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한국 사회의 데칼코마니, 비질란테
2029년 프랑스, 한 인플루언서가 자신을 강간하고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삼촌을 찾아가 살해하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적인 복수가 프랑스 전역에 들불처럼 번지고, 엄벌주의와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후 프랑스는 ‘투명성’ 정책을 수립하고, 사회와 사람들의 삶 전체를 투명하게 바꾸기로 한다. 프랑스 모든 건물들의 외벽이 유리로 바뀌고, 하루 24시간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타인의 삶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이제야 뉘우칩니다.
변호사 면허를 반납하고, 법의를 벗고, 용서를 구합니다.
사법기관을 믿었던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하면서 듣고 있었던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정의가 우리를 배반했습니다.
과거의 정의, 권력에 의해 주어졌던 사법부의 정의, 무죄추정법칙과 공소시효법칙의 정의,
이 모든 정의는 실패했습니다.
이 정의는 가장 약한 이들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타협했고, 게임의 법칙에 굴복했습니다.
정의는 얼마나 많은 범죄에 눈을 감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까?
가해자들에 대한 관용은 피해자들에게 선고된 종신형과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우리는 불과 몇 달 만에 혁명을 완수했습니다.
프랑스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고 이로써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투명성’이 지속되려면 우리 모두가 앞장서야 합니다.
인간과 동물을 상대로 한 모든 폭력, 학대, 강간은
우리 눈에서 벗어난 곳,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집 안,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발생합니다.
밀폐된 공간은 위험합니다. 벽은 위협입니다.
모두를 위해 우리 각자가 사생활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민의 평화를 위한 길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에겐 숨길 것이 없지 않습니까?
비난받을 짓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청중들이 함성을 지르며 애국가를 제창했다.
– 가브리엘 보카의 ‘라디오 프랑스’ 연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