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등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 드디어 혼자 주유소 가기 미션을 클리어할 때가 되었다. 주유를 하고 자동세차장을 이용할 구실을 주기 위해 아똥이는 굉장히 더러웠다. 고속도로 야간 운전을 했을 때, 바닷바람을 장시간 맞고 왔을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요일마다 스승님은 셀프세차장을 찾았다. 차는 관리를 잘해야 오래, 안전하게 탈 수 있다고 짧게는 2시간 길게는 3시간의 세차 외출을 해왔다. 점점 더러움을 쌓아가는 아똥이를 보며 셀프세차장을 가볼까도 했지만 계속 미루어왔다. 아직 좌우 차량을 피해 주차를 하는 스킬은 없었기에, 세차장 바닥 물줄기 구멍에 맞게 들어갔다 나왔다 10분여를 낑낑거리며 구경거리가 될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주유소로 출발하려는 찰나 지갑을 두고 왔음을 알았다. 마음을 먹었을 때, 상황이 닥쳤을 때 이 미션을 수행해야만 하는데...... 착한 은선 언니는 돈도 빌려주고 동행도 해주었다. 언제나 전면주차밖에 하지 못하는 내 실력을 알기에 걱정이 됐나 보다. 직장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셀프 주차장을 찾았다. 자. 내 차는 LPG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럼 경유인가 휘발유인가. 이런 건 좀 차에 적혀있던지, 주유규에 커다랗게 쓰여 있으면 좋겠다. 매번 너무 헷갈린다. 왜 기름을 두 종류로 나누어 사용하는 건가. 네 종류 정도 되지 않는 건 분명히 감사할 일이다. 지난번 주유소 방문 수업 때 분명히 스승님께 아똥이의 기름에 대해 들었고 주유 방법도 관찰했다. 보다 못한 은선 언니가 드디어 내렸다.
아똥이는 아반떼 XD, 은선 언니는 아반떼 AD라서 잘 아는 건 아니겠지만 난 뭔가 같은 기종을 모는 언니에게 신뢰가 더 갔다. 비닐장갑을 끼고 카드를 대고 주유건을 꺼내고 주유구에 밀어 넣는 모든 과정을 천천히 알려주었다. 경유와 휘발유라고만 쓰던가 디젤, 가솔린이라고 영어로 또 쓰는 건 뭔가. 이렇게 되면 4가지나 다름없지 않은가. 노란 총은 경유, 초록 총은 휘발유라고 구분해주면 뭐하나. 내 차가 뭔질 기억하고 있질 못하겠는데. 구세주나 다름없는 은선 언니에게 운전석을 양보했다. 자신감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나는 자동세차장 입구로 들어설 용기마저 사라져 버렸다. 깨끗하게 목욕을 한 아똥이는 백 미터 미남이 되었다.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 덕지덕지, 얼룩덜룩한 세월의 상처 때문에 아무리 때 빼고 광내도 신분을 숨길 수 없기에.
기름도 든든하게 넣고 더러움도 씻어내고 기분 좋게 오후 근무를 위해 아똥이에 올랐다. '드르르르르 드르르르르' 평소보다 유난히 큰 엔진 소리가 거슬렸다. rpm이 붕~하고 올라가는 소리도 없었다. 불안함을 안고 주차장을 한 바퀴 먼저 돌아보기 위해 핸들을 꺾고 10초 후 아똥이는 주차장 한가운데 멈춰 서고 말았다. 시동을 켜고 2초 후에 다시 꺼지기를 반복하다 비상등을 켜고 뇌에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무얼 해야 하지? 어디에 전화를 걸어야 하나? 스승님은 지방 출장 중이라 긴급출동이 불가능했고, 차를 잘 아는 지인은 없었다. 결국 보험회사 긴급출동 서비스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으로.
친절한 목소리의 견인차 기사는 10분 후에 도착을 알렸고, 주유와 세차의 기쁨을 한 시간도 채 누리지 못한 나는 처음 만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깨끗한 아똥이라 감사했다. 오래된 차라서, 이쁘지 않은 모습이라서 어디 가서 천덕꾸러기 취급받을 까 늘 걱정이었는데, 목욕재계한 날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결국 아똥이는 서비스센터로 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평소 가시는 카센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아...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첫 견인에 긴장한 아똥이
정말 창피했다. 누군가에게 초보로 보이는 건 정말 딱 질색이었다. 호구로 보이는 순간 덤텅이를 쓸 수 있다는, 무시당하기 쉽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견인차 기사는 무지렁이를 안심시키듯 편하게 가까운 서비스센터에 데려다주었다. 보험회사와 연계된 그곳에서 앞선 차의 수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조금씩 두려움이 사라져 갔다. 물론 1초도 멈추지 않고 지인들과의 단톡방에 나의 신세를 보고하고 위로와 조언을 받으며 통화까지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똥이의 진단명을 받고 치료까지 20여분, 8만 원의 치료비를 낸 뒤에는 유난을 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지만.
아똥이는 공회전 부품이 낡아서 교체해야 했다. 사실 카센터로 끌려가는 길에 드는 생각은 아똥이와의 이별뿐이었다. 오래된 차는 언제든지 다시 달릴 수 없음을 감안해야만 한다. 고장의 원인을 몰랐던 나는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 출퇴근은 걸어서 해야 하나? 30분은 일찍 일어나야겠다. 대기 시간에는 어디에 가 있어야 하지? 점심시간에도 멀리 가지는 못하겠구나. 아직 대형마트도 못 가봤고, 교외도 못 나가봤다. 아똥이와 할 수 있는 일의 제약은 있었지만, 그래도 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은데...
자가용이 없던 시절에는 누리지 못했던 편리함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똥이가 너무 절실해졌다. 어차피 여기저기 들이박고 긁혀도 표가 전혀 없을 똥차를 나도 소중하게 여기며 몰지 않았다. 미안했다. 남들이 뭐라건, 어떻게 보이건 나에겐 고맙고 필요한 존재였다. 아똥이(아반떼 똥차)란 이름도 미안해졌다. 수리가 끝나고 모든 불안함이 눈 녹듯 사라지고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언젠가 아똥이와 헤어질 그 날까지 우리가 함께였음을 후회하지 않도록 아끼고 아끼며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