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비엔나
9일 동안 머물렀던 크로아티아를 떠나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떠났다. 유럽 내 나라와 도시들을 연결해 주는 플릭스(flex) 버스를 이용했다.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오스트리아 수도인 비엔나까지는 5시간. 이동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거의 하루지만 그래도 제법 가까운 거리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트램을 타고 자그레브 버스정류장까지 이동, 비엔나행 플랫폼을 찾고, 차에서 점심으로 때울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고 오후 12시에 출발. 두 번의 국경을 통과한 후, 오후 6시를 넘어서야 오스트리아 비엔나 플릭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비엔나 플릭스 버스정류장 근처 지하철역을 찾아 위아래 몇 번을 왔다 갔다, 겨우 전철을 타고 20분 정도 이동 후 숙소 근처 역에 도착, 역에서 숙소까지 다시 짐 끌고 도보로 10분 정도 가서야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 9일 기도가 시작된다. 곳곳에 숨어 있을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가톨릭 신앙 이야기들, 그 안에 담겨 있는 이곳 사람들의 믿음은 어떤 모습일까.
54일 묵주기도(청원기도) 10-18일
비엔나, 오스트리아
10일째 6. 29. 토. 슈테판성당 (9일 기도, 미사)
11일째 6. 30. 일. 예수회성당 (9일 기도). 슈테판성당 (미사)
12일째 7. 01. 월. 성페터성당 (9일 기도, 미사)
13일째 7. 02. 화. 성미하엘성당 (9일 기도, 미사)
14일째 7. 03. 수. 성페터성당 (9일 기도, 미사)
15일째 7. 04. 목. 카를성당 (9일 기도, 미사)
16일째 7. 05. 금. 마리아힐프성당 (9일 기도, 미사)
17일째 7. 06. 토. 카푸친성당 (9일 기도, 미사)
18일째 7. 07. 일. 몰티즈성당(9일 기도). 성페터성당 (미사)
*2019년도 4월부터 약 7개월 동안 유럽 성지순례 때에 했던 우리가 정한 일명 <기도프로젝트>는 한 나라에 9일씩 머물면서 '묵주기도의 9일 기도'를 바치는 것인데, 이렇게 6 나라를 이동해서 총 54일 청원기도를 바치는 일정이 있었다.
'묵주기도의 9일 기도' 기도책자를 보면서 매일 5단씩 묵주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편지와 초를 함께 봉헌했으며, 거의 매일 미사를 봉헌드렸다.
슈테판성당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상징인 슈테판성당. '비엔나의 혼'이라 불린다. 성당 이름인 '슈테판'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 성인 '스테파노'다.
스테파노는 이태리어, 슈테판은 독일어.
음악가 모차르트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져 더 유명한 스테판성당. 이곳에서 오스트리아에서의 9일 기도 첫날이 시작되었다.
푸른빛과 금빛이 교차된 모자이크 지붕이 돋보이는 성당의 외관.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모습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12세기부터 건축이 시작됐으니 현재 거의 800년이 된 셈이다. 성당에 들어서면 전체적으로 어둡게 깔린 빛깔에 엄숙한 분위기가 감돈다.
미사시간이 가까워지면 중앙제대를 둘러싼 철문을 지키는 분이 문을 반쯤 열어두고 있는데, '미사!' 아니면 'Mass(매쓰)!'라고 말하면 들어가도 좋다고 손짓한다. 미사시간에 중앙 제대로 걸어 들어가면 웅장하고 화려한 성당 내부와 제대의 모습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성당 입구와 제대의 중간 즈음에 천장에 십자가가 매달려 있다. 먼저 고개 들어 예수님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인자하신 예수님의 눈빛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았다. 곧 미사가 시작됐다.
거양성체 시간. 어머나! 신부님 얼굴보다 더 큰 성체를 올리셨다. 예수님의 커다란 품에 푹! 안기는 것 같아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복사가 널따란 빛나는 쟁반을 가져오니 그 큰 성체를 신부님께서 빵처럼 손으로 일일이 쪼개어 주셨다. 어찌 이런 일이! 오스트리아에서 맞이해 주시는 예수님의 환영인사가 놀라울 정도로 벅찼다.
예수회성당
구약성경에 쓰여있는 제단과 성소가 이런 모습일까.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예수회성당에 들어서자마자, 길게 쭉 뻗은 물결모양의 커다란 대리석 기둥을 보고 단숨에 압도됐다. 제대 양 옆에 줄지어 있어 성당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인상적이었다. 저녁에 오르간 연주회가 있는지 리허설이 한창이라 성당 전체를 가득 채우는 연주가 우리 마음을 더 깊고 크게 울렸다.
자연스레 경건해진 마음으로 9일 기도를 바치고 성당을 나서는데, 입구 맞은편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어둡고 서늘한 계단에 희미하게 비추는 빛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는데, 지하무덤이었다.
돌아가신 신부님들을 모셔둔 무덤이었다. 폰을 켜고 미리 저장해 둔 짧은 연도를 열어 이곳에 묻혀 계신 신부님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드렸다. 연도가 끝날 무렵 성당을 관리하는 분이 내려오셨다. 아마도 문을 닫기 전에 우리를 기다리신 모양이다. 잘 가라는 인사를 온화한 미소로 대신하셨다. 우리도 환한 미소로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성페터성당
성페터는 베드로 성인을 말한다. 슈테판 성당 근처에 있는 성페터성당은 모차르트가 다단조미사곡 작품을 초연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돔형태의 지붕이 시내 중심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듯 한 성페터 성당. 들어서면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듯 한결 더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제대와 의자에 밝은 불이 들어오면 미사가 시작된다. 의자에 새긴 천사 얼굴 조각들, 제대 중심에 모셔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둘러싼 성 미카엘과 성 베드로 상의 화려한 아름다움이 빛이 난다.
미사 전례를 정성껏 마치고 성당을 둘러봤다. 제대의 양 옆에 옷을 입고 계신 두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다. 1733년 이곳 추기경님께서 로마 카타콤베에서 모셔 온 순교자의 유해라고 한다. 당시의 오스트리아 복식을 갖춰서 모셨다고 한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으셨던 순교자의 강한 믿음을 본받고 싶은 마음에 유해 앞에 서서 기도드렸다. 하늘이 감동할 만한 믿음을 지닌 순교자의 전구 하심에 강하게 의탁하며 기도 지향의 응답이 비처럼 내리길 청했다.
'로마 카타콤베에서 모셔 온 순교자의 유해'
성페터성당의 소제대에는 지난번 자그레브 대성당에서 축일미사에 참여했던 성인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성화도 모셔져 있었다. 슈테판 대성당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성페터 성당에는 여러 성모님 성화도 많이 모셔져 있었는데,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성화는 교황 레오 13세께서 하사하신 '좋은 충고를 주시는 어머니 마리아'였다. 살면서 늘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 '지혜와 슬기' 였기 때문에. 마침 성당 입구에 마련된 무인판매대에 성화가 있어서 지갑에 넣기 좋은 크기로 몇 장 살 수 있었다.
'좋은 충고를 주시는 어머니 마리아'
성페터성당이 특별한 이유는 '성모신심'이다. 삼위일체 공경과 더불어 성모님 공경이 시작되면서부터 이곳에서 비엔나 최초로 마리아 기도모임이 시작되었다. 비엔나에서 둘러본 성당 중에 유독 가장 따뜻하고 훈훈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 때문이지 않았을까.
' 비엔나 성페터성당에서는 기도지향을 쓸 수 있는 곳이 있다'
성페터성당은 규모가 작아 금방 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 모셔진 많은 성모님 성화와 성인들에게 담긴 이야기를 읽고 의미를 깨달으며 천천히 기도한다면 그리고 성페터 성당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미사봉헌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뜻깊은, '알찬 순례'를 할 수 있다.
성미하엘성당
비엔나 성미하엘 성당 소제대와 중앙제대
성미하엘은 '미카엘대천사'를 말한다. 이곳은 호프부르크 왕궁 바로 옆에 있다. 미리 알아둔 미사시간에 맞춰 들어갔는데 어쩐지 조용했다. 제대 쪽으로 더 들어가 보니 무슨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제대 오른쪽으로 가보니 소성당이 있었다. 미사가 시작됐다. 작은 제대에 몇 명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 셋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잠들기 전에 그리고 아침기도를 드릴 때 성 미카엘 대천사께 화살기도를 자주 드린다.
'성 미카엘 대천사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를 지켜주소서!'
그러다 보니 성 미카엘 대천사를 주보로 모신 이곳에서 드리고 있는 미사가 어느 곳보다 감동이었다.
미사 후에 성당 입구 옆에 작은 공간이 있어 들어가 봤다. 성모님을 모셔 둔 곳이었다.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우리를 바라보시는 성모님의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잘 왔다. 힘들지... 쉬었다가렴~내가 너희를 기억하고 있으니 안심하렴.'
예쁜 꽃들처럼 성모님 앞에 우리의 모습이 예쁘게 봉헌되길 바라며 기도드렸다. '한 걸음도 제 뜻이 아닌 주님 뜻이 되길 어머니께 전구 합니다!'
성미하엘성당의 제대 옆에 있는 한 소제대에는 세워두는 작은 십자가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름과 날짜가 적힌 종이도 같이 있었는데, 아마도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봉헌된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위령성월이 되면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제대에 봉헌하고 연도를 바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딜 가나 기도하는 모습은 이처럼 간절하고 정성이 가득하다.
사실 이 성당 또한 모차르트로 유명한 곳이다. 모차르트가 한창 오페라와 다른 곡들을 작업 중이었을 때, 어떤 사람의 요청으로 '레퀴엠'을 동시에 작곡하게 된다. 무리한 작업으로 점점 건강이 악화되면서 모차르트는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며 미완성으로 남게 된 레퀴엠이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작곡을 공부하면서 좋아하게 된 모차르트의 삶이 순례하고 있는 성당마다 조금씩 담겨 있어 나에게는 특별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 보다도 '칼과 방패로 어둠을 밟고 물리치는 미카엘 대천사'의 모습이 순례 중인 우리에게 막강한 힘과 보호가 되어 준 것 같아 더 특별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