 인적이 없을 수가 있지? 의문을 가지고 다리 앞으로 갔더니 세상에나 무슨 보행자 다리가 운영시간이 있냐! 다리는 철창 같은 문으로 닫혀 있고 그 앞에 운영시간이 적혀 있었다. 오후 오픈 시간은 5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를 투자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수 없고 가까운 기차역에 가서 쉬고 놀다가 시간 맞춰 다시 오기로 했다.


기차역에서 놀다가 다시 다리를 보러 갔다. 단지 보행자 다리일 뿐인데 양 끝에 경비가 서 있었다. 내가 다리를 향해 걸어갈 때부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난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 다리가 뭐라고 나는 오픈 시간까지 기다려서 여기를 찾아왔으며 경비는 왜 나를 저렇게 째려보는 건지... 갑자기 현타가 와서 헛웃음이 막 나왔다ㅎㅎ


다리 내부의 모습은 상당히 유기체적이었는데 외관은 우주선 같기도 하고 내부는 에일리언 같기도 하고...

브릿지의 형태는 글라디올러스라는 꽃 모양을 시뮬레이션했다고 하는데 나는 왜 외계인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지ㅋ. 이 다리에 대해서 자료를 더 찾아보았으나 언제 지어졌고 규모가 얼마고 등등의 별로 의미 없는 정보밖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브릿지의 길이는 짧았고 이용자 수는 극히 적었다. 실제 이동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정말 어쩌다 한 명 지나갈까 말까 였다. 

(지금은 아예 폐쇄 중이고 완전히 내부로 만드는 공사를 한 다음 모바일 센터로 이용하려 하는 것 같다.)



페인트는 벌써 벗겨지고 마감은 깔끔하지 못했다. 역시 모든 게 과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기이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 건 참 탁월한 능력인 것 같다.




첫날 도착했던 기차역도 왜 그렇게 멋진가 했더니 여기가 바로 2008년 엑스포가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물, 고유자원 > 이런 주제로 당시 엑스포를 열기 위해 기차역, 브릿지 그리고 건너에 조성된 지구까지 전부 엑스포 때문에 개발된 곳이었다. 그래서 다리 중간에는 전시를 위한 공간이 있었는데 다른 섹션은 들어가 볼 수 없었고 중앙통로 이외에 이 전시공간만 볼 수 있었다.



참 이런 분위기의 공간을 만드는 데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자하 하디드는...!

쉽게 볼 수 없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 하지만 역시나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이 다리의 공사비(3500만 유로)는 너무 비싸서 그 활용에 대해 논란이 있나 보다. 



다리를 건너가 보니 이런 건물들이 등장해서 당시에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래 저 건물이 컨벤션센터였고 멀리까지 뭔가 조성되어 있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쓰레기가 굴러 다니는 것 같은 적막감... 내가 갔던 당시에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죽은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돈을 많이 들였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는. 내가 가 보았던 엑스포 지구 중에 가장 활발했던 곳은 리스본의 엑스포 지구였다. 내가 갔던 날이 주말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리스본의 엑스포는 도시의 온 가족이 나와서 즐기고 있는 듯한 그런 활발함이었다.



정말 사람 한 명 안 다니고 어떤 움직임도 안 보이던 엑스포 지구


다리의 외관 형태는 이렇게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외관의 사진을 찍을 때에도 양쪽의 경비분들은 나와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는데 다행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좀 민망했을 뿐...




실제 비늘을 모티브로 설계했다는 저 외부 패널이 당시에는 금속인 줄 알았지만 섬유보강 콘크리트 패널이었네. 중간중간 삼각형의 유리가 끼어져 들어가 있고 외관의 형태는 처음 설계보다 단순해진 듯하다.


 오전 오픈 시간이 지나고 도착을 해서 저녁에야 본 브릿지는 이날 하루를 전부 투자했는데 공친 시간이 더 많았다. 이젠 자하 하디드가 세상을 떠났으니 실제로 본 건축물이 하나 더 있다는 거에서 의미를 찾아야겠다. 

우리나라에 있는 건축물들은 잘 찾아가지 않는 병도 좀 고치고 DDP나 한 번 제대로 찾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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