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규 Apr 16. 2021

어린이라는 세계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ACLED에서 한국 시위를 분석하면서 가장 자주 등장했던 주체 중 하나가 참여연대다. 참여연대는 다양한 시위에서 등장하는데, 노동, 인권, 여성 등 주제를 가리지 않는다. 그 참여연대에서 시작한 독서 클럽이 있다. 바로 '혼자 못하는 것도 재주,' 총 세 권의 책을 가지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다. 그 첫 번째 책은 김소영 선생님의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었다. 다른 두 권의 책,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과 천 개의 파랑보다 기대감이 가장 낮은 책이었는데, 기실 주변에 어린이가 한 명도 없었던 까닭이다. 어린이를 돌보면서 어린이로부터 배우는 사람의 이야기. 김소영이 그려내는 어린이라는 세계가 참 궁금하기는 했다.  


나는 어릴 때 참 애교가 많았다. 집안의 막내기도 했거니와 가족들이 사랑 표현에 서툴렀던 까닭이다. 우리 집은 질문이라는 게 별로 없었다. 나는 평생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거나, 나의 이야기를 묻어뒀고, 그렇게 간직한 이야기들은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건 어찌 보면 먼저 표현하고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내게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연애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왜 당신은 내게 질문을 하지 않나요? 당신은 나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나요? 어린 시절 동안 질문을 받는 데 익숙해지고,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던 그녀와, 비교적 조용한 유년을 보낸 나는 그런 면에서 맞지 않았다. 그 연애를 마무리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내게 아이가 생기면 매일 질문을 해야지, 매일 사랑을 표현하고 매일 이야기를 들어줘야지.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김소영은 이처럼 어린이에 대해서 그리면서도 과연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를 지속적으로 묻는다. 소소한 챕터들 사이로 조곤조곤 풀어내는 이야기들에는 각각의 어린이가 있고, 그 어린이에 사랑에 빠진 선생님의 자기 성찰이 함께 따른다.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에서는 어린이의 속도를 맞춰 주는 어른을, '어린이의 품위'에서는 어린이를 품위 있는 객체로 맞이해주는 어른을, '저 오늘 생일이다요?'에서는 존댓말로 어린이를 존중해주는 어른을 그려낸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있고, 결국 우리 또한 어린이였음을 우리는 가끔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의 과거, 우리 자식의 미래 앞에서 한껏 겸손한 어른이 되어본다.  


책을 읽다가 문득 어린이를 위한 단체는 없는 걸까 하고 생각을 해봤다. 앞서 언급했듯 내가 다루는 데이터에는 정말 수많은 단체들이 등장하는데, 노동 단체, 환경 단체, 학생 단체, 정치 단체, 여성 단체, 성 소수자 단체 등 대부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들이다. 하지만 그럼 어린이들은 어떤가. 최근 등장하는 단체들은 대부분 연일 뉴스가 된 극악무도한 사건들에 의해 구성된 시민단체들뿐이다. 어린이 연합은 없는 걸까? 전국 어린이 연합이라든지, 한국 어린이 연대나 어린이 총 연합회라든지. 어린이가 주체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기관은 왜 없는 걸까 하고는 실없는 생각을 한동안 해봤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어느 순간까지는 나이 몫의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도 검수하는 것이 양육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까지가 양육이 아닐까 하고.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아마 그만큼 무겁지 않을까 그것 역시 짐작만 해본다.'라는 김소영의 말마따나,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며 어른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에 대해 되돌아봤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책임을 논하기에 너무나 산뜻하고 따뜻한 책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오르는 언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