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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참기름, 들기름 주고받는 사이 - 특수관계인

by 몬스테라

몇 년 전 사무실에 어린 남자 변호사님이 들어왔다. 40대 아줌마 변호사들이 포진하고 있던 사무실에는 그 변호사님의 입사 자체로 좋은 기운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고양이와 글쓰기를 사랑하는 그 남자 변호사님은 온화하고 차분하여 모든 변호사님들이 좋아했다(아줌마들 흡족흡족).


그런데.

어느 날 모 여자 변호사님만 그 변호사님으로부터 참기름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남자 변호사님의 부모님께서 시골에서 방앗간을 하시는데, 직접 짠 국산 참기름을 보내주신 것이었다.


그 참기름은 보통 참기름이 아니며 향이 지금까지 알았던 참기름과는 다르다는 얘기가 있었다. 내심 질투가 났다.


이후 그는 암암리에 '깨수저'로 불렸고, 그에게 참기름을 받은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우리 사무실 사조직 '글터디(글쓰기와 스터디를 결합한 아무 말)'에 그를 영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글터디 멤버 2명에게 '깨수저'가 아무래도 감성이 좋고 '우리 과'인 것 같다며 영입을 상의했고, 모두 흔쾌히 동의하여 나는 그에게 오징어게임 문양이 그려진 초대장을 보냈다.


문학과 글쓰기를 사랑하는 그는 우리 글터디에 함께 하게 되었고, 매주 좋은 글을 써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가 나에게 퇴근 후 동네 주민센터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는 내가 사는 동네의 주민이기도 했다.


나는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며 주민센터로 갔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은밀히 종이백을 하나 주었다. 그는 "국산"이라는 말을 남긴 채 총총 사라졌다.


종이백을 열어보니 참기름이었다!!! 나도 깨수저 변호사님으로부터 참기름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그와 우리 글터디 멤버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어느 날 우리의 시절인연이 다 하는 시간이 왔다.


그가 피고인으로부터 쌍욕을 듣게 되고, 그는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했다.


그는 우리 사무실을 떠나 법무법인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지역의 국선전담변호사가 되어 떠나고, 나머지 글터디 멤버 중 한 명은 법관이 되어 사무실을 떠났다.


우리가 함께 하던 글터디 모임을 떠난 지 4년이 지났다. 나는 늘 그 시간들이 그리웠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그로부터 택배를 받게 되었다.

택배 안에는 들기름과 참기름이 각 2병씩 들어있었다. '국산'이라는 가슴 웅장한 글씨와 함께.


농촌지역과 카르텔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다는 국산 참기름, 국산 들기름, 국산 고춧가루..


나는 택배상자를 열고 너무 기뻤다.


국산 참기름, 국산 들기름, 국산 고춧가루를 주고받는 관계를 '특수관계인'이라고 한다.


보통 특수관계인은 혈족, 인척, 배우자 등 친족관계와 임직원과 그 친족, 경제적 연관관계, 그리고 경영지배관계에 있는 자를 의미하며, 세법상 거래 시 부당행위계산부인 등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나,


이 국산 참기름을 주고받는 특수관계에는 세법과 공정거래법상 엄격한 규제도 없다.


아침에 그가 보내 준 참기름으로 계란간장밥을 해 먹고 나니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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