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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Feb 22. 2019

왼손은 거들 뿐

- 야매 농구코치 아빠에게 배우는 인생 교훈 

둘째 아이와 동네 공원 농구대에서 농구를 했다.
초등학생인 아이는 큰 농구공을 무거워 했다.
한결 가벼운 미니 농구공도 있었지만 공인된 사이즈의 농구공으로 자세를 가르쳤다.
아직까진 농구공의 무게가 버겁고  골대 높이도 부담스럽기만 했던지, 
아이는  금새 힘에 부쳐 했고 폼은 자주 흐트러졌다.
공이 링까지 닿지 않아도 자세가 바르면 칭찬을 했고,
바른 자세에서 슛이 들어가면 더 큰 칭찬을 했다.


"이건 쉬워요. 가벼워서..."
아이가 힘들어 할 때, 핸드볼 공 크기의 미니 농구공으로 슛 연습을 다시 해 보게 했다.
공이 가벼워지자, 바른 자세일 때의 슛 성공률은 더 높아졌고,
공이 가벼워도 폼이 틀어지면 슛은 링을 외면했다.


"자세가 바르면,
공이 무거워서 링에 닿지 않아도 의미 없는 건 아니야.
바른 자세로 연습을 계속하면,
언젠가 키가 자라고 힘이 세져서 지금 네가 배구공을 다루듯 
진짜 농구공이 가벼워질 때가 오거든.
자세가 바로 잡혀 있으면,
그 때 네 실력은 빠르고 월등하게 늘게 될거야.
하지만, 공이 무겁다고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키가 크고 힘이 세져서도 
전에 비해 가벼워진 농구공을 바르게 던져 넣기는 힘들게 돼."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즐겁게 농구를 즐겼고,
나도 마치 아시아 투어에 나선 NBA 순회코치라도 된 양 열과 성을 다한 얼치기 농구 코칭을 마쳤었다.
집에 돌아와 형에게 농구에서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열변을 토하는 둘째를 보며 괜시리 웃음이 나던 하루였다.

이런 폼 나는 슛 자세는 NBA 몇 번 시청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자유투조차 자신 없어 언더핸드 프리드로우로 던지던 강백호였다.
강백호는 풋내기 슛이라 우습게 여기던 레이업 슛도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기초부터 시작해 기본을 만들면서 말이다.
강력한 리바운드 능력과 점프력만으로도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던 그였지만, 왼손은 거들기만 하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점프슛 자세를 반복해 연습하고 연습한다.
기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강백호의 언더핸드프리드로우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 하나, 절실함이다.
언더핸드 프리드로우가 어쩌다 먹혔다고 경기 내내 그 폼을 고수할 수는 없다.  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서태웅만큼은 아니지만,
파리채 블로킹으로 완벽히 골밑을 장악하는 채치수만큼은 아니어도,
정확한 중거리슛으로 링을 공략하는 정대만처럼은 아니어도,
빠른 드리블과 패싱 능력으로 게임을 리딩하는 송태섭만큼은 아니어도,
강백호는 농구 선수로서의 기본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선수였다.



사실, 폼 따위가 뭐 중요해!  어떻게든 넣기만 하면 장 땡이지 라고 할 수 있다.
오락실 농구게임 하듯 폼이고 뭐고 간에 빠르게 많이만 던져넣는데 집중하고, 
그렇게 해서 얻어걸린 높은 점수가 마치 자신들의 실력인 척 하며 말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전설적인 골게터인 웨인 그레츠키는 '슛하지 않으면 골을 넣을 수 없다' 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가 날렸으나 아쉽게 골로 연결되지 않은 더 많은 미스샷들조차 레전드로 추앙받는 그 빛나는 성취의 일부였음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난사(亂射)가 곧 능사(能事)가 아니란 얘기다.
인생사 뭐 있나?  어려울 게 뭐 있어? 쉬우면 고민도 필요 없고, 쉬우니까 난사하기도 좋으니 골 들어갈 확률도 높아지는 거 아니겠나 할 수 있다.
 

슛을 던진 횟수에 비해 
정작 성공률은 현저히 낮았던 내 둘째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는 내내 뭐가 그리 만족스러웠는지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농구를 즐길 때마다 슛이 빗나가건 들어가건 그 원인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거다.

자세가 그걸 가능하게 해 준다.



슛도 연습 때는 화려하지 않은 기초일 뿐이다. 처절하게 땀내 나는 기초가 비로소 슛을 완성시킨다.



농구는 링을 향하는 스포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의 슛을 날리기 위해
치열하게 드리블과 패스와 리바운드와  공격과 수비와 때로는 작전타임을 해 가며 진실을 위한 기회를 보고 또 봐야 할 지도 모른다.
난사 말고 정조준한 버저비터처럼.
내 이 한 발 날리려고 다듬고 다듬었다는 자세로, 
올라갈 때 한 번, 내려와서 다시 한 번...
기본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그 한 방을 위해, 드리블도, 패스도, 리바운드도, 공격과 수비 연습도, 때로는 작전타임도 필요하다.

강백호는 마지막 공격 찬스에서 포기하지 않고 상대 빈 공간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리고, 수없이 연습해 온 슛 자세를 잡고 패스를 기다린다. 매우 진지하게...
종료를 앞둔 절박한 순간에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마지막 위닝 샷을 던지는 강백호처럼, 

기본을 갖추고 진지하게 자신의 슛을 던지는 인생이 

내 아이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왼손은 거들 뿐'
강백호가 슛을 던지기 전 되뇌이는 기본의 잠언처럼,
늘 잊지 않아야 할 교훈 하나가 부디 오늘의 땀흘림이 되어 주길...

- 자세를 제대로 가르치긴 했는지 이제와 미심쩍은 야매 농구코치 아빠가 보내는 뒤늦은 반성문


@monte_chris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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