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부모가 되는 조건

feat. 부모로 산다는 것

by 짱작가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까?

국내 여러 육아 서적을 찾아보면 "어떻게 하면 훌륭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하여 친밀하게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등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기준에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부모는 행복해 질까?"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자식을 위해 부모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내리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당연시하게 여기며, 자식이 성공하고 행복하면 부모의 고통과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부모든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식의 입장에서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은 본능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시작된 부모의 삶이 철저히 아이를 위해 고통과 희생을 감수한 일인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한 일인지? 부모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위한 삶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 나의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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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가정과 일의 삶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공평하게 구분하여 어느 한쪽이 치우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이를 낳고 나면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수백 가지 방식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일과 관련해서든 여가생활과 관련해서든 혹은 일상의 평범한 일상과 관련해서든 간에,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율성을 파괴하고 방해한다.


필자의 경우 평일에는 대부분의 시간은 회사에서 보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주말에는 가족들과 근교로 나들이를 가곤 한다. 하지만 업무상의 이유로 퇴근 후 또는 휴일 중에 회사 연락 또는 메일을 틈틈이 확인해야 하는데 둘째가 태어나기 전 기분 좋게 가족여행을 떠나면서 중간에 휴대폰의 메일을 확인한 게 화근이 되었다. 메일을 보는 순간 빨리 해결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이게 되고 메일 확인 전에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던 아이의 질문과 노랫소리도 소음으로 변하며 즐거운 가족여행이 자칫 최악의 가족여행으로 변할뻔한 사건이었다. 이처럼 집 또는 가정에서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할 경우에는 더욱더 많은 방해를 받는다. 특히나 아이들로부터 받는 방해는 훨씬 많은 열을 발생시키며 이때 격렬한 감정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는 아내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으로 숙소에 도착 후 저녁에 나에게 하소연을 하였고 지금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지면 안 될 거 같아 휴대폰에 있던 메일 어플을 삭제하고 퇴근 후 긴급한 일이 아닌 경우 대부분의 업무는 회사에서 처리하고 가정에서는 가족에게 충실하기 위해 아애 휴대폰을 작은방에 두고 가능하면 손에 쥐고 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모 특히 아빠의 경우 일과 가정을 분리하는 게 필자와 같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이름 그대로 아빠와 엄마가 함께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단어다. 누구 하나 아주 작은 휴식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기에 서로 떨어뜨릴 수 없도록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 조급한 엄마 야속한 아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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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내도 일을 하는 직장인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내와 집안일에 대해서는 특별히 크게 싸우는 법이 없었다. 사소한 말다툼의 상황은 종종 발생하였지만 집안일을 놓고 서로 누가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시비를 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가 회사를 그만둔 후 육아에 집중하게 되면서 집안일은 아내 몫이라는 생각에 퇴근 후 제대로 청소하지 않은 집을 볼 때면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고 간혹 나의 성격을 알고 미리 청소를 해놓은 아내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면 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가지고 자랑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별거 아닌 일에 싸우게 되었다.


누가 무엇을 하느냐 하는 문제만을 놓고 부부가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부 가운데 어느 쪽이 어떤 일을 했을 때 이 일을 두고 고마움을 주고받는 과정을 놓고 싸우는 경우가 훨씬 많다.


부부란 평생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 두 사람이 짧은 만남을 계기로 남은 평생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전혀 다른 두 명의 인간이 상대방의 다름을 존중해주고 모자란 부분을 대신 채워주면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의 경우도 낮 동안 힘든 가사노동으로 지칠 대로 지친 아내를 단순히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느냐? 보상을 받느냐? 에 따른 가치를 부여하여 밖에서 회사를 다니는 경우를 더 높은 일로 생각한 것 같다.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하다. 특히 초기에 대화로 풀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인 임신 시기에 이미 일찌감치 가사 분담을 한 부부들은 이런 문제를 전혀 얘기하지 않은 부부들에 비해서 육아와 관련된 갈등을 훨씬 덜 겪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저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지금과는 생활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수면 부족이나, 24시간 항상 아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압박만 있을 뿐 집안 환경 전체가 변경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아이가 태어나고 변화된 환경에 대비하지 못하여 모든 것이 불만이고 불평인 상황은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엘버트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이끌어 가는 두 개의 길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인생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다 기적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필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긴 일들이.. 특히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서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나는 모습과 사랑스럽고 이쁜 아이를 온종일 집에서 혼자 감내하는 아내가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일 정도로 무감각해진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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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6살이 된 무렵부터 공부방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일 저녁 6시 정도에 귀가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도 그렇고 필자도 아이가 하고 싶어 하면 시켜주자는 입장이라 아이가 좋아해서 계속 보내고 있다. 더 이상의 공부는 무의미할 거 같아 올해는 공부방을 보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이가 너무 좋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보내고 있다. 필자도 비슷한 시기에 학원을 전전하며 다녔지만 지금과 같이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생활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저녁시간 즈음, 심지어 부모와 함께 퇴근을 하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집에서보다는 밖에서 부모 외의 다른 보호자와 더욱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생활하고 있다.


부모들 역시 가족경제 안에서 수행하던 전통적인 기능을 상실하는 변화를 겪었다


부모는 때때로 지금의 환경이 과거와 동일한 가족 구성원의 환경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의 가족환경은 전통적인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의 전통적인 가족환경은 자식에게 직업, 교육 등 모든 지식을 가르치고 지시를 내렸으며 자식을 보살피는 일 대부분을 각자의 가정에서 직접 처리하며 해결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가정에서 하던 일은 조금씩 외부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교육, 육아까지 거의 대부분의 일을 외부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삶이 편안해짐에 따라 부모의 지위가 줄어들고 사회 구성원의 지위가 늘어나면서 가족이라는 국가의 기본단위는 점차 소외당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부모들이라도 육아에 대한 전문지식 습득이 어렵다 보니 대부분의 정보를 인터넷이나 맘 카페 같은 커뮤니티에 집중하게 되고 기업에서는 이런 상황을 놓치지 않고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면서 과도한 정보를 시시각각 내보내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이 부모들을 더욱 조금 하게 하고 불안에 떨게 하면서 유행이란 유행은 다 좇고 무엇이든 다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삶이 편안해지는 만큼 부모는 부모대로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매일매일 정보의 홍수에서 발버둥 치게 되고 아이는 부모의 과도한 집착에 불만을 느끼며 서로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가정이라는 작은 집단이 이제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집단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 부모로 산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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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뒤집으면 슬픔이 되고 슬픔을 뒤집으면 기쁨이 된다.

"행복한 가정", "화목한 가정" 어쩌면 우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평생 행복만 가득한, 웃음만 가득한 가정을 만들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비부부들은 한껏 부푼 희망을 안고 밝은 미래만을 약속하며 지내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부부가 되는 순간부터 다양한 현실에 마주한 채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워 가정을 통제하고 가족을 변화시키려 한다. 부모로 사는 게 힘든 이유의 첫 번째는 바로 이런 장밋빛 인생이 실제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허무함, 절망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좀 더 현실을 바라보고 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게 된다면 이해와 배려가 가득해지지 않을까? 부모로 사는 게 힘든 두 번째 이유부모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일이 태어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지에서 나오는 스트레스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정규화된 교육만 받을 뿐 정작 반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가족과 부모에 대한 교육은 전혀 받지 못한 채 그냥 당장의 상황을 겪어보면서 체득하라고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좋게 포장된 사탕발림의 교육이 아닌 당장 부딪치는 현실적인 교육을 어릴 때부터 진행한다면 조금이나마 변화된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결국 "아는 것이 힘"이다.


당신 아이가 지금 세 살인데, 기쁨이라는 측면에서 당신 인생은 몇 점인가요?
그리고 5년이 지난 후..
당신 아이가 세 살일 때 당신 인생은 몇 점이었습니까?


심리학자 데일리 카너먼은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라는 한 쌍의 용어를 만들었다. 경험하는 자아는 세상을 헤치고 나가는 자아로, 적어도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닥치는 여러 가지 선택들을 기억하는 자아보다 더 많이 제어한다. 하지만 우리 일상생활에서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경험하는 자아가 아니라 기억하는 자아다. 왜 우리 인간은 이처럼 실제 경험한 사실보다 기억에 훨씬 더 많은 가중치를 줄까? 바로 어린아이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자아는 우리가 그 모든 것을 간직할 것임을 보장한다. 당신 아이가 세 살 때는 다양한 일들이 매일 발생하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웃고, 떠들고, 힘들고, 지치는 나날이 수없이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순간순간 아이의 웃는 모습, 아이의 새로운 동작 하나하나에 기쁨을 느끼면서 자연스레 힘들고 지친 감정을 녹아 없어질 것이다. 부모로 산다는 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 편암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문제를 넓게 크게 바라보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육아과정의 고통 그리고 기쁨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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