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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r 29. 2022

나에게 집중!

  인생의 어느 문턱에 발을 내딛던 그 순간. 세상의 고통이 나에게 종합선물세트처럼 들이닥치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감정싸움, 아들의 사춘기, 남편의 무관심, 아버지의 병환 등.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웠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으면 좀 나아지려나 싶어 폰을 뒤적였다. 친정 가족들에게 이런 고충을 이야기하면 걱정할 게 뻔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나를 감시 내지는 주시하기 때문에 사생활 보장도 안된다. 이런 마음을 섣불리 털어놓았다가는 후일에 큰 낭패를 보게 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따라서 절대 가족들에게는 내 속을 다 털어놓아서는 안된다는 철칙이 있다. 

  이때 떠오르는 건 친구들 뿐. 직장에서 10년 전 쯤 만난 우리는 나이와 각 집 큰 아이의 나이가 같다는 공통점으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매번 통화할 때마다 바쁘다고 직장일이 힘들다며 투덜대지만, 셋 중 하나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만사를 제치고 나와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전화를 걸었다. 내 이야기를 조용하게 진지하게 들어주려는 듯 사람이 많지 않고 아늑한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를 염두해 장소를 선정해 준 친구들의 배려에 고마웠다. 작고 아담한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 잔뜩 치장을 하고 모임 장소에 나갔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최대한 시크하고 당당하게 보이자고 마음을 먹었으나,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고, 목이 메어 이야기를 여러 번 끊을 수 밖에 없었다. 

  여차저차 나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니 친구들이 위로와 함께 조언을 해주었다.

  “진짜 힘들었겠구나. 가족들, 주윗 사람들 뒷바라지 그만하고 이제 너도 너의 인생을 살아.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생각해봐. 그리고 그걸 해. 힘들면      함께 해 줄게!”

그래! 내가 좋아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을 하면 되는구나. 명쾌한 답변이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친구들이 해 준 조언을 계속 떠올려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이게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지, 행복감을 느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다른 멘탈 붕괴를 맛보게 되었다. 그래도 생각해 내자. 내가 이 암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나에게 집중하는 것.

  차근차근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수첩에 남들 다 하는 버킷리스트라는 것을 적어보았다.

수첩에 적어 내려간 내용은

1. 가출하기

2. 혼자 여행떠나기

3. 피어싱하기

4. 친구들과 우정타투하기

5. 네일샵 가서 관리받기

6. 누구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기

7. 혼자 살아보기

8. 휴가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대기

9. 번지점프하기

10. 금발로 탈색하기

11. 어학연수가기

  작성하다 보니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과 눈에 튀는 외모로 가꾸는 것이 대부분인 버킷리스트. 유치해서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사춘기 때 해보지 못했던 것들, 학창시절이었다면 남들이 일탈한다고 손가락질했을 법한 일들만 적고 있었다. 

  사춘기 때는 몸이 약한 언니와 말 안듣는 남동생 때문에 속상해하시는 부모님 눈치를 보며 지냈다. 이후 성인이 되어서는 가족을 위해 쓰는 돈은 아끼지 않았지만, 나를 위한 것에는 매우 인색했고, 엄마니까 아내니까 나를 죽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억누르며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시킨 것은 결코 아니었는데 상황상, 눈치상 그렇게 해야 모두가 편안해진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뭐 어때? 뒤늦게라도 이런 마음들이 내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낸 것 만해도 어디야? 꼭 실현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희망, 설렘 비스무리한 것이 느껴져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난 내가 너무 애틋해. 내가 좀, 잘 됐으면 좋겠어.” 라는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는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에 콕 박혀있다. 나도 내가 너무 애틋하다. 그래서 나를 사랑해주고 보듬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아픈 뒤에 깨달은 숨겨진 진심이랄까? 

오늘도 나에게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는 중이다. 버킷리스트 중 무엇을 먼저 도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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