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은 이혼과 다르다.
졸혼.
법률적으로 혼인관계는 유지하되, 의무에서는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삶. 애정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교류를 하지 않고 별거를 하며 서로의 삶을 터치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쓴 책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인데, ‘졸혼’을 했다는 연예인들의 생활이 방송에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졸혼을 하게 되는 사정이 다양하니 졸혼이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고,
졸혼 전보다 서로 조금 덜 불행하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본다.
서로에게 건강하고 유익한 졸혼도 있겠지만,
나는 어제 ‘졸혼 빙자 외도’가 의심되는 사례를 접했다.
오랜만에 단골 미용실에 갔다.
원장님은 내가 처음 이 미용실에 갈 당시에는
남편과 불화가 있어서 늘 남편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셨다.
그 이후로는 이혼을 결심하면서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묻고 또 묻고.
그 이후로는 이혼소송을 하면서 상대방의 치졸한 답변서에 분노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이혼한 원장님은 내가 미용실을 간 이래 늘 힘겨워보였다.
그런데 어제 따라 밝고 명랑해 보였다.
이혼 후 상황에 적응이 되고 이제 안정이 되었나 보다 했다.
이 원장님에 대해서 조금 설명하자면,
원장님은 상당한 미모이면서 귀엽게 생겼다.
말투도 애교스럽고 손님들에게 항상 친절했다.
이혼소송할 때에는 재산분할보다 어린아이들의 양육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웠다.
그 미용실 구석에는 아이들이 유치원을 마치고 오면 놀 수 있는 텐트가 있다.
손님들의 머리를 하느라 종일 서 있으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아이들에게 다정할 수 있을까
같은 엄마로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나는 아들을 키우면서 내 속의 새로운 인격을 발견).
기본적으로 나는 공주같이 생긴 미용실 원장님이
억척같이 일하며 아이들을 챙기는 것에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원장님이 수다를 떨다가
볼륨매직 기계로 내 두피를 자주 지져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늘 관대했다.
어제 코발트색 짧은 시폰 드레스를 입고 나를 밝게 반기는 원장님에게
“어머~ 원장님, 얼굴이 좋아 보이세요.”라고 했다.
더 건강해 보였고 활기가 있었다.
평소 늘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짧은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보니 발랄해 보였다.
마침 손님이 없어서 원장님이 내가 저번에 머리를 하러 온 이후
생긴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미용실에 손님으로 오던 어떤 남성이 어느 날
미용실 문 여는 시간에 찾아와 꼭 해야 될 이야기가 있다고 10분만 시간을 내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남성은 울그락불그락 하는 얼굴로
“제가 저번 수요일에도 여기 왔었어요.”라고 말을 시작했고
원장님은 클레임인 줄 알고
“두피가 일어나셨나요.”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게 아니라
1년 전부터 여길 다녔는데 원장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최근엔 자꾸만 생각나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아침부터 용기 내어 왔다고 했단다.
그리고 그와 원장님은 가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는 전남편과 달리 다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늘 이혼소송 과정에서의 괴로움을 호소하다가
소녀처럼 쑥스러워하며 그와의 만남과 데이트에 대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좋아 보였다.
내가 물었다.
“그분도 이혼하신 분인가요. 아니면 아직 미혼이신가요?”
원장님은
졸혼했대요.
라고 말했다.
졸혼?
졸혼이란 아직 이혼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유부남 유부녀라는 의미이다.
“배우자랑 별거한 상태인가요?”
“아니요, 한 집에서 살지만 남남이래요. 둘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밥도 따로 차려먹고 그런대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그 남자는 원장님에게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부인 탓)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원장님을 만나 자신이 소년으로 돌아간 느낌이고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어쩌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원장님은 그에게 빠져 있었다.
그는 이번 주 어머니께 옥수수를 사들고 가서 뵙고 다음 주에는 원장님과 해수욕장에 간다고 했다.
사업을 하는 그 남자는 바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옥수수는 그 남자 부인이 준비하겠네요.”
최소한 별거도 하지 않는 남자의 졸혼 '개드립'에
온 마음으로 신뢰하고 있는 원장님을 보니 걱정이 되었다.
과거에는 졸혼이라는 구체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고 이혼만 하지 않고 있다고 하거나 곧 이혼 예정이라는 말로 꼬셨겠지만
지금은 '졸혼'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뿐.
원장님, 우리나라에 졸혼 제도는 없어요.
형법에서 간통죄는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외도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남편 또는 부인과 외도한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원장님은 그와 이미 그 문제에 대한 대화도 마친 상태였다.
그는 밤늦게 전화해도 된다면서 부인과 자신은 정말로 서로를 터치하지 않는다고 했단다.
아이들도 이혼하라고 한다고.
서로 터치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 졸혼남에게서 들은 이야기이지 부인 입장은 모른다.
졸혼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들과 다르다.
별거도 없고. 가정이 파탄되었다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없는 사안이다.
졸혼은 언제든지 종료될 수 있다.
부부관계는 부부만이 안다.
서로 노력 중일 수도 있고, 애정은 없지만 의리를 지키는 중일 수도 있고,
일방이 잠시 생활에 지쳐 사랑을 잊었을 수도 있고
원수같이 지내다가도 서로 측은히 여기며 여생을 함께 할 수도 있고..
이혼하지 않은 부부가 가진 고리의 힘은 밖에서 쉽게 판단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