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아날로그 보이.

사적인 취향을 꺼내봅니다.

by Monochrome blues

왼손에는 홍콩 영화와 필름 카메라, LP. 오른손에는 여행, 드립 커피, 글쓰기. 자기소개 차 취향을 뽑아보니 생각나는 소지품이다. 트렌드에 민감해야 할 IT 종사자 치고는 은근히 20세기 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행이나 드립 커피, 글쓰기는 그렇다 쳐도 말이다.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누구나 가슴속에 요상한 취향 하나쯤은 품고 살지 않는가.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금세 이런 취향을 가진 친구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가뭄에 콩 나듯 보이더라도 외롭지 않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 그렇지, 우리의 유대감은 상당하거든. 온갖 기술과 문화의 홍수 속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반항심 같은 거다. ‘힙’하다는 표현으로 과거의 향수를 포장할 수도 있고. 물론 이 ‘어른이’의 경우는 힙함때문이 아니라 밑바닥이 20세기 추억과 닿아있어서다. 아날로그 세대의 끝물, 그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명이라 그렇다.


IT업계에서 지금과 옛날 세대를 구분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요새 초등학생들에게 스마트폰 ‘통화’ 버튼이 무슨 뜻이냐 물어보면 사람 귀 모양이라 한단다. 오피스 프로그램의 ‘저장’ 버튼 의미를 물으면 거기에 다른 뜻이 있냐 하고. 혹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저 버튼들에 별다른 의미가 있었나 의아하신 분이 계신가? 축하한다, 당신들은 요즘 사람이다. 통화 버튼은 옛날 전화기 모양이며, 저장 버튼은 USB나 CD가 없던 시대의 저장 매체를 본땄다.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꽤나 그럴싸한 얘기지 않은가? 20세기에는 수화기와 플로피 디스켓이 일상이었으나, 요즘 세상에서는 구시대 유물이니까. 당장 나만 해도 플로피 디스켓을 실제로 본 적은 있지만 CD가 익숙하다. 음악도 카세트테이프보단 CD로 시작했다. 중학교 땐 CD플레이어를 가방 안에 넣어 다녔고, 고등학교 땐 삼각형 모양 mp3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턴테이블은 할아버지 댁에 가야 가끔씩 보던 추억의 물건이었다. 필름 카메라를 언제까지 일상적으로 썼나 기억나진 않지만, 가장 귀엽고 이쁜 얼굴의 대부분은 필름 사진으로 남아있다. 최소한 초등학교 때까진 분명히 필름 카메라를 썼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듯 만났던 이들이나, 저들은 취향 밑바닥에 늦가을 낙엽처럼 쌓여있다 새싹을 틔웠다.


낙엽처럼 밑바닥에 쌓인.


대학생 때는 되려 최신 트렌드를 있는 힘껏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나름 ‘얼리어답터’란 자부심도 있었지. 끔찍하고 지루한 군대를 빠져나온 2010년, 남들보다 일찍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받아들였다. 요새처럼 쓸만한 물건은 아니었으나 명색은 스마트폰이요, 태블릿이었다. 스마트폰은 노키아, 태블릿은 ‘아이덴티티탭’이란 아무도 기억 못 할 그런 제품. 그래도 남들이 강의 자료를 종이로 뽑아 다닐 때, 이쪽은 신식 장비에 넣어 다니던 21세기 청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태블릿에 필기란 개념이 없는 데다, 공대에서 사용하는 수식을 키보드로 적을 방법이 없어 공부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게. 그랬던 적도 있었는데. 저때만 해도 새로운 미래에 목을 매었는데, 언젠가부터 거꾸로 가버렸다. 고향을 찾아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말이다. 뭔가 의식하고 했던 행동들은 아닌데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홍콩 영화만큼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혹은 사촌 형들과 영화를 엄청 봤다. 90년대는 홍콩 영화 최고 전성기 때니 자연스레 많이 접했다. 그만큼 홍콩 감성에 많이 젖었지. 그러니 커서도 다시 찾아보는 경우가 잦았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젖어듬과 잦아듦을 반복했다. 시대적으로 볼 때, 홍콩 영화는 사촌 형, 누나들이 마지막 세대다. 이쪽은 그들 틈에 끼고 싶던 어린이였지. 그럼에도 현실의 각박함을 위로받고 싶을 때면 홍콩 영화가 생각난다. 그중에서도 주성치의 ‘월광보합’, ‘선리기연’ 서유기 시리즈는 인생 영화다. 인생에서 후회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꺼내 드는 탓에, 벌써 백 번 가까이 보았다. 언젠가 한 번은 홍콩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글 자막 없이 본 적도 있는데, 얼마나 봤으면 다 알아듣겠더라. 그렇게나 닳도록 봤으면서도 볼 때마다 대성통곡 한다. 극장에서 한 번 보는 게 꿈이었는데, 올해 재개봉해준 덕에 소원도 이뤘다. 어둠 속에서 큰 스크린, 빵빵한 스피커로 보니 울어도 티가 안 나 다행이었지.


홍콩 냄새.


필름 카메라와 LP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소년 역시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의 신봉자다. 워낙 편리하니까. 다만, 넓고 얇음에 아쉬울 때가 있다. 쉽게 받아들이고 편하게 소비하니 ‘내 것’이라는 냄새가 희미하다. 그럴 때면 필름 카메라나 LP가 주는 불편함이 목마를 때가 있다. 필름 카메라를 쓰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하거나 SNS에 업로드할 수 없다. 집에 도착한 뒤, 얼마 남지 않은 필름 현상소에 맡겨야만 확인할 수 있다. 그마저도 결과물을 받아보려면 또 며칠이 걸린다. 근데 그렇게 받아 든 필름 사진의 맛이 남다르다. 찍는 내내 궁금했던 사진들을 여행지에서 보낸 편지처럼 받아보는 기분이다. 기억이 되살아나고, 추억을 밑천 삼아 잠시 여행지에 다녀올 수 있다. 이런 맛을 한 번 들여놓으면 필름을 애정 할 수밖에 없는 거다.


LP는 ‘음악을 틀어놓는다’가 아니라 ‘음악을 꺼내 듣는’단 의미다. LP는 생각보다 수고로운 의식이다. 레코드 판 부피는 남다른 데다 한 면에 잘해야 겨우 서너 곡 남짓 들어있다. 레코드 판을 꺼내어 턴테이블에 얹는다. 바늘을 들어 올려 조심스레 레코드 판 위에 올린다. 이윽고 음악이 재생된다. 한 면이 끝나는데 이삼십 분 정도 걸리며, 턴테이블이 멈추면 다시 처음으로 시작하거나 뒤집어 다음 곡을 재생시켜야 한다. 원하는 곡을 정확히 찾아 재생하기 힘들며, 빨리 감기나 되감기 기능은 없다고 보면 된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편함이다. 심지어 레코드 판은 은근히 개복치 같아 관리가 필수다.


불편함이 매력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내내 원하는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비슷한 취향의 곡을 추천해주니 새로운 음악을 만나기도 쉽다. 너무 편하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찾지 못했을 보석 같은 뮤지션도 쉽게 만날 수 있지. 이에 반해 LP는 수고로운 데다 비싸다. 스트리밍 서비스 두세 달치 구독료로 레코드 판 한 장을 겨우 산다. 심지어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요새 음악은 LP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옛날에 나온 음악은 중고 레코드 샵을 기웃거려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사서 듣는 LP는 의미가 너무 깊다. 진짜 그 앨범 전체를 좋아해야만 살 수 있다. 만약 소장 중인 레코드판 대부분이 데이빗 보위, 혹은 ‘Blue note’라는 재즈 레이블에서 출시된 음반들이라면, 그들과 진짜 사랑에 빠진 거다. 그렇게 자기 취향의 밑바닥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지친 하루의 끝, 혹은 생기가 필요한 주말 시작에 딱 맞는 곡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방 안의 밝기를 낮추고 손수 내린 드립 커피들 곁들인다면. 인생 뭐 있나. 지금 이 순간이 최고다.


서른셋의 아날로그는 고생스러운 취향이다. 약간은 촌스럽고 불편하며 수고롭다. 심지어 이 취향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대의 선망이 아니며,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의 일상과도 다르다. 선망하기에는 이미 겪어보았으나 추억하기에는 경험이 옅으니까. 지금 봐도 딱 삼삼한 친구들이라 좋은 거다. 적당한 의미를 우려내기에 좋은 재료들이라 사랑할 수밖에 없지. 서른셋 어른이의 취향은 그런 거다. 왜 좋냐고 묻는다면 그냥 '좋아할 수밖에 없어서'라고 답하겠다. 20세기 소년의 의미 심장한 U턴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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