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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o Jan 07. 2016

독고탁, 그리고 이상무 선생님을 추억하며.

시대마다 두드러진 주인공들이 독자들과 어우러졌지요. 한 시대를 풍미한 만화가 있고 그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독고탁은 그중에서도 뚜렷이 한 시대에 선을 그은 만화였습니다. (이 희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오늘은 한국 만화에 큰 영향을 끼친 캐릭터 독고탁, 그리고 얼마전 별세하신 이상무 선생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하고 싶었던 주인공이 얼굴을 변장하고 야구를 한다’ 이런 이야기로 태어난 독고탁은 강한 발음에서 느껴지는 인상 그대로 반항과 악바리 기질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내 이름은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 <다시 찾은 마운드> 등의 작품으로 이현세 선생님의 '까치'와 함께 한국 야구만화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지만 저에겐 야구 선수 독고탁보다는 <비둘기 합창>에서의 귀여운 막내로 기억됩니다. 그 이유는 제 인생에서 최초로 본 애니메이션이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인데 그 당시 꼬마였던 제게 주었던 감동이 지금까지도 깊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비둘기 합창>

정작 더 유명한 다른 작품들은 어렸을 적 동네 대본소 만화방, 동네 이발소 한편에 있던 책장, 피아노 학원 책장, 소아과 책장..이렇게 드문 드문 있던 독고탁 시리즈를 읽은 것이 전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서든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시리즈를 다 보지 않은 제게도 이 캐릭터는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럼 무엇이 독고탁이란 캐릭터를 이토록 특별하게 만들었을까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한 큰 이유는 다음의 2가지였습니다.



차별화 그리고 또 차별화.


한 번 본 독자들에게 주인공을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 당시 어린이들이 된발음을 좋아한다는 것에 착안했고, 두 자 성(姓)의 이름 중에 가장 강한 발음이 나오는 '독고' 성을 택하게 됐습니다. 거기에 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탁'이란 이름을 붙였죠. (이상무 선생님 인터뷰 중에서).


이상무 선생님도 처음부터 만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상무 선생님이 작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는 대본소 체제와 문하생 제도를 통해 한 달에도 수백 권의 만화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그로 인해 신인작가들이 많이 등장했던 시기였습니다. 기라성 같은 만화가들은 한 달에 열 편 이상씩을 문하생을 두고 그려낸 반면, 이상무 선생님은 혼자 한 달에 두 권을 그리도록 배당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원고료가 박해 문하생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작업을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상무 선생님은 철저하게 남들과는 차별화되기 위한 노력을 하셨습니다. 위의 인용구처럼 외형부터 이름까지 사소한 디테일 하나도 남들과 차별화되기 위해 고민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만화 주인공의 모습.

지금도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만화 주인공은 외모, 능력,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히어로로 묘사가 됩니다. 하지만 이상무 선생님은 이와 정반대의 만화 주인공을 만드셨습니다. 머리는 빡빡 밀고, 키도 작고, 이름도 흔치않은 '독고'라는 성을 가진 캐릭터. 게다가 기존의 히어로 같은 주인공과는 달리 악동에 가까운 행동과 세상에 대한 반항, 고독과 후회로 가득찬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만화 주인공과는 확실히 다른 '독고탁'.

슈퍼맨 같은 먼 나라 히어로는 아니지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을 가진 독고탁이란 캐릭터는 이런 차별화의 고민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상무 선생님은 만화 제작 방식에서도 기존과는 다르게 진행하셨습니다.  작품마다 책 표지 제목을 '독고탁의 ㅇㅇㅇ'라고 지은 것이죠. 독고탁이란 캐릭터는 작품마다 연관성이 없는 다른 인물이었지만, 이 캐릭터가 가진 차별화된 외형과 성격은 일관성을 유지하여 반항아의 속성을 갖춘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성공하여 독고탁이란 캐릭터를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만듭니다. 동료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이 ‘이상무 때문에 매일 2등 밖에 못했다’라고 말하실 정도로 말이죠.




현실을 반영한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


1950년대, 그러니까 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내 친구들이 등장하고,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해보려고 하는데, 극적인 재미는 크게 없을지라도 당시에 우리 세대가 성장한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은 것이죠. (이상무 선생님 인터뷰 중에서).


이상무 선생님의 작품이 기존 만화와 달랐던 점은 독고탁의 현실적인 외모에서 느껴지듯이 현실에 기반을 둔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를 다루셨다는 점입니다. <비둘기 합창>에서는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서 가족들의 생계가 곤란해지자 6남매가 다방 취업, 공사판, 연탄 배달 등 각자의 방법으로  가족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70년대 가족의 모습을, <한국인>에서는 재일 동포라는 태생과 돈 그리고 야구를 두고 갈등하는 가족의 모습을, <감또깨이 입에 물고>에서는 전쟁 직후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구슬치기, 딱지치기,한 여름의 멱, 겨울 썰매 등으로 달콤하면서도 슬픈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점 등 그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역사 책처럼 현실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심지어 고아들의 이야기가 작품 속에 사실적으로 표현되자, 한때는 독자들로부터 고아 출신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으셨다고 합니다.


<비둘기 합창> 중에서. 다리가 불편한 큰딸 '독고숙'.
<비둘기 합창> 중에서. 고시를 포기하려는 큰아들 '독고준'.
<비둘기 합창> 중에서. 아버지가 무시당하는 모습에 분노하는 봉구

이렇게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이상무 선생님의 만화에는 허구 속에서도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과 연결되는 장치가 늘 있었고 이로 인해 단순히 웃음을 전달하는 만화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인정 받은 것입니다.



난 아직도 내 그림을 보면 부끄러워요. 너무 못 그린 것 같아서...근데 또 생각해보면 아직도 언제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예기거든. (이상무 선생님).

최근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웹툰을 연재하기 위해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페인터 등 다양한 그래픽 프로그램에 대해 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도전하시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며 만화를 향한 열정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처럼 차별된 만화를 그리기 위해 수없이 노력을 하셨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업을 하신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집니다. 차별화와 노력 그리고 열정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시간을 주신 이상무 선생님을 이곳에서 나마 추모하고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독고탁이라는 캐릭터를 이 세상에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상무 선생님을 추모하며.


*참고자료 및 이미지 출처
늙지 않는 소년 이상무  http://dokkotak.com/  

한국인 이상무 - 네이버 캐스트, 2013.03.29.

만화가 이상무 - 네이버 캐스트, 2009.05.29.

"국민남동생 ‘독고탁’아시죠?" - 서울문화투데이, 2009.8.27.

이상무의 〈비둘기 합창〉 - 씨네21, 2002.11.7.


*본문에 인용된 글과 이미지는 전부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문제가 될 시에는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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