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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씨 Oct 19. 2020

끝나지 않는 하루

나는 언제쯤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까요 2

"일단 우회전을 한 뒤에 기다려. 차들이 다 지나가고 완전히 안전하다 싶을 때 들어가면 돼."


스승님을 보조석에 태우지 않고 혼자 처음 가는 길, 남매를 뒷좌석에 태운 채, 여러 번의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난코스였다. 실상은 집에서 10분 거리였고, 남이 운전해주는 차에 타고는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네비를 볼 필요도 없었고 걸어서도 30분 이내인 곳이었다. 언제까지고 모든 코스를 미리 스승님을 태우고 연습해볼 수는 없었다. 약속은 코앞이었고, 늘 바쁜 스승님은 볼일을 보러 나가버리고 없었다.


이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인도로 다니는 사람들이 없는지 확인하고, 내려오는 차량이 없는 걸 확인하고 평소와 다르게 2차선으로 진입했다. 오늘은 쉬는 날, 직장이 아니라 서점으로 향했다. 깜빡이를 켜고 자연스럽게 사거리 대로를 타기 위해 우회전을 했다. 일단 멈추고 지나가는 차들이 적으면 차선을 변경해 들어가려고 왼쪽 사이드미러를 봤다. 안보였다. 뒤에서 오는 차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똥이(아반떼 똥차의 애칭)는 사이드미러가 자동으로 접히고 펴지지 않는 차였다. 스마트키도 아니고 열쇠를 꽂고 돌려서 시동을 걸어야 하는 구식이었다. 출발 전에 사이드미러를 펴지 않기 일쑤였다. 한 달이 넘어가면서 그 횟수도 줄어들었고 출발 전 체크 사항들이 늘어났다. 주차를 할 때는 사이드 미러의 각을 조절해 주차선이 잘 보이도록 조절했다. 창을 내리고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어제도 그렇게 주차를 했더랬다.


왼쪽 사이드미러는 이쁘게 쫘악 펼쳐져 있었으나 땅바닥만 비추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출발할 때 볼 필요가 없는 뒤차들 체크를 놓치고 말았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그저 버튼 하나로 각도만 조절하면 되는데......


"얘들아 뒤에 차 와? 없으면 말해줘."


남매 덕에 무사히 4차선 대로의 2차선으로 진입했다. 출발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깜빡이를 켜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 이상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초보에겐 사이드 미러의 각을 조절할 1초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못 먹어도 고' 이건 뭐 고스톱도 아니고 후퇴가 없었다. 신호대기 중에야 겨우 각도를 조절하고 남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영혼을 갈아 넣은 고마움이었다.


좌회전을 앞두고 다시 차선 변경을 해야 했다. 깜빡이를 켜고 뒤차를 확인하고 핸들을 돌렸다. '빠앙~~' 크고 긴, 신경질적인 경적이 뒤통수를 때렸다.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검은색 RV 차량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내 엉덩이에 딱 붙어있었다. 운전 중에 사과를 하는 법은 보조석에 앉을 때 많이 봤더랬다. 막상 그 경우가 닥치자 미안함이 손이 아닌 얼굴의 모든 근육들로 전달되었다. 새까맣게 선팅이 된 유리창은 내 얼굴의 미안함을 전해주지 못했다. 검은색 RV 차량은 차선을 바꾸어 나를 앞질러가며 다시 한번 강력한 경적을 선물해주었다. 당연한 빡침이라 여기고 겸허히 받아들였다.


드디어 서점 앞 마지막 좌회전을 만났다. 어라? 원래 이곳에는 신호등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다닐 때 늘 신호 없는 건널목을 뛰어다녔는데, 처음 보는 4개의 동그라미가 있었다. 어디에나 있는 그것이었건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 나타난 빨간 동그라미 하나와 꺼져있는 세 개의 검은 동그라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좌회전 신호가 들어오는 건가? 비보호인가? 빨간불이라도 차가 전혀 다니지 않으면 가야 하는 건가?' 분명 마음속으로 한 생각이었건만 남매는 의견을 냈다.


"아, 엄마가 그걸 모르면 어떡해?"

"누나! 초보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하잖아."


'뒤차가 '빵'하면 가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녹색의 화살표가 왼쪽을 안내해주었다. 골목길로 접어들어 서점 뒤 주차장에 도착했다. 당당하게 서점 주인이자 친구인 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와서 주차 좀 해주십시오."


완연한 가을이 되어 해가 짧아졌다. 아직 일몰 이후 운전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시야가 흐려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이들은 3시간을 놀고도 '이제 재미있기 시작하는데 집에 가야 하냐'며 반항했지만 초보 운전자에게 떨어지는 해를 붙잡아 둘 능력 따윈 없었다. 신호와 코스를 지연에게 잘 확인받고 책방을 나섰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 되지만, 이미 석양이 시작되고 있는 하늘에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무사히 돌아왔다. 다른 운전자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고 자~알 돌아왔다. 주차라인에 맞게 후면 주차도 자~알했다. 어두 어둑 해진 하늘을 보니 갑자기 떠올랐다.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을. 한 달 반 동안 비가 와서 아주 흐렸던 단 하루를 빼고 전조등을 켜본 적이 없었으니. 이상하게 좌우로 달리는 차들이, 앞쪽에서 달려오는 반대방향의 차들이 그렇게 밝게 빛난다 싶었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네.' 뿌듯한 마음을 안고 아늑한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길었던 하루가 보람차게 끝이 났다.


'자동차 내부 불 켜져 있어요. 방전될 것 같아서 연락드립니다.'


오늘의 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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