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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야간 Nov 14. 2024

[크레바스] 의사가 당신에게서 훔쳐가는 것

의사는 당신을 비료로 성장한다

만성 중이염 환자는 전신 마취가 된 채, 청색 수술포를 덮고 있었다. 환자의 좌측 귀 주변은 수술 중 오염을 피하기 위해 머리카락이 일부 밀린 채 깨끗하게 소독되어 있었다. 수술포를 덮은 것도, 귀 주변을 정리하고 소독한 것도 전공의 2년차인 나였다. 귀에는 추가적으로 침윤 마취(주사를 통한, 조직의 직접적 마취)가 되어 있었다. 거대한 캥거루 정도 크기의 수술용 현미경도 정위치에 잘 정렬되어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주치의 취향의 음악이 재생 중이었다. 모든 것은 완벽해보였다. 이제 곧 교수님이 들어오고, 나는 보조의로서 그녀를 보조하기만 하면 되었다. 수술 부위를 잡고, 닦아내고...

교수님이 수술실 문을 통해 들어왔다. 환자는 좌측 유양동 삭개술과 고실재건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녀는 환자의 CT와 의무기록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시작해볼래?"


엄청나게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이과(귀) 담당 교수님은 주기적으로 전공의의 상태를 파악하며, 언제쯤 어떤 술기를 시킬지 넌지시 알려주시곤 했다. 그러나 막상 처음으로 어시스트 의자에서 집도의의 자리로 옮겨 앉으니 시야가 바깥쪽부터 어두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양동삭개술은 귓바퀴 뒤의 피부를 절개하여 유양동이라고 불리는, 귀 뒤의 뼛속 공간과 그 안에 침투한 염증을 갈아내는 수술이다. 그 후 중이염으로 인해 천공(구멍이 뚫린)된 고막을 근막이나 연골 등을 통해 재건한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는 것과 실제로 수술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먼저 귀 뒤를 절개해야 한다. 수술용 펜으로 귀 뒤에 완만한 C자 형태의 절개선을 그린다. 아니,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삐뚤어졌지? 지우고 다시 그린다. 몇 번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것은 단순히 모양이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음 순서를 생각할 여유를 벌기 위해서다. 이제 칼을 든다. 평소보다 칼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절개선을 따라 칼을 긋는다. 절개선을 따라 피가 스멀스멀 배어나온다. 분명 여러 번 본 광경인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원래 이렇게 피가 많이 났나? 내가 뭔가를 잘못 잘랐나? 분명 이 위치에 잘못 자를만한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덜컥 겁이 난다. 나 대신 보조의자리에 앉은 교수님이 편안한 손놀림으로 피를 닦아 내며 몇 마디 조언을 해준다. 이비인후과 수술의 묘는 층(層,Layer)에 있다. 나는 조심조심 층을 확인하고, 근막을 채취한 후 층을 밀어 올리며 환자의 뒷머리뼈를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교수님의 작은 칭찬을 받고 어깨가 잠깐 으쓱해진다. 하지만 수술 보조 간호사에게 장비를 요청하는 내 목소리엔 주저함이 가득하다.

뼈를 갈기 위한 수술용 드릴이 내 손에 쥐어진다. 드릴은 발판으로 작동되는데, 발판을 살짝만 눌러도 드릴이 굉음을 낸다. 굉음보다 두려운 것은, 드릴의 회전이 만들어내는 각운동량이다. 손바닥에 힘을 주어 적절하게 고정하지 않으면 드릴은 자아를 가진듯 튀며 움직인다. 그런데 어떻게 시작하더라? 내 허튼 손놀림에 언제든 환자의 경막이나 구불정맥동이 손상될 수 있다. 경막이 손상되면 뇌가 드러나며 구불정맥동이 손상되면 많은 양의 출혈이 발생한다. 특히 (실제로는 훨씬 깊은 위치에 있었지만) 안면신경을 손상시킨다면 환자는 안면 마비가 오며, 그 결과는 비가역적이다. 드릴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허공을 빙빙 가른다.


"나와 볼까?"


교수님의 인내심이 끝나고, 나는 다시 보조의의 자리로 옮겨 앉았다. 내 머릿속 완벽한 수술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나는 교수님이 내게 얼마나 실망했을지 가늠했다. 그녀의 손으로 수술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나마 환자를 해하지 않았다는 것에 작은 위안을 받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은 며칠이나 가시지 않았다. 한동안 나는 이비인후과를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지, 아니면 애초에 의사라는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지 고민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 편, 아주 작은 구석에서는 내가 수술을 시작했다는 기쁨이 새싹처럼 피어올랐다. 환자는 잘 퇴원하였고, 환자의 뒷머리에는 내가 그렸던 절개선을 따라 (그리고 다시 내가 봉합한대로) 흉터가 아로새겨졌다.  


이 회고를 읽은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수술을 처음 맞닥뜨린 초보의사의 긴장감과 희열이 와닿았다면 당신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다. '저렇게 수술을 막 시작한 의사가, 그냥 환자 몸에 손을 댔다고?' 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술은 오래 전에도, 내가 수련할 때도, 지금도 온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외과의는 어떻게 성장할까?

좋은 외과의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여기서 외과의는 소위 일반외과(General Surgery)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술을 하는 모든 의사를 통칭하는 것으로 정하자. 즉 여기에는 외과 의사 뿐 아니라, 정형외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비뇨의학과와 산부인과 의사들이 포함된다.

    수술을 하지 않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외과의들도 당연히 의학적 지식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세간, 특히 창작물에서는 수술을 마치 손기술을 활용한 예술 같은 것으로 생각해 '천부적 재능'이라던지 '감각' 등을 함부로 갖다 붙이지만 실제로 수술에서 제일 중요하고 가치 있는 부분은 판단이다. 이 판단은 수술 여부와 수술 방법을 결정하는 큰 범위부터, 이 혈관을 묶을 것인지 보존할 것인지 같은 아주 작은 범위까지, 쉬지 않고 연속해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 판단은 의학적 지식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기술적인 능력도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밀하고 정확한 손의 움직임, 적절하게 전신을 사용하는 요령은 분명 외과의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 준다. 성격적인 요소도 관여한다. 조급하거나, 강박적이거나, 겁이 너무 많은 사람은 매우 불리하다. 또 한가지 요소는 건강인데, 건강하지 않은 의사는 수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본인의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긴 시간이 걸리는 수술 대신 짧은 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권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열한 요소들 중 필수적인 의학적 지식을 제외하고(본인이 무엇을 자르고 있는지는 알아야 할테니), 다른 요소들을 상회하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경험이다. 설령 국내 최고 의과대학 수석을 차지하고, 완벽한 손의 움직임과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을 지닌 친절한 의사라고 해도 한 번도 수술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 수술을 100번 집도해본 평범한 의사, 아니 10번 집도해본 평범한 의사에 훨씬 못 미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경험의 중요성은 수술을 하는 외과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의사의 경험은 의학적 상황에 대한 예측력과 대응력을 키우며, 그것을 넘어 누구도 정확하게 가르칠 수 없는 직관을 키운다. 의사의 판단력은 경험을 통해 예리하게 깎여 나가 오류와 실수를 줄인다. (왜 경험이 다른 가치들보다 중요한 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그렇다면 의사의 경험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고무와 실리콘 모형에 연습하면 경험이 될까? 아니면 (주로 인도의) 의사들이 유튜브에 열심히 올리는 수술 동영상을 50번쯤 반복재생하면 될까? 많은 의사들은 이 두가지 방법을 모두 알고 있지만, 이는 보조적인 기능을 할 뿐, 의사의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진정한 경험은 오직 환자를 통해서만 쌓인다. 특정 질병에 대해 배우려면 그 질병을 갖고 있는 환자를 만나봐야 하고, 특정 수술을 배우려면 환자에게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 환자는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가장 좋은 교보재이다. 특히 이 경험을 쌓기 제일 적절한 시기는 의과대학과 전공의 시절이다(후술하겠지만, 이 시기가 지나간다고 경험을 쌓지 못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 시기에는 지도의들이 있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으며, 그들을 통해 개인적인 의문이나 어려움을 해결하기가 훨씬 용이하다. 압도적인 학습과 노동량으로 인해 경험이 쉽게 체화되는 것도 슬픈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환자를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의과대학의 환경이나 수련 병원의 조건에 따라, 의사 개개인은 상당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수련평가 및 의대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들은 이 과정의 비균질성을 줄이고 표준화된 성장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기관들이 노력한들, 내가 수련하는 병원에 뇌종양 환자가 오지 않는데 어떻게 그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을까? 내가 수련했던 병원은 경기 북서부에 위치했는데, 그 위치 때문에 군인이나 농촌의 환자들을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후에 다른 병원 의사들과 이야기하며흔하다고 생각했던 질환들 중 일부가 서울 도심 지역의 병원에서는 매우 만나기 어려운 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병원과 그 도심지역 병원은 고작 30-4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도! 유명한 틴티넬리(Judith E. Tintinalli, 응급의학 교과서의 바이블 중 하나를 썼다) 교수가 2011년 미국 남동부에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수련 병원의 환경에 따라 응급의학과 전공의들간의 임상 경험 편차는 30-60%에 달했다. 

    또한 경험이 체득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의과대학 6년, 이후에도 전문의 자격을 얻기까지 5년이 더 소요되는 이유는 단순히 공부할 책이 많아서가 아니다. 의과대학에도, 전공의 과정에도 조기졸업은 없다.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과 COVID-19의 경험은 의과대학의 교육에서 시간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의학교육자들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인류 역사에 남을 세 시기, 미국 의과대학은 인력 확보를 위해 일시적 조기졸업을 허용했다. 인력이 확보되었지만 의대생과 교수진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시험 성적은 비슷했지만 의사로서의 기능도 비슷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조기졸업자들 다수가 재교육 과정을 수강하길 원했다는 것은 눈여겨볼만 하다. 

    경험의 품질도 확보되어야 한다. 단순히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치료 및 술기의 중요 부분에 관여하고, 그것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다시 지식화하고, 피드백을 통해 다시 다음 치료와 술기를 발전시키는 긍정적 사이클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병원의 환경은 간혹 사이클을 억제하고, 경험의 습득이 배제된 단순화된 작업만을 강요한다. 많은 젊은 의사들이 이유도 모른채 정해진 처방을 내고, 개인의 발전과는 무관한 단순 노동에 투입되고 있다. 공장에서 축구공을 자주 만져본다고 축구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 너머에, 이 장을 통해서 반드시 논하고 싶은 문제점이 있다. 의사가 환자를 통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구조적 역설이 숨어 있다. 한 명의 의사가 완성되기 위해 경험이 필수적이라면, 역으로 경험을 쌓는 동안에는 미완의 의사가 환자를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3월을 조심해라"

우리는 젊은 의사들이 자신만만한 상태로 본인들의 단계를 밟아가길 기대한다. 이 '단계'에는 첫 수술뿐만 아니라 첫 술기들, 첫 외래 진료, 첫 입원 환자 관리와 응급실 협진 등이 포함된다. 이 중 보통 가장 먼저 시작되는 것은 인턴 때 해야하는 술기들이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보통 인턴들은 배치받자마자 동맥혈 채혈, 비위관(코를 통해 위까지 연결되는 관)이나 도뇨관(소변줄) 삽입, 케모포트(Chemoport) 연결 등의 업무를 지시 받는다.


    인턴을 시작하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동기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았다. 산부인과 항암환자의 케모포트 연결이었는데, 본인이 몇 번 시도해도 도저히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난 내과를 돌고 있었는데, 우습지만 도움을 요청 받은 나 역시 그때까진 케모포트 연결을 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는데, 다들 정신없이 바빴고, 모두 다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연락을 받자마자 급하게 책을 찾아보며 케모포트 연결 순서를 다시 확인했다. 케모포트는 주로 항암환자가 몸 속에 삽입하는 일종의 관으로, 반복되는 항암 과정에서 안전한 약 투여를 위해 사용된다. 항암이 시작될때, 이 몸 속의 관을 체외의 관과 연결해야 한다. 잠시 뒤 5층의 산부인과 병동에서 병실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환자와 동기를 만났다. 다행히 환자의 얼굴은 나쁘지 않았다. 아마 오랜 항암을 통해 케모포트 연결이 항상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신 것 같았다. 동기는 약간 얼빠진듯한 표정이었다. 그 옆의 카트에는 끝이 휘어진 케모포트 바늘이 서 너개 놓여 있었다. 난 이게 아주 익숙한 일이라는듯 환자에게 말했다. "이게 계속 안 들어갈 때는 손을 바꿔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제가 한 번 해봐도 될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환자는 내 허세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환자를 소독하고, 장갑을 낀다. 케모포트 연결은 환자의 피부 밑에 심어져 있는 USB 포트에 바늘로 된 USB를 꽂는 것과 유사하다. USB는 언제나 그렇듯 한 번에 꽂히지 않는다. 또한 포트를 피부가 덮고 있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더듬어서 위치를 확인하며 연결해야 한다.    

    첫 번째 시도(사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시도이다)는 실패했다. 환자가 워낙 말랐기 때문에 포트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바늘을 밀어 넣는 순간 그 압력으로 인해 포트가 미끄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바늘은 비스듬하게 박혀 전혀 그 기능을 하지 않았다(USB를 거꾸로 꽂아 넣은 상태나 마찬가지다). 환자는 통증으로 찡그렸다. 아마 내 표정도 점점 내 동기와 비슷해지고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시도, 왼손으로 포트를 더 단단하게 잡고 손 끝을 세워 포트가 주변 조직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했다. 오른손에 든 바늘을 최대한 수직으로 집어 넣었다. 바늘 끝이 포트 안에 '톡'하고 닿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소위 '손 맛'이 달랐다.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성공이었다. 나는 약간의 희열을 감추며 환자에게 간단하게 인사했다. 아주 익숙한 일이라는듯. 


'병원의 3월을 조심해라'라는 속설이 있다. 3월에는 신규 인턴이 입사하고, 레지던트들도 연차가 올라가며 업무 재배분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살면서 처음 해보는 업무에 내던져진다. 미리 공부와 준비를 하지만 그들에게는 경험이 결여 되어 있다. 그들은 미숙할 뿐 아니라 불안하다. 그 불안함은 미숙함 이상의 실수나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매년 3월, 대학병원의 공기는 초조해하는 젊은 의사들의 한숨(과 상급자의 고함)으로 가득 찬다. 미국에서는 유사 현상을 'July effect'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와 학제가 달라 7월에 연차변경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 다행히 많은 논문들이 이 시기에 더 사고나 합병증이 많이 발생하지는 않으며 'July effect'는 실존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실제로 내 경험에도 3월에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연차가 변경되면서 다들 긴장하고 선배 의사들도 더 세심하게 후배들을 살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로 잡히지 않을만한, 작은 문제들은 발생한다. 환자의 저녁 처방이 없어서 환자가 쫄쫄 굶기도 하고, 숙련된 의사는 10분이면 끝낼 술기가 30-40분이 걸리기도 한다. 나와 동료가 환자에게 몇 번이나 케모포트 바늘을 찔러야 했던 것처럼, 이러한 작은 피해들은 보통 환자를 향한다. 


그러면 병원의 3월이 지나가면 끝일까? 남은 11개월은 환자 입장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시기일까? 그렇지는 않다. 1년 내내, 젊은 의사들은 개인의 성장 곡선에 따라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 기회는 환자 개인에게는 '위기'와 동의어이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첫 수술을 하고, 처음 보는 질환의 환자들을 마주친다. 교수들과 선배들이 옆에서 지도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경험을 대신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한다. 의사가 순간의 실수로 환자의 반회후두신경을 끊어버리게 된다면, 50cm 거리에서 만반의 주의를 갖추고 있는 교수의 두 손도 그걸 막기는 힘들다. 친절한 교수가 매일 전공의의 정규 처방을 세심하게 살핀다해도, 새벽 세 시에 전공의에 의해 미숙하게 처방된 약물이 환자에게 도달하기 전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환자들에게 가해지는 이 폭력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 숙련자들이 계속 하던 일을 하면 된다. 신규 의사들은 숙련도가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숙련된 의사들이 계속 환자를 처치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대학병원의 전공의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이다. 대학병원의 전문 과목 수련 시스템은 전공의 4년(또는 3년) 간의 교육과 업무를 통해 숙련된 전문의를 ‘배출’해내는데에 있다. 때문에 모든 전공의들은 계약직이며, 4년이 끝나면 전문의 면허를 획득함과 동시에 병원과의 고용관계는 끝나게 된다. 대학병원 업무의 상당수를 담당하는 전공의들의 1/4이 매년 병원을 떠나고, 새로운 1/4이 채워진다. 떠나는 전공의들은 전공의들 중 가장 숙련된 사람들이고, 새로 들어오는 전공의들은 가장 숙련되지 않은 이들이다. 각 연차의 전공의들은 형제들이 교복을 물려입듯 숙련도에 따른 업무를 물려 받는다. 매년 25%의 인력이 나가는데 어떻게 숙련된 의사들만이 환자를 만날 수 있을까? 


레디-메이드 닥터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사가 되기 전에 학생 때부터 더 열심히 하여, 숙련된 상태로 의사 면허를 받아야 하는게 아닌가? 그러나 언급했듯이, 숙련에는 필수적으로 경험이 필요하다. 면허가 있는 의사조차 숙련도가 낮다며 자신의 몸을 다루는 것을 꺼리는데, 의대생들에게 그러한 경험이 허락될까? 아니면 이런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전공의가 아니라, 병원에 계속 고용되어 있을 전문의들만이 환자를 맡고 진료하면 되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이고 당연한 문제를 마주친다. 전공의를 위시한 젊은 의사들에게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언젠가 경험없는 교수와 전문의들의 진료를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협박처럼 들리는 사실이다. 최고의 명의들조차 처음은 있었다. 난 그들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뛰어난 수술과 진료를 했을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최초의 경험이 없었다면, 현재의 명의도 있을 수 없다. 이들이 겪어온 길엔 성공과 찬사뿐만 아니라 실패와 낙담도 포함된다. 의과대학에서 기성품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레디메이드 닥터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의 흉부외과 이야기를 다룬 의료만화 '의룡'의 주인공, 작중 최고의 명의 아사다 류타로는 이렇게 얘기한다.


"의사는 인간을 살리기 위한 존재. 하지만 외과의는 죽인 환자 수만큼 성장한다. 그것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야"


    현재의 경험 많은 의사들은 언젠가 은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체할 뛰어난 의사들은 어디선가 갑자기 솟아나지 않는다. 충분한 경험, 그것을 내버리지 않고 '쌓을 수' 있는 능력, 그 과정에서 오는 좌절을 버틸 수 있는 내구력을 지닌 의사들에게 그 자리가 허락된다. 



장막 속의 공리 주의, 그리고 도둑질

환자의 몸이, 심지어 환자의 죽음이 의사의 성장을 위해 쓰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과정이 없으면 의사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사회적 부조 체계이다. 내가 수많은 숙련된 의사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누군가가 그 의사에게 본인의 몸을 실습대상으로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반복되어 나 역시 젊은 의사들의 실습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 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장막 속에 숨겨진 공리주의이자, 환자와 의사들의 기묘한 공생관계이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아직 이 공리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구조는 암묵적으로만 작동한다. 병원은 '절대 절대! 레지던트가 제 몸에 손도 대면 안돼요!'라고 하는 환자와는 공연한 분란을 피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현대 대학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진료의 큰 딜레마이다. 올바른 시스템이라면 "젊은 의사의 교육도 대학병원의 의무이기 때문에 환자분의 요청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전문의만 수술에 참여하는 전문 병원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라고 교수들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까? 그러한 공리주의적 이유로 인해 내 몸을 경험 없는 의사에게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대한 사회적 이득은 추상적이고, 저 미숙해보이는 의사가 내게 끼칠 수 있는 해악은 직접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의사들은 매일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다. 이 술기는 아주 간단한 술기입니다. 이거 매일 하는 일입니다. 원래 이렇게 잘 안 되기도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큰 문제 아닙니다! 수술은 교수님이 집도하시고, 전공의는 보조만 합니다(그 보조의 범위에는 아주 넓은 해석이 있다). 의사들은 기회의 정당함을 박탈당하고, 환자들은 매일 그런 의사들에게 경험을 도둑질 당한다(그 와중에 이 도둑질조차 하지 못하는 몇몇 의사들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어떤 병원들은 법적/의료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젊은 의사들의 기회를 원천봉쇄한다. 도둑질을 통한 성장보다 더 나쁜 것은, 성장하지 못 하는 것이다).


또한 이 구조는 불평등을 낳는다. 의사들에게 경험을 '도둑질'당하는 환자들은 누구일까? 의료진의 가족이나 재단 관계자들, 유명인이나 고위직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도둑질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다. 매우 거칠거나 위협적인 환자들, 불안정한 환자들도 마찬가지로 교보재로 잘 쓰이지 않는다. 평범하고 조용한 환자들. 의사와 관계가 좋고 친절한 환자들이 도리어 희생양이 된다. 의사의 교육에 있어 공리주의적 문제점이 필연적이라면, 공평함이라도 확보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아수라’에서, 한도경(정우성 역)은 수술을 앞둔 아내의 주치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도경: 대신 인턴들 또 연습하면 안돼요!


의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장면은 세 가지 이유로 웃음이 나온다. 첫째로 우리나라에서 인턴이 수술을 연습할 일이 없다는 것, 두번째, 설령 하더라도 그것이 저렇게 비난당할만큼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 세번째로는 작 중 권력자의 이복동생인 환자가 그런 일을 당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눈으로 바라본 이 장면은 과연 어떠한가? 



늦은 성장

환자들은 의사들을 볼 때 이름표의 앞부분을 보지 않는다. 이 사람이 김OO인지, 최XX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환자들은 이름표의 뒷부분을 본다. 이 사람이 교수인가? 아니면 인턴인가? 인턴이나 레지던트는 의혹 어린 시선을 받게 되며, 교수는 상대적인 신뢰와 신망을 받기 마련이다. 당연히 환자들도 젊고 경험없는 의사에게 의지하여 그들의 교보재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교수라고 해서 학습 곡선의 위에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공의 시절, 젊은 교수님들과 함께 보낸 4년간 나는(오만하게도) 내 개인적인 성장만큼이나 교수진의 발전을 체감했다. 수술 시간은 줄어들고, 과정에는 여유가 생겼다(그 과정에서 하나의 혜택은 그 여유만큼 나에 대한 지도가 늘었다는 점이었다). 환자를 비료로 성장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다른 관점에서 얘기하면, 같은 의사에게 4년 전에 진료를 본 환자는 4년 뒤에 진료를 본 환자보다 손해를 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 몇살쯤 성장이 끝날까? 어느 정도의 교수여야 환자가 더 이상 교보재가 아닌 환자로만 존재할 수 있게 될까? 50세? 60세?


의료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변화에는 수술 또한 포함된다. 이제는 '로봇수술'이라는 단어가 전혀 생소하지 않다. 최근 어떤 환자는 구강에 생긴 하마종(ranula, 입술이나 구강의 침샘이 막혀서 생기는 투명한 물혹)을 로봇수술로 제거하고 싶다는 고민을 내게 토로했다. 나는 상의 후 그가 생각하는 로봇수술이 자율-인공지능 수술과 사실상 동의어임을 깨달았다. 나는 그런 수술은 없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상상 속의 로봇의사를 찾아 다른 병원으로 떠났다. 이런 오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로봇수술은 분명 뛰어난 수술의 진보를 가져왔다. 로봇은 더 정밀할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작은 상처를 남기며 타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로봇 수술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2005년이다. 그런데 2005년의 의사들은 이 혁신적인 신기술을 누구에게 배웠을까? 이런 점에 있어서 교수나 전문의들은 오히려 전공의들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 있다. 아무도 그들을 지도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의료기기사 직원의 원론적인 기계 사용 설명과, 그 회사가 제공하는 몇 번의 기회들(돼지나 카데바 해부 등)이 전부다. 그들에게 경험을 전수해 줄 선구자는 전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날것의 환경에서, 본인 스스로와 동료들을 이정표 삼아 환자들의 피를 먹고 성장해야 한다. 실제로 몇몇 연구들은 새로운 술식이나 수술의 도입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발생하는 높은 사망률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난 주로 젊은 의사들의 발전에서 생기는 역설을 이야기했지만, 이렇듯 모든 수준의 의사들의 숙련에 환자들이 필요하다. 의료에 있어서, 혁신과 발전 이면에는 간혹 이 붉고 끈적한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까?

'알파고'와 'ChatGPT'의 시대 이후로, 인공 지능, 빅 데이터, 딥 러닝 등은 더 이상 생소하거나 막연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 영향은 의료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더해 AR/VR 기술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AI가 만든 가상의 환자를, 가상현실에서 만지거나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진 실험적 시도에 불과하고 기술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의사들은 '충분한 연습' 뒤에 첫 수술과 진료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해외의 VirtaMed나 Laerdal 등의 회사는 각각 복강경수술, 중환자케어의 시뮬레이션을 제공하여 이미 의사들의 훈련을 돕고 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들은 의사의 경험을 보충하는 것을 넘어,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사에게 경험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모든 환자들이 다르고,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AI는 이러한 다양성과 불확실성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내가 이야기한 기묘한 공생관계는 과거의 유산이 될 지도 모르겠다. 



경험이 만들어 낸 것

    내가 전공의 1년차로 처음 홀로서기를 하던 무렵이었다. 나는 불 꺼진 외래에 혼자 앉아서 잔업 중이었다. 늦은 저녁, 응급실에서 내 병원용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선배 전공의에게 보고 배운 대로 근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심경부(목의 깊은 곳)감염으로 내원한 고령의 남자 환자였다. CT에서 목 안 쪽으로 작은 쥐 정도 크기는 될 법한 고름이 보였다. 염증의 지표 중 하나인 C-reactive protein(CRP) 값이 50이 넘었다. 건강한 사람에서, 이 값의 정상 범위는 1 이하이다. 쉽게 말하면, 환자의 목 안에서 화재경보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황급하게 후두내시경을 가방에 챙겨들고 (전혀 근엄하지 않게) 응급실로 내려갔다. 중환자 구역에 앉아 있던 환자는 너무 차분해 나를 놀라게 했다. 그 노인은 숨을 몰아 쉬지도, 통증에 찡그리지도 않고 마치 응급실 풍경을 관찰하듯 앉아 있었다. 내가 그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환자가 긴장한 나를 안심시키는 듯 했다. 그러나 혈액검사, CT, 후두내시경 소견 중 어떤 것도 그 환자의 건강을 보장하지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상태와 계획을 설명했다. 이 '계획'에는 기간을 알 수 없는 중환자실 치료와 수술, 기관 절개술이 포함되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며, 생명도 보장할 수 없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물론 지금 여기에 쓰는 것처럼 쉽고 담백하지는 않았다. 장황하고 무의미한 설명, 질문에 대한 어설픈 답변, 이 와중에 갑자기 환자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공포감, 이런 것들로 가득찬 밤이었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입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염증을 긁어 내는 몇 번의 수술을 받았다. 나는 매일 중환자실의 인공호흡기, 그리고 약물의 미세한 용량과 사투를 벌였다. 3달째 그 환자는 퇴원했다. 긴 투병으로 분명 노쇠해졌지만, 살아서. 

    그와의 경험에서 난 무엇을 얻었을까? 심경부감염에 대한 지식? 물론이다. 인공호흡기 관리와 진정제를 비롯한 수많은 약물 사용법? 뭐, 아주 약간.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얻은 경험은 다른 데에 있다. 매일 밤 선잠을 자며 1-2시간 간격으로 중환자실의 전화를 받고 깨는 일. 열려있는 목의 상처를 소독하는 일, 근심에 찬 보호자를 대하는 법. 환자를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병원 밖으로 보내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힘들어 하지만, 썩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경험들을 통해 비로소 지금의 내가 되었다. 

 

환자와의 경험은 의사를 만들 뿐만 아니라, '의사로'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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