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풀은 여러 해를 산다. 겨울이 되면 줄기와 잎 부분은 말라죽고, 뿌리는 살아남아 다음 해에 다시 잎을 틔운다. 먼지 가득한 길가에서도 서늘한 산자락에서도 잘 자라기에 어디에나 있는 흔한 풀이기도 하다. 얼마 전 아이들과 책을 읽다가 토끼풀이 질소를 공급해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다른 식물의 성장에도 도움을 주는 풀이라 해서 짐짓 숙연해진 순간이 있었다. 다른 꽃들은 하나를 꺾어도 미안해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토끼풀은 일상처럼 늘어선 녀석들이라 밟고 뛰어가도 되는 줄 알았더랬다.
그래도 나는 토끼풀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파리가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데다 옹기종기 붙어 앉은 모습도 곰살맞다. 몇 해 전, 심리 상담센터의 프로그램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꽃을 고르라 했을 때도 같은 이유로 토끼풀 사진을 골랐다. 심지어 꽃말은 행복이다. 통상 토끼풀은 세 잎이지만 돌연변이로 네 잎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이 행운을 상징하는 네 잎 클로버라 불린다. 행운은 내 것이 아니더라도 행복은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설거지라 했다는 어느 호스피스의 인터뷰를 보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문을 열고 닫는 것처럼 무수히 해오던- 내 손으로 지은 밥이 사랑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채우고 빈 그릇으로 되돌아오던 일, 그것을 잘 닦아 놓는 것으로 오늘을 마무리하던 시간. 그렇게 마땅히 여겼던 일상의 조각들이 간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되었다. 때가 되면 약속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시간을 내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탈한 안부를 묻고, 잘했다 고생했다 응원을 나누는 자리를 이어올 수 있어 새삼 감사했다.
올해는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보드게임 카페 친구들이 모였다. 우연히 연락이 닿은 사장님까지 완전체로 모인 것은 20년 만이다. 청춘의 일부를 함께 보낸 우리의 얼굴에 항아리치마 같은 주름이 파이고 깎아도 거뭇한 수염자국이 돋았다. 부지런히 달려온 시간은 눈가에도 길을 내어 웃을 때마다 구불거렸다. 그래도 나는 안다. 이들이 얼마나 예뻤었는지. 타임머신을 타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미래 속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손님이 없는 날은 둥근 테이블에 앉아 룰도 익힐 겸 게임을 했다. 그때 과자 내기로 누가 가장 많은 감자칩을 샀는지, 벌칙으로 등을 때리다 뿅 망치가 부러진 사건, 사장님이 어여쁜 여성들에게만 음료수를 공짜로 내준 일, 누구라도 외출을 할 때에는 약속처럼 사들고 왔던 매운 떡볶이.. 각자의 기억 속에 숨어있던 풍경들이 안줏거리가 되었다. 멀리서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온 사장님은 잊지 않고 불러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서로의 기억 속에 반가운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은 귀한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새해에 네 잎 클로버를 선물 받았으니, 토끼풀 같은 하루도 나열해 본다.
잠든 아이들의 가방 안에 자그만 간식을 챙겨두는 일, 쏟아지는 잠을 걷어내고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일, 핫팩을 흔들어 외출하는 가족들의 점퍼 주머니에 넣어두는 일, 만년 달력에 주사위 숫자를 바꾸는 일, 한밤중에 자주 비빔면을 끓여달라 주문하는 신랑에게 “또 사 오나 봐라” 입을 삐죽 대다가도 결국 카트에 비빔면을 담는 일, 식비 줄이기를 목표로 식단을 짜두는 일, 현관 앞에 널브러진 신발들을 정리하고 중문을 닫는 일..
먼 훗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텅 빈 집을 바라보다가 현관에 내 신발 한 짝 외롭게 누운 것을 발견하고는 그저 별 볼일 없었던 오늘의 일상이 밀물처럼 몰려와 그립게 닿을 것만 같다. 올해도 토끼풀이 지천에 피어날 텐데 또 무심하게 밟고 뛰어갈까 걱정이 앞선다. 가끔은 소중하게 들여다봐야지. 서글서글하게 웃는 세 잎 클로버가 있으면 곱게 따서 마음 한편에 챙겨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