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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09. 2023

수용자의 자녀

구속되어 재판받고 있는 여성 피고인의 남편이 찾아왔다. 아이 엄마가 구속된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아이한테는 차마 엄마가 구치소에 있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엄마가 아파서 치료 중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시간이 지나도 엄마가 집에 오지 않자 대체 얼마나 아프면 집에 오지 못하는지 걱정하다가 밤에 자다 깨서 울기도 하고 매일 엄마를 찾는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 했으나 피고인의 가족들은 엄마가 감옥에 있다고 하면 아이가 더 충격과 상처를 받을 것이고, 자라서도 엄마를 존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마다 거짓말로 둘러댔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는 엄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인 아이는 어느 날부터 자면서 이불에 소변을 보는 등 심각한 정서불안을 보였다.


피고인은 나에게 아이를 사무실로 불러서 엄마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구치소에 있고, 면회가 되니까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나러 와도 되고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해달라고 편지를 썼다.


나는 피고인의 남편과 상의해서 아이를 만나기로 했다. 피고인의 남편은 아이 엄마가 구치소에 있다고 말하더라도 죄를 지어서 들어가 있다고는 하지 말고 억울한 사정으로 재판받고 있는데 열심히 싸워서 무죄받아 나올 것이라고 해달라는 것이다.


아이와 사무실에 단 둘이 마주 앉았다. 나는 대체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어렵고 복잡할수록 원칙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엄마는 지금 이 사무실 근처 구치소에 있다고.


나는 아이가 사색이 되거나 충격받을 줄 알았다. 엄마를 용서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순간 아이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면서

그럼 엄마 볼 수 있어요? 엄마 안 아파요? 언제 볼 수 있어요?

라고 하는 것이다.


"엄마가 미안하대."라고 말하자 아이는 "괜찮아요."라고 했다.


어른들은 별 것도 아닌 일로 아이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을 쉽게 용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일단 천사인 상태로 세상에 오는 것 같다.



형집행법에 따르면 여성 수용자는 생후 18개월까지 아이를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양육할 수 있다. 수감 중 출산하게 되면 형의 집행을 정지하고 외부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한다. 출산한 유아와 함께 구치소나 교도소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수용시설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 수감자들이 여럿 있다.


선고기일에 갑자기 법정구속되는 사례도 많은데, 미성년 자녀들을 집에 두고 구속되는 경우도 있다. 친척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미성년 아이들끼리 지내는 경우도 있고, 보육시설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미성년자녀가 홀로 지내게 되면 그 집은 불량한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한다.


몇 달 전 구속된 여성 피고인을 접견했다. 사건 기록에 딸과 함께 산다고 되어 있길래 딸은 지금 누구와 같이 있는지 물었다. 피고인은 딸이 고3이라서 혼자 지낸다고 했다. 딸이 면회 왔었냐고 물으니 딸에게는 편지한 통 쓴 적이 없고 면회 얘기도 하지 않아서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아이가 성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혼자서 잘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나 하는 순간 피고인은 아이가 자살시도를 여러 번 했었고 구치소에서 만나면 자신에게 심하게 화를 낼 것이라고 했다. 무서워서 연락도 못하겠다고.


아이가 밥은 어떻게 먹냐고 하니 학교에서 급식이 나온다고 했고 나머진 모르겠다고 했다. 돈은 구속 전 5만 원을 줬는데 지금 다 썼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잘 지내는지 확인해서 편지를 주겠노라고 말하고 피고인 딸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아이는 피고인과 함께 살던 월세 집에 있었다. 평소라면 겨울 초입이라 수능은 끝났을 것이고 이제 곧 성인이니 친구들과 어울려서 지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연락해 볼 생각을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피고인이 아이가 자살시도를 여러 번 했었다고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피고인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자 피고인의 딸이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밥은 어떻게 먹냐고 하니까 수능이 끝나고 학교를 가지 않기 때문에 급식은 먹지 못하고 엄마가 준 돈은 이제 다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집에 정수기가 없어서 엄마가 물을 사놨었는데 물도 다 떨어졌어요."라고 했다. 친구는 없고 늘 집에 혼자 있으며, 체크카드에 남은 돈도 없어서 어디 나가지도 않았다고 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수돗물을 끓여 먹으라고 하겠지만 우울하고 무기력하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생각을 해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책임지고 이 아이를 도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완전히 희망을 놓아버리지는 않도록 사소한 기쁨이나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당분간 생활할 수 있도록 식료품과 즉석식품들, 물과 음료수, 과자 등 간식거리를 한가득 보내주었다. 아이가 아르바이트라도 알아보고 당분간 어디를 다닐 수 있도록 교통비조로 소액을 충전시켜 주었다.


며칠 뒤 내가 보낸 것들을 받았으며,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아이에게 아무리 우울해도 꼭 씻으라고 말했다.


수용자 자녀는 사회적 비난이나 소문이 날 것이 두려워서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더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후 나는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아도 수용자의 자녀들을 지원하는 '세움'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이 단체의 도움을 받도록 조언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움 지원 내용]

세움에서는 수용자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지원 (용돈, 학원비, 생계비 등) 매월 정기적 지원, 생계유지 및 위기 상황 발생 시 지원하고 있다(의료비, 학습비, 미납공과금, 이사비용 등).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용자 자녀들에게는 일반상담, 미술치료, 동작치료, 놀이치료, 심리검사 등을 진행하고, 수용자 자녀와 양육부모, 수용부모와의 가족관계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미성년 수용자자녀가 교도소 접견을 가는 경우에도 지원하고 법률지원도 해준다.



우리가 취약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것은 언젠가 나와 내 가족이 이용할 수도 있는 그물을 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낯선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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