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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Sep 17. 2019

멈춰진 시간과 버팀의 시간 사이에서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맛집은 아닌걸로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미스터 리에게 힘을 내라고 한다. 미스터 리가 누구이고 어떤 이유로 힘을 내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그런 이유로 영화는 제목 자체로 미스터리를 만드는 재치를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대구로 향하는 부녀를 중심으로 그들의 관계와 드러나지 않은 과거를 미스터리하게 쫓는다.

 코미디로 자신의 입지를 굳힌 이계벽 감독과 모델 출신의 외적 매력과 달리 코미디에서 재능을 발휘해온 차승원 배우의 조합은 추석 연휴 개봉이 더해져 기대감을 높였다. 염려가 없진 않았다. 대구 지하철 참사라는 실제 사건을 코미디 장르 안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미지수였다. 일찍이 김현석 감독은 <스카우트>를 통해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코미디로 풀어내어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실제로 감상한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관객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다. 코미디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 웃음에서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영화의 웃음 포인트와 관객이 느끼는 웃음 포인트가 공감해야 한다. 그 지점에서 영화는 대체로 낡고 지나간 곳에 머물러 있다. 상황적인 웃음은 <완벽한 타인>이 주는 긴장의 극적 해결이나 절묘한 타이밍이 주는 쾌감에 미치지 못한다. <극한직업> 속 촌철살인이 주는 통쾌함이나 찰진 대사의 맛도 전해지지 않는다. 장르적 공감에서 실패했으니 이대로 비난 속에 머물러야 할까? 영화에서 코미디라는 장르의 옷을 벗겨내면 전혀 다른 지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는 마주함에 있다. 아빠와 딸이 마주하고,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마주하고, 장애 혹은 질병이 편견과 동정에 마주하고, 멈춰진 시간과 버티는 시간이 마주한다. 이 모든 것을 마주하게 하는 가운데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다. (2003년 발생)

 

겉보기에는 멀쩡하죠

 철수와 샛별이 처음 만나는 순간, 둘은 나란히 앉아 TV를 본다. 정상적인 부녀의 모습이지만, 두 사람은 아직 부녀 관계인지 알지 못한다. 이 둘은 마주 선 상태가 되어서야 부녀 관계임을 알게 된다. 둘의 모습은 어떠한가? 철수는 지적 장애인에 스타일링에 실패한 파마머리를 하고 있다. 샛별이는 백혈병에 투병으로 인해 민머리를 하고 있다. 두 인물의 상황도 마주하고 있다. 철수의 시간은 과거의 사고로 인해 멈춰 선 상황에 놓여있다. 샛별의 시간은 미래를 향해 있지만, 병으로 인해 한해 한해 버티는 상황에 놓여있다. 모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상황에 놓여 서로 마주하고 있다. 마주함이 이 부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안길강이 연기한 체육관 관장은 조폭 두목이라는 과거와 체육관 관장이라는 현재가 마주하고 있다. 성지루가 연기한 주정뱅이는 상습 음주운전이라는 과거와 금주를 선언한 현재가 마주하고 있다. 철수와 샛별은 자신이 가진 시간을 어떻게 다시금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느냐의 문제라면 주변 인물들은 특정한 사건을 통해 정상적이지 않았던 삶이 정상적인 삶으로 변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마주함은 당시 참사의 기억을 마주함이다. 이는 단순히 참사라는 기억을 인지하는 것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나아가기 위한 마주함이다. 멀쩡하다 못해 매력적인 외모의 철수라도 말을 하는 순간 놀람과 비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철수는 이에 신체를 단련하여 물리적 힘으로 헤쳐나가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샛별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인다. 때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병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잠시의 동정을 얻어 사인볼 하나 얻을 뿐 자신에게 맞는 골수는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샛별이의 마주함은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그 사인볼마저도 자신처럼 투병하는 친구의 버팀을 응원하는 선물이다. 대체 어디가 영악하다는 것인지)

알통을 만드는 이유가 있어요

 이 힘든 인생의 사투를 펼치는 아버지와 딸은 비로소 당시 참사를 마주한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며 각자의 시간을 다시금 돌리기 위한 힘겨운 몸부림을 내친다.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졌다. 지하철이 불타고 배가 가라앉았음에도 살아남은 자의 삶은 계속된다.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들의 삶이 정상적으로 계속되기 위해선 지속적인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대구라는 도시에도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대구라는 도시를 떠올리며 가지는 이미지는 어떠한가? 사건과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 생동감을 잃은 도시로 불린다. 희화화된 조폭의 등장이 영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삶을 향한 힘겨운 몸짓에 조폭의 삶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서기도 한다. 차로 막혔던 길이 기적처럼 뚫리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이 모이면 기적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조폭의 개과천선이란 기적은 삶이라는 현실로 이어진다.

버티는게 최고

 기적이 지나간 아버지와 딸에겐 단정하고 긴 머리가 생겼다. 멈췄던 시간은 딸이 생기며 다시 움직이고, 더디게 버티던 시간은 아버지를 만나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대구에 사는 필자는 군 복무 중 당시 참사를 방송으로 전해 들었다. 다행히 주변 사람이 사고를 겪지 않았고 타지에 있었기에 참사의 충격이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앙로역 공간의 일부는 가벽이 세워져 있고, 당시 현장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공간이 있다. 친구는 자신의 지인을 잃었다고 한다. 그 시간을 통과한 대구사람은 그렇게 삶 속에서 상실과 슬픔을 안고 있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기억과 감정이 지워진 것은 아니다. (필자는 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로 쌍둥이 친구를 잃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겪고 있을 아픔을 영화가 보듬어주는 느낌이 든다.


 분명 코미디 영화로서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다. 그 지점의 비판은 있을 수 있다. 영화는 환상이고 허구이지만 현실을 모방한다. 한 편의 영화는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진정 무엇을 보고 말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놓치면 이 영화가 가지는 진심을 알 수 없다.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는 방식 하나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부디 이 영화가 대구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는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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