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멀리 떨어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풍경과 영화와 책, 여행 그리고 삶이 그렇다.
당시 상황을 마주할 땐 누구보다 진심이었고 이성적이었다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때의 나를 마주하고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깊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진심이었고 관계를 더 잘 다듬고 싶었다.
마음이 앞서 나간 관계는 돌아보면 실수투성이 일 수 밖에 없다.
분명 우리를 위해 노력했다 생각했다. 이제와서 돌아보니 그 노력은 지극히 내 관점에서의 노력이었다.
상대에게 내 노력을 가져다가 최고인냥 굴었다.
천천히 발 맞춰 걸었다 생각했지만 상대가 나에게 맞춰 걸어준 것이었다. 이제서야 보인다.
그 종종거림과 예상치 못한 리듬이 내내 느긋하게 걸어왔던 상대에겐 즐거움보단 버거움이었을 것이란 걸.
그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그러면서 연애 뿐만 아니라 삶도 그렇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 속에서는 주인공은 무적이 된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의 주인공이라는 걸.
다만 내 삶에선 내가 주인공이지만 누군가의 삶에는 조연이 될 수도, 엑스트라가 될 수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보여지리라. 나의 삶을 관찰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관찰받는 삶을 살아도, 관심어린 눈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에게도 내가 주인공인 나의 삶이 떳떳하기 위해서는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나 또한 나라는 주인공을 관전하는 관전자가 되어야한다.
나이기에 변명과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세상은 다 함께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은 변명과 핑계를 들어줄 여유가 없다.
고로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 녹여내기 위해선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곧 내가 된다.
“나”라는 사람이 나의 삶의 관전자인 사람에게 떳떳하기 위해선 나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되 내 삶을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바라봐야 한다.
1인칭의 마음으로 3인칭의 시선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하고 채우는 삶은 어쩌면 더 윤택하고 즐거운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