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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May 09. 2021

휴먼 카인드

희망의 역사

'창조자나 우주 계획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수백만  동안 눈을 더듬다가 만난 요행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다.' 폭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를  때면 항상 궁금했다. 인간은 정말 악한 걸까. 식민의 시대에서 자본의 시대로 넘어서는 이십일 세기에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자본의 시대는  어떠한가, 여전히 소수의 인류가 절반 이상의 부를 독점한 불평등한 사회에서, 인류는 자본을 무기로 타인을 착취하며 자신의 안위를 돌보기에 바쁘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은 더욱 구체화되었고, 세상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인간은 선하다고?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장은 당돌하게만 들린다.  당돌함을 넘어서고 싶어 책을 펼쳤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뤼트허르 브헤르만의 방법론은 참 사회과학적이다. 그는 정말 있는 그대로 통계와 연구, 인터뷰와 분석들로 악의 전형을 파괴해버린다. 인간은 악하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홉스의 성악설 이후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덧붙여졌는가. 그가 나열하는 저작과 실험들이 한 움큼인데, 그중에 눈에 익은 족적만도 아래와 같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그리고 한나 아렌트와 아돌프 아이히만. 우리가 흔히 인간은 이기적이다, 인류는 악하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선하지 않다고 믿었던 수많은 작업이 그의 메스에 의해 폐기된다. 그의 말마따나 진실은 소설과 정반대였다.


작년 이맘때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과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를 연달아 읽으며 인간의 악함에 대해, 권력을 좇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한참을 고찰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저작들은 결국 절반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다른 저작들은 대부분 조작되거나, 강요되거나, 진실이 가려져 있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스탠퍼드 교도소의 실험실, 의도된 결말에 좌우된 밀그램의 실험, 악의 평범성 뒤에 숨었던 나치 부역자 아이히만의 진실을 마주하면 인간은 정말 악한 존재일까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는 가차 없이 잘못된 편견들을 바로잡는다.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의 인간은 우호적이고, 전쟁은 본능이 아니다. 권력자가 만들어낸 문명의 상상 속에서 우리가 마주했던 인간이라는 악은 결국 잘못된 인용이 확대 재생산된 결과물일 뿐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드미트리 벨랴예프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길들여진 유인원이다. 가장 친화적이고 성품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식을 갖는 현상이 수만 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종의 진화는 가장 우호적인 자의 생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간은 애초에 협력의 동물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 인간은 신화와 이야기를 통해 문명을 만들어냈고, 문명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여 작용하기 시작했다. '정착지와 사유재산의 출현은 인류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퍼센트가 99퍼센트를 억압하기 시작했고, 달변가는 지휘관에서 장군으로 그리고 족장에서 왕으로 등진했다. 자유, 평등, 형제애의 시대는 끝났다.' 뤼트허르 브헤르만의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를 희망의 역사라 평한다. 홉스와 루소로 대비되는 인간론의 종점은 그에 의해 희망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의 결론에 의구심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가 나열한 수많은 선의 본성은 인류가 저지른 수많은 비극 앞에 주저앉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잘못된 정의에서 구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망설이는 모두에게 그는 마지막 손길을 내민다, 그 누구보다도 인간의 본성인 선함에 기대어.


'하나, 의심이 드는 경우 최선을 상정하라. 둘, 윈-윈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생각하라. 셋,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하라. 넷, 공감을 누그러뜨리고 연민을 훈련하라. 다섯,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비록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할지라도. 여섯,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당신 역시 스스로 가진 것을 사랑하라. 일곱, 뉴스를 멀리하라. 여덟, 나치에 펀치를 날리지 말라. 아홉, 벽장에서 나오라: 선행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열, 현실주의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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