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스타일 아이콘
번역을 하는 동안 몸 여기저기가 아팠다. 오랜 시간 앉아 있자니 허리와 골반이 끊어질 듯했고 통증으로 손가락 마디의 존재를 시시각각 깨달았으며 종일 모니터를 보는 탓에 안구가 자갈처럼 안와에서 덜그럭거렸다. 특별히 병을 앓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 다친 것도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 불편한 것, 일상생활을 하면서 신경 쓰이는 것,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도 몸 여기저기의 통증은 나를 지치게 했다. 불안했고, 때때로 우울해졌다. 고작 그것으로.
프리다 칼로라는 화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 <부서진 기둥>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늪인지 사막인지 모를 어두운 벌판, 벌거벗은 상반신, 죄어 있는 몸 여기저기 박힌 크고 작은 못들, 점점이 흩뿌려진 눈물, 척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세워진, 금세라도 무너질 듯한 기둥 하나.
처음 이 그림을 마주한 단 몇 초의 찰나, 기둥이 소총으로 보였었다. 몸에 내장되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총 한 자루. 턱 아래를 겨누어 뇌를 뚫고 두개골을 관통할, 절대로 실패할 일 없이 언제든 죽음과 손잡게 해 줄 장치. 그것은 착각, 혹은 착시, 혹은 무의식이었을까. 어떤 거장의 눈에는 초현실주의였겠지만 프리다에게 있어선, 프리다가 말했듯 그 그림은 초현실주의가 아니라 “가장 솔직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가장 솔직한 현실”이 프리다 사후에 발견되었다. 라 카사 아술의 욕실을 비롯한 프리다의 개인 공간이 공개된 것이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결정으로, 뒤이어 유언 집행인 역할을 맡았던 한 사람의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약속했던 십오 년이 오십 년이 된 후에야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숨겨졌던 하나의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옷, 장신구, 화장품, 사진, 편지 들은 놀라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멈추었던 시곗바늘”이 다시 움직인 순간, 기록 관리사들은 그곳에서 어떤 존재감을 느꼈다고 입을 모아 전한다. 프리다의 의복들이 “밤이면 유독 무겁게 느껴지곤” 했다가 “해가 뜨면 다시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애정을 품고 오래 곁에 둔 물건에 영혼이 깃든다는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그렇다면 피카소에게 선물받았지만 미처 발견되지 못한 손 모양 귀걸이 한 짝도 어쩌면 “이전 주인이 누구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어떤 이의 귀”에서 언젠가의 행복과 충만함으로 반짝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이가 프리다가 사랑했던 레블론 화장품을 바르고 겔랑의 샬리마르 향수를 뿌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멕시코 전통 의상인 우이필과 레스플란도르를 입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근사하지 않은가?”
패션이란 아무나 다가설 수 없는 낯설고 화려한 세계처럼만 느껴진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라는 ‘의식주(衣食住)’의 그 ‘의’와는 동떨어진 세상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패션이란 인간의 본성에서 탄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약점을 감추고 보다 강해 보이고자 하는, 살아남고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동물의 본능 말이다.
어린 프리다 칼로가 잔인한 아이들의 놀림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해 여윈 오른 다리 위로 양말을 여러 장 겹쳐 신었던 것처럼, 코르셋을 숨기고자 품이 큰 우이필을 입으면서도 그 코르셋에 붉은 낫과 망치를 그려 넣었던 것처럼, 혼혈이라는 혼합성과 ‘두 사람의 프리다’에서 비롯한 이중성을 탐하며 의식적으로 옷과 장신구를 걸쳤던 것처럼, 짙은 일자눈썹을 그린 한편 분홍색 블러셔를 발라 열정적인 투사인 동시에 정열적인 여자이고자 했던 것처럼, 풍성한 머리를 곱게 땋기도 하지만 짧게 잘라 단호한 결의를 표했던 것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망가진 발을 아름다운 빨간 신발로 무장했던 것처럼.
도로시의 마법 구두와 루부탱의 스틸레토 힐이 그랬듯, 프리다 칼로의 붉은 부츠가 그녀를 영원히 행복한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생각을 해 본다. 빨간 부츠를 신고 떠난 그 “외출이 즐겁기를”, 비록 “다시는 돌아오지 않”더라도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피천득, <소풍>에서)할 수 있었기를 바라며.
- <프리다, 스타일 아이콘> 역자 후기
- 대문 그림 출처: <프리다, 스타일 아이콘>, 브.레드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