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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Feb 23. 2019

안 해도 돼 라고 말하지 못하는 미안함에 대하여

- 안 하면 행복할 일들을 우리는 왜 꾸역꾸역 시키고 있는가

오늘은 들은 소리가 
바이올린, 피아노 소리, 연필 깎는 소리,  글씨 쓰는 소리등이 있습니다.

악기 소리는 아름답지만 
잘못하면 소리가 엉망입니다.

연필깎는 소리는 사각사각 소리가 나고, 
글씨 쓰는 소리도 깎는 소리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좋아하는 소리는 "숙제 안해도 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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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첫번째 아들아, 기억나니?
네가 초등학교 3학년 생활 글쓰기 노트에 썼던 글이다.

네가 좋아하는 소리에 관한 글이구나.

세상 아름다운 소리들을 들으며 성장해 가는 너를 보는 일은 이 아빠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잘못 연주해서 더듬이는 악기 연주 소리도 아빠에겐 그저 즐거움이고 감동이던 시절이 있었지.

암, 있었고 말고...

그저 네 도전이,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도 열심히 피아노를 뚱땅거리고, 리코더를 입에 물고 입술을 내밀고 선 그 모습만으로도 대견하고 기뻤던 시절이 아빠에게 있었단다.



아들아, 손이 안 보이게 급히 밀린 숙제를 하는 네 아침 풍경이다. 숙제 안해도 돼 하는 말을 좋아할 만 하구나...

'또 좋아하는 소리는 "숙제 안해도 돼" 입니다.'
하하하... 그래... 안 해도 된다는 말이 네 기쁨이 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하는 때가 오지.
언젠가부터, 네 입에서 해도 될 일에 대한 허락보다, 안해도 된다는 내 허락을 기뻐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야 하는 일보다 
안 해도 되는 일이 더 큰 기쁨이 되는 것, 그것이 너뿐 아닌 우리나라 거의 대다수 아이들의 현실이 되어 버린 게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학원을 안가도 되는 게, 문제집을 안 풀어도 되는 게, 보충을 안 해도 되는 게, 대학을 안가도 되는 게 너희에게 안도를 주고, 쉼을 주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정말 좋아하는 뭔가에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비로소 줄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정말 안 해도 되요?"

그래, 안 해도 되는 일이 허락되어야, 너희에겐 비로소 하고 싶은 일들을 꿈 꿔 볼 여유가 생기더구나

내 아이가 행복해 지는 일이라면 그 무엇을 마다할 부모가 있겠냐마는,  안 해도 된다 통 크게 허락해 줄 부모에게는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고백을 솔직히 해 보게 된다. 

사실 어른들도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단다.

사람들은 말하지.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사는 사람 없으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으면 그 전에 하기 싫은 일부터 참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말을 않지만 모두 잘 안다.

우리네 인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할 수 있는 기회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기 싫은 것을 참아야 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지만, 실제로 그 인내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는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아들아, 

아빠는 네게 '포기'를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이란 '귀찮음'이나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고픈 대상이어서는 안된다.

'선택'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란다.

네가 "숙제 안 해도 돼"라는 소리를 사랑하는 것은 그 말을 듣고 나면 너에게 '놀이의 시간'이라는 행복한 선택지가 생기기 때문이란 걸 잘 알거다.

네가 하기 싫은 일을 기꺼이 견딜 수 있을 때는 그걸 견디고 나서 즐길 너의 시간이 더 보람되고 값지게 되리라는 판단이 설 때이지 않겠니?
아빠도 하기 싫은 숙제를 죽을 상을 지으며 해 놓곤 그 행동이 가장 보람 있었을 때는 무서운 선생님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숙제검사를 하실 때였단다.
내 억지로 견뎌낸 숙제의 시간이 내게 처절한 매질의 고통으로부터 날 자유롭게 하는구나 라는 교훈 말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그 일을 마친 후의 보람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늠해 보자꾸나.



아들아,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있단다.

그것을 선택해 네 일로 만들지 너와 무관한 일로 만들지는 늘 너의 몫이다.

안 해도 될 일인지 해야 할 일인지를 판단하는 너의 선택이 늘 지혜롭기를 아빠는 바란다.

다만, 그 선택에 너희의 꿈과 희망이, 시간과 시절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묶어두고 어른들이 정한 선택지만을 내밀어야 하는 지금의 시대는 결단코 미안하구나.

네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안 해도 돼... 라고 말하는 데 큰 결단을 필요로 하는 아빠를 비롯한 어른들의 용기 없음을 부디 용서해 다오.

너와 너의 시대는 더 많은 금기와 금지의 제재를 가뿐히 즈려밟고 너희들의 선택을 주장해 가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길 이 구시대의 아빠는 간절히 응원하고 빈다.

그런 너의 인생을 아빠는 부러워하고 자랑스러워 하며 힘껏 응원하마...



그러니, 숙제는 밀리지 말고 꼭 하도록 하자꾸나..
사랑한다 아들아... 




- 금지와 금기로 교육하는 시대를 살게 한 부모세대의 반성을 담아...

@monte-chris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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