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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May 17. 2021

미얀마를 위한 차 한잔

다담잡설(茶談雜說):차마시다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미얀마산 백호은침. 3g, 95도, 윤차-50s-30s-40s-1m-1m30s


지금까지 방문해본 전 세계 여행지 가운데 가장 기이한 장소를 묻는다면, 단연코 미얀마의 수도인 네피도를 꼽겠다. 미얀마의 수도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양곤이 아니라 중부 밀림 한가운데 위치한 네피도이다. 일설에는 미얀마 군부의 무슨 장군이 점쟁이의 말을 듣고 하룻밤 새에 수도를 양곤에서 네피도로 바꿔버렸다고도 한다. 


일 때문에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출장을 다닐 기회가 있었는데 그 덕에 여행 목적으로는 절대 방문하지 않을 곳들을 다녀봤다. 미얀마의 네피도가 대표적이다. 4년 전 여름 미얀마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내심 미얀마의 중심도시인 양곤으로 가기를 바랬으나 정부 관청이 모여 있는 네피도로 가게 되었었다. 


네피도의 첫인상은 "유령 도시" 그 자체였다. 급조한 도시답게 공항부터 사람이 없었다. 타고 내리는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은 한 나라 수도의 국제공항이라니! 공항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고, 직원들이 타고 온 듯한 오토바이만 가득했다. 호텔로 가는 대로변 풍경은 더 놀라웠는데 왕복 6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에는 자동차보다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어슬렁거리는 물소가 더 많았다. 중심 도로 주변에는 주택지를 건설할 계획인 듯 네모 반듯하게 구획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정작 주택이나 건물은 드물었다. 

미얀마 네피도 도로 위의 물소


위 대문에 올린 작품(?) 사진은 미얀마 인터내셔널 컨벤션 센터 앞에서 찍은 것이다. 도통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 보니 컨벤션 센터 앞에서 이러고 사진을 찍었었다. 회의가 끝나고 오후 시간에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려 주변을 돌아다녔었는데 차 한 대 만나기가 어려워서 편도 3차선 대로를 마음 놓고 질주할 수 있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더욱 만나기 힘들었는데, 길가 한 모퉁이에서 만난 노점상이 전부였다.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는데 정말이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가 절로 나오는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투숙했던 호텔 주변에만 호텔들이 모여 있었을 뿐 미얀마 사람들의 생활을 접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군부에서 도시를 계획할 때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게 될 호텔들을 의도적으로 미얀마 시민들로부터 뚝 떨어진 곳에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전거 레이싱 전용 도로가 아닌...


'과연 이 도시에 사람들이 들어찰 날이 오기는 올까?' 이런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인 미얀마 군부의 오만함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시장에서 만난 미얀마 사람들은 순박했다. 남녀 불문 얼굴에 다나카라는 하얀 분칠을 하고 환하게 웃던 그들. 경계를 서는 군인들도 여럿 보았는데 다들 고등학생 정도로 너무 어려 보였다. '미얀마에서는 군대가 학교의 역할을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최빈국인 미얀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100불인가를 환전해서 모조리 써버렸다. 환전 카운터에서 받은 엄청난 양의 지폐 더미에 놀랐고, 그것으로 짯부자(짯은 미얀마 화폐 단위) 소리를 들으며 여기저기서 기분 좋게 인심을 썼다. 시쳇말로 짯플렉스라고나 할까?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방문 기간이었지만 미얀마와 미얀마 사람들의 인상은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4년 전 작가가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중심으로 민정 이양이 이뤄지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던 시기였다. 어떤 미얀마 사람을 만나도 새로운 희망이 느껴지던, 그런 좋은 시절이었다. 그랬던 미얀마가 군부의 야욕과 광기의 싹을 잘라버리지 못하고 다시금 처참하게 유린을 당하고 있다니 5월 광주가 오버랩되며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어디를 방문하든 기념으로 그 지역의 차를 사 온다. 미얀마 시장에서는 백호은침을 구입해서 가져와 지금까지 두고두고 익혀가며 맛보고 있다. 미얀마 북부 고산지대에서 생산한 찻잎을 중국 백호은침 방식으로 가공한 백차인데, 중국 백차와는 다른 독특한 향이 있다. 구수함이 더 있다고 할까?


5월 광주가 우리나라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듯, 미얀마 시민들의 고귀한 희생은 반드시 민주화로 꽃필 것이다. 미얀마 백호은침의 귀한 향을 깊이 들이마시며 오늘도 용감히 길거리로 뛰어나선 미얀마 시민들의 무사안녕을 빌어본다. 

"Pride of Myanmar" 미얀마에서 구입한 백호은침 백차. 찻잎에 흰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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