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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o Jan 20. 2023

우리의 직관이 합리적인 기획을 방해하는 이유

행동경제학 고전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우리는 기획을 할 때 혹은 디자인을 할 때 직관(일명 '본능' 혹은 '무지성 상태')에 많이 의존합니다. 왜냐하면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고 머리 아프게 노력할 필요가 없거든요. 이건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원시인 시절부터 인류의 뇌는 생각을 하면 불편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야생으로부터 위험을 빠르게 발견하고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반달곰이 나한테 달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곰이 나한테 달려오고 있네? 왜 달려오는 거지? 저 곰의 상태를 분석할 수 있는 흔적들이 주위에 있을까?.."  이렇게 깊이 고민하는 것이 뇌의 기본모드로 설계되었다면 인류는 진즉에 멸망했을거에요. 생각하기 전에 직관을 믿고 튀어야 생존할 수 있죠!


뇌의 기본모드가 직관모드여서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생이 아닌 사무실에서 일하는 요즘 인류에게는 이런 직관이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 하도록 방해합니다. 이런 직관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민을 해보지만 우리가 어떤 심리효과에 영향을 받는지 모른다면 그 고민의 결과물은 무지성 상태와 다르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행동경제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생각을 위한 생각', '넛지'에서 주장하듯이 우리의 직관은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인간은 다양한 외부 영향으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결과들이 존재하는데요, 우리가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직관이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떤 방해를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깊게 생각하세요, 휴먼

그럼 우리가 기획 혹은 디자인을 할 때 직관에 영향을 주는 심리효과들은 무엇들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개인적으로 자주 경험했던 심리효과들을 정리해봤습니다)




후광효과


제가 {애플, 구글, 넷플릭스 등}에서 이 기능을 써봤는데 괜찮더라고요~ 이번 프로젝트는 이렇게 해결하면 될 것 같아요


기획 회의를 하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심리효과입니다. 과거에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경험은 그와 관련된 모든 경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우리의 뇌가 편하고 생존에 유리할 것 같거든요. 이런 이유로 유명한 서비스에서 좋은 인상을 주었던 기능을 발견하면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의 맥락이 맞지 않는데도 해당 기능을 그대로 활용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이것이 후광효과입니다. 후광효과의 무서운 점은 참고한 기능에 대해서 좋은점만 기억하고 그 뒤에 감춰진 문제들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해결해야하는 문제와 똑같은 맥락을 갖고 있는 기능이 아니라면 그 기능은 예상하지 못한 추가문제를 가져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벤치마킹 자료를 조사할 때는 반드시 참고하고 싶은 기능의 기획의도를 역추적하고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의 맥락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합니다. 그래야 후광효과로부터 벗어나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처럼 말이죠.


합리적인 사고

애플에서 이 기능을 왜 만들었나 추적을 해보니 저희가 해결하려는 문제의 맥락하고는 일부만 동일한 것 같아요. 이 기능에서 일부는 참고하되 나머지 부분은 우리 문제상황에 맞춰서 다르게 처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적은 표본


제 친구들에게 인터뷰해봤는데요, 우리 사용자들은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계속 생각나네..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아
새로운 컴퍼넌트를 제작해봤는데 시안을 보니깐 괜찮은 것 같아요, 바로 추가하면 어떨까요?


우리의 뇌는 전체가 아닌 일부의 적은 표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시간과 노력을 더해서 전체 현상을 파악하는 것은 뇌가 힘들어하거든요.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일부 현상을 일반화하는 편이 뇌가 빠르게 현상을 파악할 수 있어 생존에 유리하기도 하고요. 만약에 여기서 내가 보고싶은 결과가 정해져 있을 경우, 보고 싶은 결과에만 집중하는 확증편향과 초점효과가 작용합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추가로 조사하지 않았던 맥락들을 무시하게 되서 합리적인 결정을 방해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처럼 특정 이슈에 대해서 조사할 때는 뇌가 본능적으로 적은 표본을 일반화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계속 인지해야합니다. 그 욕구를 억누르고 데이터 툴을 통해 최대한 많은 표본을 조사하거나 보이지 않는 맥락에 대해 조사를 한다면 현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결정을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겠죠? 추가로,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에 의하면 직관적인 결정보단 어설프더라도 '기준'을 세운 뒤에 내리는 결정이 훨씬 만족스러울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기준을 세울 경우, 현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수월해져서 적은 표본, 후광효과 등의 심리효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합리적인 사고

제 친구들이 이런 인사이트를 주었는데 우리 서비스 문제의 원인이 맞는지 데이터 툴에서 확인하고 알려드릴게요!
해결이 급한 다른 문제는 없는지, 제작 일정이 남아있는지도 확인한 뒤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해보자
새로운 컴퍼넌트가 필요한 기준을 리스트업 해보고 기존 컴퍼넌트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 때 추가하면 어떨까요?




회상용이성 효과


제가 어제 경험해봤는데 그 부분이 문제원인 같아요!
이 기능의 스펙현황이 뭐였지? 내가 예전에 이렇게 처리했었나?...그래 그게 맞을거야~
저는 그 아이디어로 사용자들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돼요. 다른 아이디어는 없나요?


우리의 뇌는 기억에서 먼저 떠오르고,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일수록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발생할 확률이 낮은 비행기 교통사고가 자동차 교통사고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나, 한국인은 모두가 김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우리의 뇌는 대표성(혹은 편견)이 강하거나, 후광효과 같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거나, 오랜기간 학습이 되어 떠올리기가 쉬운 경험에 대해 속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을 회상용이성의 효과라고 하는데요, 발생하는 원인은 적은 표본 심리효과와 똑같습니다. 쉽게 떠오르는 일부 현상을 일반화해야 뇌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나,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 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하고 무시하게 됩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맥락 속에 중요한 스펙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이런 심리효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당 현상에 대해서 정량적인 데이터를 확인하거나, 과거에 기록했던 문서를 다시 확인하거나, 이해하기 쉬운 사용자 시나리오를 요청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맥락을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래야 회상용이성 효과로부터 벗어나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

어제 의심이 가는 부분을 경험했는데, 진짜 문제원인 인지는 데이터로 확인 후 공유드리겠습니다
이 기능의 스펙현황이 뭐였지? 이전에 기록해둔 문서를 확인해보자
그 아이디어로 사용자들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돼는데, 사용자들이 혜택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를 설명해주시겠어요?




내부관점


이 스펙은 제가 하루면 충분히 디자인 할 수 있어요!
제  아이디어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다른 분께서 말씀하신 단점보다 클 것 같지 않나요?
아니, 이 아이디어를 고민하느라 제가 며칠을 썼는데...여기서 어떻게 뒤집어요?


우리들은 나의 능력을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것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남들과 다를 것 같거든요. 그래서 내 아이디어에 대해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으면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특정 아이디어에 대해 시간과 노력을 많이 사용한 상태라면 더더욱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동료들의 피드백과 비슷한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제작기간이 예상보다 오래걸리거나, 배포 후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거나 말이죠. 이런 것이 전형적인 내부관점의 사례입니다. 내가 가진 내부관점으로만  현상을 판단하면 분명히 나와는 다른 경험, 다른 가치관, 다른 신체조건, 다른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겪는 문제점들을 놓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용자 한 명의 마음도 읽기 어려운데 다양한 사용자의 마음을 내 관점만으로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과연 사용자들은 내가 기대하는 최적의 환경에서 서비스를 사용할 확률이 높을까요? 이런 내부관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외부관점에 마음이 열려있어야합니다. 내 관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거나, 기획초반에는 특정 아이디어에 많은 노력을 쓰지않는 것이 동료들의 피드백을 경청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현상을 판단하는 관점'과 '동료들이 현상을 판단하는 관점'이 일치할 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고

이 스펙을 해결하기 위한 이슈들은 무엇들이 있는지 리스트업 해보고 디자인 예상일정을 전달드릴게요
여러분께서 알려주신 단점도 고려해서 더 나은 해결책을 고민해보겠습니다
고민한 시간이 아쉽지만, 프로젝트 목표달성에 적합하지 않다면 다른 아이디어를 고민해보겠습니다




평가 기준점 불일치


이 지표가 떨어졌다고 하셨는데, 문제가 될 정도인가요?
우리가 제공하는 콘텐츠가 800개나 되는데, 이 정도면 많은 편 아닌가요?
저는 우리 서비스 품질에 큰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현상에 대한 가치평가를 할 때 비교대상 기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내립니다. 그래서 특정 현상을 평가할 때는 직관적으로 '좋다/나쁘다' 혹은 '많다/적다'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 먼저 평가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합니다. 비교는 현상에 대한 평가를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만약에 평가 기준을  잘못 삼았다면 '우리 제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는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만화책을 100권 갖고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경우 저는 만화책을 많이 갖고 있는 편일까요? 적게 갖고 있는 편일까요? 만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분들을 기준으로 삼으면 저는 만화책을 많이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만화책을 수집하신 분들을 기준으로 삼으면 저는 만화책을 조금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거에요. 이처럼 평가 기준에 따라서 현상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후광효과, 적은 표본, 회상용이성, 내부관점 등의 심리효과들로 인해서 우리는 평가 기준을 잘못된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잘못된 기준으로 인해서 우리 제품이 겪고 있는 현상을 진짜로 문제였지만 문제가 아니라고 결론낼 수도 있고, 사실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문제라고 결론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제품과 관련된 현상을 발견하면 직관으로 빠르게 판단하지말고 조사를 해야합니다. 해당 현상에 대해서 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과거 사례가 있는지, 업계의 유명한 사례는 없는지, 사용자 데이터는 없는지 등을 말이죠. 이런 정확한 기준점을 찾기 위해서는 직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상에 대한 평가 기준을 두고 깊은 고민을 하면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고

이 지표가 저번달 기준으로 30% 떨어진 걸 보니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우리가 800개의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경쟁사를 기준으로 보니 10%도 안되는 적은 양이었네요
우리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경쟁사 서비스와  우리 서비스를 비교해보니 개선점들이 많아 보이네요



이제까지 직관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효과들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위의 심리효과들을 참고하셔서 직관에 의지하기보단 깊은 고민을 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마무리 요약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약

사람의 직관은 후광효과, 적은 표본, 회상용이성, 내부관점, 평가 기준점 불일치 등 다양한 심리효과의 영향으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귀찮아도 눈에 안 보이는 전체맥락을 조사해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어설프더라도 기준을 세우고 현상을 평가해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직관과 기억보다는 데이터와 문서를 믿어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출처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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