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엄마

by 배진화

유치원 승합차가 오가는 승강장 벤치에 엄마들이 쪼로미 앉아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그곳에서 아이를 보내고 기다리는 일이 중요한 일과였는데, 이제 녀석들은 눈을 감고도 집으로 오는 길을 알고, 뒤꿈치를 들지 않더라도 비밀번호를 누를 수 있다. ‘우리 집 아이들만 안 큰다’하며 벤치에서 한숨을 내뱉던 날이 살푼 그리워진다.

결혼을 하고 9년 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 내 안에 작은 집을 지어놓은 사진을 받아 안고 산부인과 문을 나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른다섯 먹은 아줌마가 엉엉 소리를 내며 발간 대낮을 걸었다.
아이와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삶을 공유하던 열 달 동안, 인생에서 더 없을 축하와 배려를 받았다. 조리원에서 퇴원하던 날, 신랑은 엉금엉금 차를 몰았고 뒷 자석에 앉은 나는 바들거리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여기가 너의 집이야”라고 셋이서 현관문을 딛던 때는 잊을 수가 없다.

딱 거기까지- 육아가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던 것은 그날까지만 이었다. 자유롭던 일상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어 갔다. 눈을 감고 뜨는 것도 모두 아이가 정했다. 커피는커녕 밥을 먹을 때에도 잠시의 평온을 허락하지 않았다. 잠이 오면 그냥 자면 될 것을 내내 칭얼대는 아이를 업고 두 시간이나 동요를 부른 날도 있고, 유모차를 거실로 끌고 들어와 법석을 부린 날도 있다. 가까스로 성공해서 눕혀놓으면 마치 잠든 적이 없었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울음이 시작되었다. 그쯤 되니 이 생명체는 공기의 미세한 변화까지 파악하는 대단한 능력이 장착되어 있다고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다 외출하는 날은 아이의 짐에 짓눌리고, 돌발상황이 수시로 일어나는 통에 집 앞을 나서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보송한 아이 옆에 눅진하게 누운 나의 머리 위로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서야 봄을 알아챈 시절도 있었다.

다른 사람은 천직인 것처럼 육아를 하는데, 나는 정말 육아와 맞지 않다고 자주 지옥을 들먹였다. 티브이에 어느 밴드의 멤버가 나와 자신의 어머니는 한 번도 집에서 큰소리를 낸 적이 없다고, 화가 나면 카페로 데려가 조용히 타일렀다고- 임신 중에 그 장면을 보고 무릎을 탁 쳤더랬다. 낳고 보니 웬걸. 쉬지 않고 사고를 쳐대니 돌아서면 야!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 엄마는 분명 사이코패스 일거라고 종 중얼거렸다. 뒤치다꺼리로 바쁜데 카페는 언제 가며 더군다나 거리를 쏘다닐 수 있는 몰골도 아니었다. 녀석은 정말이지 고상하게 늙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웃음이 헤프다 소리를 듣고 다니던 나는 아이를 낳고 웃음을 잃었다. 그토록 병원을 들락거려도 오지 않던 아이는 육 개월 만에 또 생겨, 나는 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도리 없이 둘째 출산을 앞두고 10년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게 되면서 <배진화>라는 사람은 전혀 다른 형태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오래도록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그 이름의 무게는 상상이상이었다. 여태 두르고 있던 배진화로써의 삶을 내려놓아야만 겨우 붙일 수 있던 이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고무줄처럼 자꾸만 돌아갈 길을 찾았다. 나를 둘로 쪼갤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는 엄마대로 두고, 배진화를 지켜야 한다고 기싸움을 해댔는지도.
힘들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고 있을 때 먼저 키운 선배가 했던 야기가 오래 남았다.
“이제 겨우 엄마나이 세 살이야. 아무것도 모르니 힘든 거 당연하지. 시간이 약이다. 그러니까 잘하려고 하지 마.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야.”
그때는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몰랐다. 엄마 나이 열두 살이 되고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인간은 하나의 형태로 살 수 없다는 것. 어느 시기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좋은 엄마로 불리길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계절에 맞게 여물어야 할 아이들의 시간에 적당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이들도 나도 서로의 모퉁이를 깎으며 둥글어져 간다. 녀석들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노력이다. 살면서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애쓸 수 있다니 나도 내가 놀랍다.

울기만 하던 꼬마들이 어느새 내 옆에서 빨래를 갠다. 학교에 예쁜 꽃이 피었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고, 때로는 실없는 농담으로 나를 웃게 한다. 육아 때문에 기억에도 없는 내 어린 시절을 원망하고, 보지 않아도 되는 밑바닥을 마주했다고 푸념했는데 아니다. 아이들은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 주었다.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환경을 걱정하고, 도덕에 대해 생각하고, 작고 약한 것들을 한 번 더 돌아본다.
얄팍하게도 고통이라 했던 풍경들이 자꾸만 그립다. 만약 셋째가 태어난다면 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지만 실은 지금이 딱 좋다. 여전히 엄마의 그늘에서 노는 걸 즐기면서도 한 번씩 볕으로 나가 혼자 달려보고 돌아오는 지금이.

진정한 육아는 사춘기부터라 하는데, 그렇다면 엄마의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여름에는 달맞이꽃이 밤을 수놓는다. 꽃말은 어울리게도 기다림이다. 아이가 찾아오길 고대하던 마음, 유치원 차량이 도착하길 기다리던 마음, 어떤 것을 해 낼 수 있을 때를 기다려 주는 마음, 무사히 일과를 보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나중에는 멀리 떠난 아이를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겠지. 나희덕 님의 시 <오분 간>처럼 기다림 하나로 生이 깜박 지나가버릴 것 같다. 여전히 미숙한 열두 살 엄마- 치열한 여름을 잘 견뎌내고 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달과 별은 못되더라도 노랗게 물들어 아이들의 어둠을 걷어내어 주는 달맞이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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