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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Sep 18. 2022

쓰다가 만 단상들 모음집

수록되지 못한 에피소드 2

1. 

 변화무쌍한 꾸리치바 날씨를 보고 있자면, 한시도 지루하거나 시간이 안 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늘을 보다가 잠시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뜨고 다시 쳐다보면, 어느 새 구름과 하늘의 색이 바뀌어 있었다. 고지대라 그런지 구름이 크고 가깝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꾸리치바. 계속 비가 오다가 날씨가 좋은 날이면 다들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서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한다. 이런 소박한 여유로움이 반가웠다.



2.

 착각할 때가 있다. 지금의 분위기와 기분과 오늘 일어난 일들이 너무 좋아서 옆에 있는 사람이 호감인지 분위기에 단순히 휩쓸린건지. 그럴 때는 그냥 착각한 채로 내버려두고 기분을 즐기다가 그 장소를 벗어났을 때 '아, 좋았었지' 하고 곱씹으면 그만인 것이다. 



3.

 좋아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해지자, 상황을 조절하고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서 하고, 어김없이 성공했고, 두려워하는 것은 되도록 피했으니 실패가 줄었다. 그래서 감히 행복을 찾았다고 말하고 다닐 수 있었다. 누군가는 모험이 없는 삶이고, 그렇게 살다보면 취향과 경험이 한정된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취향과 선호하는 것을 알기 위해 더 많은 경험을 찾아다녔고, 좋아하는 게 어떤 건 줄 아니까 시간 손실 없이 좋아하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겪어보며 나를 알아가는 게 재밌었다. 나는 경험 없이는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니까. 

 취향이 분명한 걸 좋아했다. 이전에 경험했던 것들이 쌓여 한 사람의 분위기와 정체성을 자아낸다고 믿기에, 그냥 막연히 살고 싶지 않았다.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건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색깔을 만들기에, 혹의 찾아내기에 머나먼 타지는 매우 적합한 장소이자 기회였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매번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며 내가 이럴 땐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구나,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스스로 놀라고 감탄하고 발견하기를 반복했다. 

 내 색깔이 분명해지니 산다는 것의 의미가 분명해졌고,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자존감이 어느 순간 떠올랐다. 아직은 자존감이 높아졌다기보다, 모르고 있었던 자존감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자아 형성, 정체성 형성의 첫 걸음이었다. 그동안은 그냥 살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지금은 ‘내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하루하루 소진해가며 사는 게 아니라, 채워가며 사는 삶이 되어 기뻤다. 자존감이 생겨나자, 오히려 꾸밈이 덜했다. 어울리지 않는 게 뭔지, 남을 따라하는 게 뭔지 알게 되었고, 맨 얼굴에 쪼리가 가장 나다워서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브라질에서 만들어 온 혹은 찾아낸 ‘나’였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4. 

 결국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였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자존감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나 바깥 상황에 의해 흔들리는 정도라고 결론 내렸다.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에만 귀 기울이고 의존 하다보니 자존감이 높아질 수가 없었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 내 자존감을 높여준 것은 나중에 그것들이 사라졌을 때 굉장히 위험하다. 모든 건 나로부터 나와야 한다. 남이 만들어준 것이 아닌, 내 안에서의 자존감. 


5. 

 누군가가 나를 앞에서 끌어주기보다는 뒤에서 받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6.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도보 턱에 걸터앉아 모두가 다리를 쭉 뻗고 이야기를 나누던 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뭐가 그리고 편안하고 웃기던지.

지금 이 때가 나중에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확실히 느껴지던 순간. 


7. 

긴 인생의 여정에 은지씨의 밝고 긍정의 에너지가 늘 함께 하길 기원해요. 

- 브라질 인턴 시절 타 부서 상사분이 떠나시기 전에 남기신 메일의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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