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당신

by 배진화

한겨울에도 곱게 웃던 동백꽃이 설익은 봄볕에 누레지더니 결국 가랑비를 맞고 쓰러졌다. 인정머리 없는 칼바람이 꽁꽁 여민 지퍼마저 헤집고 들어와 출근길을 꾸물대게 만들어도, 난로처럼 빨간 동백꽃 앞에서는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럴 때면 믿지도 않는 조물주가 떠오르고, 그분의 친절함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쓰러진 동백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떠남을 순리로 받아들인 것인지 상처 난 얼굴을 하고도 미소 짓고 있었다.

겨울을 포근하게 쓰다듬는 동백꽃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이다. 우리 집에도 동백꽃이 있다. 한 살 위인 신랑은 반평생을 넘게 보내도록, “야” 라거나 “너”라는 말로 나를 부른 적이 없다. 소중한 사람을 가볍게 대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라 했다. 한결같이 마음을 담아 이름을 불러준 덕분에, 나는 친구들에게 모지리니 멍충이니 구박을 들어도 쭈그러든 적이 없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신랑은 틈이 나는 대로 할머니를 모시고 소풍을 다녔다. 요양원에서만 지내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좁은 차에 휠체어까지 싣고, 산으로 바다로 달렸다. 손녀인 나도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는 할머니에게 언제나 다정했다. 그래서 둘이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이 내 것보다 많다.
백년손님이라고, 다른 집 사위가 되었다면 편히 대접도 받았을 텐데 친정에서까지 장남 노릇을 하느라 바빴다. 여덟 살 배기를 시가에 남기고 아빠와 헤어진 엄마는, 아빠의 부고를 듣고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연락을 해왔다. 신랑을 보자마자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라며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식당 단골들에게 그는 언제나 조카사위다. 내가 누구에게도 딸이 아닌 것처럼, 신랑도 온전한 사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않고 내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신랑은 아무리 꿰매어도 시린 바람이 새어들던 마음에 동백꽃이 되어준 사람이다. 힘든 순간에도 어깨를 세워주며 구겨진 마음을 펴준 사람, 있는지 없는지 모를 조물주가 친절하게 보내준 꽃이다.


집 앞이라는 짧은 문자에 가슴을 쿵쿵대며 뛰쳐나가던 시절도, 사랑이라는 단어만이 둘 사이를 가득 채우던 시절도 지나갔다. 다만 우리는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히 서로에게 감사하다. 언젠가 우리의 발걸음이 먼 강물 앞에 이르러 멈출 때에 쓰러진 동백꽃을 보듯 그를 바라보며 “예쁘다” 말하고 싶다. 덕분에 잘 왔노라고, 나는 한 번도 춥지 않았다고.


창문 밖으로, 겨울의 끝자락을 버텨내는 꽃봉오리들이 흔들거린다. 나는 글을 적다 말고 늦은 시간까지 책상 앞에 앉은 신랑을 빼꼼히 바라보았다. 신랑이 나를 발견하고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동백꽃이 활짝 피어 응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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