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갔을 뿐
아픈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름의 투병이었다 .
지난 나흘이 나에게는 그랬다.
권태감, 나른, 무기력감.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안먹던 감기약을 먹었을 때 그랬던 것 같고,
술을 딱 알맞게 먹었을 때 그랬던 것 같고,
추운 날 할머니 냄새나는 아랫목에 뛰어들었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통의 자발적 게으름과는 다른 것 이었으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가 더 알맞다.
그렇게 나흘이 갔다.
지난 주말 48시간 중 35시간을 잤다.
그 동안 꿈에 시달리느라 잠을 굶었나보다.
실컷 잤다.
일요일 저녁이 되자 무언가가 시킨 것 처럼 말끔해졌다.
손 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 힘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채소를 무치고 장조림을 했다.
다 필요해서 일어나는 일이련가.
어쨌든 가드를 올리고!
어제 분명
이런 저런 내용을 열심히 썼는데
사라졌다.
올바르게 적고, 올바르게 저장 버튼을 눌렀다가
마음이 급하게 바뀌어
취소를 눌렀는데 날아갔다.
전의상실.
요즘 자꾸 어설프게 자잘하게 잃는다.
사람도 시간도 글도 기억도.
잃어도 아깝지 않은 것과
잃어버렸으면 하는 것들이 이번 기회에 사라졌으면.
꿈은 좀 덜어내고, 잠을 실컷 자고싶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말은,
괜찮을거야. 잘 될거야.
당장의 짜증이 진짜 중요한 걸 가리게 두지마.
조금씩 조금씩 하다보면 언젠가는 끝날거야.
그럴거야.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자.
이 일이 끝나면 손 끝에 힘을 빼고 푹 자는거야.
배가 고파져 오는 걸 보니, 난 아직 괜찮은가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