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2023.3.8
돌배나무가 축포처럼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축제의 시작을 알리건만 봄은 아직 무대에 서길 주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휩쓴 겨울폭풍이 봄의 치마 끝을 잡고 있다. 아침 공기가 아직 차다. 넣었던 겨울 외투를 다시 꺼내 입었다.
출사다. 집을 나서는 순간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익숙함이 명도가 높은 색이라면 낯설다는 것은 채도가 낮은 색일까. 명료하고 밝아 환히 드러나는 높은 명도의 색에 비해 낮은 채도의 색은 베일에 싸여있는 느낌을 준다. 여행은 낮은 채도의 장소를 명도 높은 곳으로 변화시킨다.
차창으로 샌버나디노의 장엄한 산맥들이 펼쳐진다. 올해 기록적인 폭설로 온통 하얗던 산들이 지난 이틀간의 햇살로 그 많던 눈이 허리춤 위만 남아있다. 차에는 사진반 회원들의 카메라가 임무를 위해 대기 중이다.
이번 출사는 'Route 66'을 따라가며 앰보이와 뉴베리 스프링스를 들를 예정이다. Route 66은 1926년 미국 최초로 건설된 미대륙 횡단도로이다. 시카고와 산타모니카를 잇는 3940킬로미터의 길이다.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며 동부에서 서부로의 이주에 주된 역할을 한 이 길은 'Mother Road'라고도 불린다. 1950년대 새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사람들의 이용이 뜸해져 지금은 옛 향수를 간직한 상징적인 도로로 남게 되었다. 앰보이는 루트 66을 지나는 차량들이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며 쉬어가는 도시였다. 융성했던 시절이 가고 지금은 빈 호텔과 무너져 가는 집들이 남아있다.
뉴베리 스프링스에 있는 바그다드카페는 미국 독일 합작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배경이 되면서 유명해졌다. 새 삶에 대한 희망에 부푼 사람들로 북적대었을 카페엔 쓸쓸한 바람만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오아시스 역할을 하던 카페는 화려한 시절을 떠나보낸 늙은 퇴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카페는 문이 굳게 닫힌 채 마지막 손님을 받은 지 오래돼 보였다. 먼지 낀 창안으론 낡은 커피머신과 머그컵이 뒹굴고, 말라비틀어진 화분이 빗질하지 않은 퇴기의 머리마냥 엉켜있었다. 카운터엔 오래된 버드와이저 맥주광고가 시원하게 한잔 들이키지 않겠냐며 사막을 찾은 이에게 유혹의 눈길을 던진다.
폐물이 되어 고려장으로 버려진 차들이 카페 뒤에서 먼지바람을 맞고 있었다. 저들도 한때는 스카프를 날리는 멋쟁이 아가씨를 태우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달렸을 터이다. 이젠 인적조차 드문 사막 한 귀퉁이에서 옛 애인의 소식을 바람결에나 들을까 귀 기울이고 있었다.
'I am calling you...' 영화 바그다드카페 주제곡이 황량한 벌판 너머에서 건조한 바람에 실려 오는 듯 했다. ‘커피 머신마저 고장 나버린/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작은 카페에서/당신을 부르고 있어요/들리지 않나요.’ 떠나버린 사람을 애타게 부르는 제베타 스틸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떠난 사람들과 버려진 마을, 그들의 이야기가 카메라에 담기길 바라며 셔터를 눌렀다.
뉴베리 스프링스 사막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이곳은 온천지역으로 개발하려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였다. 그러나 끊임없는 모래바람으로 도시가 모래 안에 서서히 파묻혀 갔고 집을 지키려 방벽을 쌓으며 버티던 사람들은 결국 두 손을 들고 이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모래가 마을 전체를 삼켜 버린 셈이다. 인간의 존재를 거부한 자연은 당당히 도시를 점령했다.
차문을 열자 모래폭풍이 낯선 방문객을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사정없이 달려드는 모래는 온몸을 공략했다. 모래에게 뺨을 맞아보기도 처음이었다.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강한 바람 때문에 앞으로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등으로 바람을 이기며 뒷걸음으로 한발 한발 사막으로 접근해야 했다. 발이 모래에 빠져들어 걸음을 떼기도 쉽지 않고 쉼 없이 날아오는 모래로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카메라를 모래로부터 지키려 비닐로 감쌌다.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와 마스크, 목도리로 몸을 꽁꽁 싸매고 미라가 되어 사막으로 걸어 들어갔다.
모래사막 곳곳에 집들이 모래를 꾸역꾸역 삼키다 질식해 있었다. 문도 창도 날아가 버린 집안으로 모래가 천정까지 차 있었다. 모래 속에 몸을 묻은 오븐, 한쪽 팔이 달아난 인형, 무너진 담장, 간신히 뼈만 남은 시멘트벽을 부여잡은 가시철망이 예전에 사람이 살았었던 흔적을 가늠케 했다. 마른 덤불은 모래를 움켜쥐고 날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죽은 나무의 몸통들이 사막 위를 뒹굴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달렸을 스쿨버스는 창과 문짝이 뜯겨나간 채 포기한 몸을 모래에 맡기고 있었다. 온 몸이 모래 늪에 빠진 집이 간신히 지붕만 남아 목을 길게 내민 채 살려 달라 외치고 있다. 집과 마을, 누군가의 삶의 기억들이 생매장되어 있는 이곳은 거대한 무덤이었다.
날리는 모래가 태양빛에 하얗게 빛났다. 차갑게 떨어진 기온에다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은 눈보라 이는 들판에 서있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바람을 탄 모래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바람이 모래 위에 물결무늬를 끊임없이 만들어 뷰파인더로 보이는 사막은 차라리 물결 넘실대는 바다였다. 한 그루 나무가 바람에 굽어진 허리를 하고 뿌리가 아닌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있었다. 구도자의 자세였다. 생명을 갈구하는 기도 중 인걸까. 그는 귀를 대고 사막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니 생명이 사그라드는 사막에서 생명 가득한 바다를 꿈꾸며 바다의 소리를 듣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구가 지는 해의 빛을 받으며 유연한 곡선의 명암을 선명히 드러냈다. 사구의 능선은 여체의 선처럼 아름다웠다. 황홀함에 홀려 발길은 점점 사막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를 걸었을까 돌아보니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을 타고 땅으로 낮게 포복하며 다가오는 모래의 습격이 마치 뱀들이 모래 위를 빠르게 기어 오는 것 같아 섬뜩했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저 무서운 모래 공격에 묻혀버릴 것 같은 오싹함이 엄습했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멀리 앞서 가는 선배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모래폭풍 속 사막은 지금까지 만났던 사막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내리쬐는 태양빛을 묵묵히 수도승처럼 받아들이며 가부좌를 틀던 사막이 아니었다. 인간의 마을을 점령하고 스스로 언덕을 만들고 무너뜨리는 능동성을 보이며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셔터를 눌렀다. 거인 지니를 호리병에 담듯 살아 움직이는 사막을 카메라 안에 가두었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몸통의 반이 잠겨버린 굴뚝을 만났다. 이 굴뚝마저 언젠가는 모래에 삼켜져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모래 속으로 사라진 집들과 마을 그리고 떠난 사람들의 아픔을 태양은 알고 있다는 듯 말없이 멀어져 갔다. 태양은 흥분한 사막을 다둑이며 조용히 황금빛 융단을 덮어가고 있었다. 노을이 구름에 반사되며 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심도를 조절하고 셔터 스피드를 늘이고 눈에 들어오는 마지막 순간을 담았다.
마스크를 썼어도 입안에서 모래가 서걱대고 렌즈를 돌릴 때마다 카메라는 꺽꺽 소리를 냈다. 메모리카드에 사진을 가득 담아 돌아올 때의 기분은 사진에 빠져 본 사람 만이 알 것이다. 오늘 담은 사진은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지 컴퓨터에 메모리카드를 넣는 순간 기대와 긴장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