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상을 지키는 사람들

2025.8.3

by 류재숙 Monica Shim



진료 마지막 날이다. 첫날 그리도 썰렁해 보이던 강당도 며칠간의 사람들의 온기로 이제 훈훈하고 화기애애한 진료실이 되어 있었다. 오늘 오전 진료를 끝으로 진료실은 예전의 강당 모습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오늘은 생각보다 환자들이 많지 않아 다소 여유가 있었다. 주민들과 사진도 찍고 인사도 나누었다. 주민들이 사진 찍기를 좋아해 한분을 찍어주자 너도나도 뽀또뽀또 하며 사진 찍기를 원해 원하는 데로 찍어드렸다. 예쁜 팔찌를 만들어와 봉사자들의 손목에 채워주는 아줌마, 케익과 과자를 구워와 나누는 분도 있었다. 작은 나눔에도 치료해줘서 고맙다며 몇 번이나 인사를 하며 떠났다. 그새 정이 들어 환자들이 내 어머니 아버지처럼 느껴져 서로 안고 볼을 부벼 볼뽀뽀를 했다.


미국 직장에서 오래 일하면서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우울증과 불안과 절망감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작은 불편함에도 따지고 불평하던 부자동네 아줌마들, 내 권리는 반드시 찾아 누려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 여기던 사람들, 다른 사람의 편의보다 본인의 편의를 우선하던 사람들, 돈을 앞세워 가난한 이를 무시하던 사람들,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며 특별대우를 원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물질적으론 부족하나 이웃과 나눌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환한 웃음을 띤 사람들을 보며 물질의 가난함과 정신의 가난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이 진정 가난한 걸까. 며칠간의 봉사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난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환자들의 의료기록지를 모아보니 5일간 763명의 환자를 보았다. 관절염 환자 수가 가장 많았고 고혈압과 허리통증 당뇨환자도 많았다. 무엇보다 성형외과의가 둘이나 와서 이런저런 수술을 13건이나 해줄 수 있었다. 특히나 얼굴과 다리에 난 혹이나 큰 사마귀가 난 분들의 고민을 해결해주었고 발톱이 살을 파고들며 자라 걷지 못할 정도로 발가락이 부어 곪아 있는 환자의 발톱제거술도 해주었다.첫날 말도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을 하고 치과에선 기계작동이 수시로 멈춰 환자를 과연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놀라웠다.


70대에서 10살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이번 봉사 팀은 각자 맡은 바 임무 뿐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하며 최선을 다했다. 쉬지 않고 각 처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예전에 어떤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한 성당을 거쳐 가는 신부님들은 각자 성령께 받은 능력이 다르다 했다. 어떤 분은 말씀의 능력을, 어떤 분은 발로 신자들을 찾아다니는 능력을, 어떤 분은 신자들의 어려움을 잘 들어주는 능력을 받고 오신다. 그 신부님 한분한분이 모여 예수님의 손 발 입 귀가 되어 예수님이란 몸을 이룬다 하셨다.


여기 환자들을 찾아온 봉사자들도 환자의 아픔을 귀 기울여 듣고, 아픈 이를 치료하고, 눈 검사를 하고, 침을 놓고, 수술을 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며 예수님의 손과 발, 귀와 눈이 되어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먼 곳까지 봉사 오려면 많은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과 기부금까지, 내어 놓아야 할 것이 많다. 그 돈으로 삐까번쩍한 휴가를 갈 수도 있을 것이고 갖고 싶던 물건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 환자만 보던 의료인도 휴가 때까지 환자를 보는 일이 쉽진 않을 것이다. 내가 하고픈 일, 내가 갖고픈 것, 내가 누릴 시간을 양보해야만 가능한 게 봉사란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땀 흘리는 봉사자들이 빛나 보였다.


진료실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통역봉사를 해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하느라 바빠 그분들께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해서였다. 사복 차림을 해서 몰랐는데 모린은 아일랜드 출신의 자비의 수녀회 소속의 수녀님이셨다. 25년 전 페루에 와 지금까지 빈민지역에서 봉사하다 올해 아일랜드로 돌아가신다 했다. 데이지 수녀님과 델리아, 평신도 봉헌 생활자인 알리나, 환자로 왔다가 통역을 맡아준 니에베스, 그리고 독일에서 남자친구와 봉사하러 온 에블린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많은 분이 이곳 본당 소속 진료소인 Posta Medica에서 봉사하고 계셨다. 성당에 주민들을 위한 진료소가 따로 있다는 것도 놀라왔다.


오후엔 500여개 계단을 올라야 만나는 달동네 산 위 공소에서 주민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다. 수녀님들은 이 공소를 수없이 오르내리며 미사를 준비하고 주민들을 돌보고 계셨다. 내 주위만 챙기며 사는 동안 세상 구석구석에서 이런 분들이 이웃을 보살피고 있었다.


창세기 말씀에 소돔 성 안에 의인 몇 명만 있어도 그들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며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간구하는 구절이 있다. 어쩜 이 세상도 이런 선한 이들이 세상 곳곳을 지키고 있어 멸하지 않고 지탱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민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 봉사팀이 단체로 ‘주 하느님 크시도다’ 성가를 불러주었다. 이어 성악가 세례나자매의 아름다운 성가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주민들은 답례로 감자요리를 대접했다. 밖으로 나오니 산 아래 수많은 불빛들이 도시를 밝히고 있었다. 우리도 하나의 불빛이 되어 세상의 어두운 곳에 켜질 수 있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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