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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이름을 바꾸어 주다. - 개명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 말아요.)

by 몬스테라

어제 내 여동생 김또치(가명)에 대한 개명허가 결정이 났다.

개명하게 된 사연은 아래와 같다.


여동생의 이름은 친할아버지께서 지으셨는데,

수많은 손녀들의 이름을 짓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셨는지

여동생의 이름은 다소 성의가 없게 지으셨다.

여동생의 본명이 촌스럽긴 했으나,

견딜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개명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성년이 된 이후 친정 엄마가

철학관에서 여동생이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들었다면서

개명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개명을 동네 마트에서 할 수 있으면 했을 텐데,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라

우린 그런 번거로운 일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라면 엄마가 수시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면

진즉에 개명을 했을 수도 있겠다.

여동생은 나와는 다른 성격이다.

예민하고 감성적인 나와는 다르게,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우뭇가사리 같은 성격이다.

화도 내지 않고 우울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들떠 있지도 않고 무념무상.


여동생과는 대학 초반까지 같은 방을 썼다.

내가 자려고 누우면 여동생은 ‘스타크래프트’를 했는데

그 음슴 한 게임 음악이 싫어서 소리는 끄고 해라고 하면

소리가 맛

이라며 끄지 않았다. 그러고는 계속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집에 부모님이 계셨기에 여동생의 머리끄덩이를 잡지는 못하고,

미움을 참지 못해서

종이에

김또치 미친년

이라고 적어서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여동생은 공대를 나와서 계속 IT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 동기와 결혼했는데,

결혼한 지 2년도 안되었을 때

아이 없는 상태에서 이혼했다.


여동생이 이혼한 뒤 친정 엄마는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여동생이 불행해질까 봐 시름시름하셨다.


나는 “엄마, 사주를 보러 가도 생년월일을 묻지, 이름을 묻지는 않잖아요?”

라고 말하며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단순무식 공대 여자 김또치는 더더욱 사주나 이름의 길흉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친정아빠가 폐암에 걸려 투병을 시작하면서

아빠까지 여동생의 이름을 바꾸어주라고 하셨다.

아빠는 여동생이 이혼한 것이 이름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것인지,

여동생이 이름을 바꾸어서라도 앞으로 좋은 일이 많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았다.


아빠가 수술을 하시고 항암치료를 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빠의 바람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김또치에게 이름을 바꾸자고 했다.


여동생은 이름을 바꾼 이후가 번거롭게 느껴져서인지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몇 년 전 친정 엄마가 철학관에서

여동생이 개명하면 좋을 이름을 받아서

나에게 주신 적이 있었다.

나는 여동생에게 그 철학관에 같이 가서 이만저만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키면 바꾸자고 설득했다.


둘이 같이 어느 재래시장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는 철학관을 찾아갔다.

가정집이었는데 들어서자 청국장 냄새가 났고,

어떤 말을 해도 신뢰하기 어려울 것 같은 환경이었다.

여동생은 나의 성화에 못 이겨 고깃덩어리처럼 앉아 있었고,

나는 암투병중이신 아빠가 바라시는 것이면
여동생의 이름을 곽두팔로 개명하더라도 이름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철학관 아저씨가 무슨 얘기를 하든 사실 우리 둘 다 의미는 없었다.

철학관 아저씨는 여동생의 이름 획수에 대해서

매우 대흉 한 숫자이며,

성명학에서 피하는 획수 중 하나라고 하셨다.


이성적인 공대 여자 김또치는 귓등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철학관 아저씨가 성명학 책 중

여동생 이름 획수에 대한 설명이 나온 부분을 펼쳐 여동생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획 고난격(苦難格)
재주와 지혜가 출중하기는 하나 모든 일이 중도에서 좌절하게 되며 노력한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다. 부부간의 인연이 특히 박약하여 이별을 면치 못하게 되며, 부모와 자손에게도 수심이 많을 운이다. 신병과 횡액, 요절수가 있으며, 여성의 경우 남편을 극(剋)하게 되어 가정적으로 큰 불행이 따른다.

이 내용을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듣고 부모님께서 걱정을 하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을 본 여동생도 같은 이유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개명을 결심했다. 효도개명.


나는 개명 신청서를 작성했고, 여동생의 인생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적었다.

이혼을 했고 한 해에 여러 번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으며,

다른 사람으로 인해 돈을 크게 잃은 적이 있고..

심지어 척추측만증이 있는 것까지 아주 세세하게 적었다.


그러고 난 다음 동생에게 카톡으로 개명 신청서 파일을 보내주었는데,

아무 생각이 없는 동생은 그게 자기 것이 아니라 개명 신청서 샘플인 줄로 알고

그 사람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울 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 보다 보니 자기 것이었다며 뇌에 주름 없는 얘기를 했다.


여동생은, 자신은 낮에 휴가 내기 어려우니

개명 신청서를 작성해서 언니가 법원에 가서 내라고 했다.

나는 여동생의 개명 신청서를 작성하고

뚜벅이인지라 산 넘고 물 건너 여동생 주소지 관할법원에 개명 신청서를 냈다.


더운데 먼길을 가서 이것저것 잡일을 하고 나니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여동생에게 내가 이런 고생을 했다고 생색을 내며

목이 말라서 지하철역 편의점에서 포도 봉봉을 사 먹은 값과

내가 대신 부담한 인지대 송달료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러자 여동생이 인지대 송달료 값이 훨씬 넘는 10만 원을 나에게 보내줬다.

고생했다면서.


10만 원 입금내역을 확인한 나는

갑자기 힘이 났다.

그로부터 2개월 정도가 지난 어제 법원으로부터 개명허가를 받았다.

이제부터 동생에게 행복한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 후.

개명 신청서 제출 당시 우편물 송달 영수인을 나로 지정해서 제출했기 때문에,

개명허가 결정문이 내 사무실로 왔다.

나는 개명허가 결정문을 직접 주겠다는 핑계로 주말에 여동생을 집으로 불렀다.

여동생은 초등학생인 내 아들에게 잡혀 강제로 게임을 해야 했고 나는 사무실로 도망갔다.


그날 저녁에 케이크를 사서 여동생에게 축하해 주려고 했는데 케이크 사는 것을 깜빡했다.

미리 토퍼를 주문해 놓았는데 케이크는 없고.. 어쩔 수 없이 밥에 토퍼를 꽂았더니

제사 지내냐고 한다.


결정문 전달식은 국가 정상이 무슨 협정에 서명하고 서로 전달하면서 카메라로 얼굴을 돌려 사진 찍는 것처럼 형식을 갖추어 전달 및 촬영을 했다.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피해를 입은 경우 주민등록번호도 변경할 수 있다.

이름도 바꿀 수 있고, 아이디나 계정도 바꿀 수 있고 헤어스타일과 외모도 바꿀수 있고

마음도 바꿀 수 있다.


살다가 힘든 마음이 들면,

계절 빼고는 내가 다 바꾸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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