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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나의 아줌마를 꿈꾸며)

by 몬스테라

얼마 전 우리 사무실 모 변호사님이, 눈이 퉁퉁 부은 채 출근했다.

혹시 슬픈 일이 있어서 밤새 울었나 싶어서 모른 척하려다가,

부은 정도가 너무 심해서 외면한다고 서로 편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그 변호사님은 전 날 밤 나의 아저씨를 보고 오열했다고 한다.


이미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했던 변호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이 부을 만하다고 했다.

나도 울었었다.

그 드라마는 감히 내 인생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 편이고 집에 TV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나의 아저씨가 정말 잘 만든 드라마라며 극찬을 했다.

감성적이지 않은 남편의 마음에 훅 들어온 영화가 궁금해서 나도 넷플릭스로 보기 시작했다.

1편을 보고 나니 도저히 중단할 수 없어서 필수적으로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시간 외에는 나의 아저씨를 보았다.


이 드라마에서 아이유는 이선균의 부하직원으로 나온다.

둘은 서로 좋아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은 아니며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의리를 지킨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한다.

더 이상의 내용은 말할 수 없다.

왜냐면 우리 국민 모두 이 드라마를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단 한번 대국민방송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국민 여러분, 나의 아저씨는 꼭 봐야 합니다.


이선균 같은 상사가 있다면.. 아이유 같은 부하직원이 있다면..

그런 생각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나도 내 사무실에 내가 고용하고 있는 직원이 있다.

직원의 입장에서는 내가 악덕 고용 주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내 직원이 나를 좋아한다고 느낀다(망상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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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무실은 직원보다 변호사의 숫자가 더 많다.

직원들은 보통 두세 명의 고용주인 변호사가 있다.

나의 직원은 다른 두 명의 변호사와 내가 함께 고용하고 있다.

즉, 직원의 입장에서는 사장이 3명인 것이다(사장 3명도 모두 직원과 같은 성별).


직원은 주로 기록 복사나 전화응대 업무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직원은 놀랄만한 업무능력을 발휘한다.

복사가 별거냐, 전화받는 것이 별거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직원의 업무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선보고 해야 할 일과 선조치 후보고 해야 할 일을 구별하며,

일 처리도 빠르고 정확하다.

사소하게라도 불성실로 실망을 준 적이 없으며

피고인들이 변호사를 바꾸라고 해서 묻는 질문 중 상당 부분은

검색을 하면 알 수 있는 일인데 이 직원은 자기 선에서 친절히 응대하고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기본적인 법률지식이 있어서 피고인들에게 설명도 잘해준다.



20대 후반에 우리 사무실로 온 직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프집 서빙도 하고 여러 일을 해 보았다고 한다.

올해 그녀는 서른네 살이고 군무원 시험 준비를 한 지 3년째이다.


점심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사무실 동료 변호사님께서 우리 직원이

사무실 근처 24시간 스터디 카페에서 출근 전에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나를 포함한 그녀의 고용주 3인은 그녀의 군무원 시험 합격을 기원하고 있다.

그동안 고생했는데 이왕이면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오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공무원 연금도 타고.


그런데 직원이 시험 한 달을 앞두고 시험과목 중 행정학 과목을

형사소송법으로 바꾸었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행정학이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형사소송법은 일을 하면서 접하고 수시로 찾아보고 해서 좀 수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용주 3인은 그 소식을 듣고는 형사소송법을 직원에게 빠르게 주입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얘기했다.


고용주 중 1명은 모 법학전문대학교에 출강하는 교수이고 형사소송법 교재를 내기도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다가 온 변호사인데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있는 변호사였다.

나머지 고용주 나는 그냥 소박한 변호사 몬스테라.


이 짧은 시간에 직원이 엑기스만 봐야 하는데 어쩌나 싶었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직원에게 줄 형사소송법 요약집을 직접 골랐다.

이해는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외우기 쉽고 얇은 책을 샀다.

공부할 시간이 없는데 새로운 책을 접하게 되면 더 산만해질까 봐 주저주저하다가 줬다.

꼭 이걸 보라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 직원이 군무원 시험을 합격하면 작은 플래카드를 케이크에 꽂아서

축하해주는 상상을 하다가 혼자서 좋아서 씩 웃는다.

직원이 관사로 이사 가면서 기존 집의 보증금을 적금에 넣는 상상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실소를 한다. 이럴 때면 나는 거의 치료감호 감이다.


나는 직원을 통해서 얻은 것이 많은데,

우리 직원도 언젠가 여길 떠날 때

이 사무실에서 ‘나의 아줌마’들을 만났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이후 길에서 마주친다면 나도 물어봐야지.


00, 편안함에 이르렀나.



* 배경그림 설명: 텃밭에서 감자를 캔 기념으로 그린 '휘영청 감자밝은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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