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길고양이 정책이 필요하다
길고양이는 언제부터 우리 삶 속에 들어왔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도시의 민원이 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고양이가 본격적으로 사람과 더불어 살기 시작한 때는 삼국시대로 전해진다. 쥐가 불교 경전을 갉아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들여온 고양이들이 집고양이로 터를 잡기 시작한 것. 이후 1970년대 정부 주도의 ‘쥐 퇴치 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지면서 집고양이의 수가 증가하는데, 문제는 쥐가 사라지면서 기르던 고양이가 대거 버려졌다는 것이다. 1997년 IMF 역시 집고양이가 집 밖으로 내몰리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버려져 길 위에 터를 잡고 살아온 한국의 길고양이는 대략 100만 마리 가량으로 추정된다. 해마다 2~3만 마리의 유기묘가 발생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길고양이 개체 수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길고양이가 늘어나면 관련 민원도 늘어난다. 영역 동물인 길고양이 간의 다툼 혹은 발정기 때의 울음소리,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봉투를 뜯는 것 등이 그것이다. 옥천과 같은 농촌 지역에서는 텃밭을 해친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기도 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길고양이 민원 해결 뿐 아니라, 이들을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인도적 차원의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길고양이 보호 정책을 펼치는 지역이 늘고 있다. △길고양이 급식소 △길고양이 TNR(1) 등이 그것. 쓰레기봉투 훼손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해당 영역에 사는 고양이들을 보호해 외부 길고양이의 유입을 막고 개체 수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사업으로 평가된다.
(1): 포획(Trap)해 중성화 수술(Neuter) 후 제자리에 방사(Return)하는 것을 의미하는, 국제적인 길고양이 개체 수 관리법. 살처분 대신 훨씬 인도적이라는 점에서 각광받는다. 최근에는 TNR을 마친 길고양이가 건강하게 영역을 지키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TNRM(Management)’이 강조되기도 한다.
급식소와 TNR 사업은 병행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급식소를 중심으로 영역을 구축한 길고양이 대상 TNR을 실시하면 해당 지역에 추가적으로 유입되거나 번식하는 길고양이 수를 줄일 수 있다. ‘뭐 하러 고양이에게 돈을 써가며 보호하냐’는, 다소 동물권 인식이 떨어지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포획-안락사’를 통한 살처분 방식은 영역 동물인 고양이에게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해당 영역을 지키던 고양이가 사라지면 다른 고양이가 다시 유입되기 때문에(이를 ‘진공효과’라고 한다) 급식소와 TNR 사업으로 영역 내 고양이를 보호하고 관리‧조절하는 것이 좋다. 또한, 쥐가 왕성하게 번식해 전염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전국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길고양이 보호 정책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경기 과천시에서 TNR 사업이 처음으로 실시됐다. 이후 2007년 서울 용산구, 강남구에서 시범운영 됐고 2008년부터 서울시 전체로 확산됐다.(2)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된 TNR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 사업 중 하나로 2018년부터 국비 지원 사업이 돼 전국 17개 시도에서 실시되고 있다.
(2) 이에 앞서 2006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에서 길고양이들을 지하실에 감금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른바 ‘한강맨션 고양이 억류 사건’. 단지 내 길고양이 민원이 이어지자 이 아파트 운영위원회가 지하실 출입구를 용접해 모두 막고 길고양이를 가둬 죽이려 한 것이다. 길고양이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단면적으로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으로 두고두고 회자된 바 있다.
급식소 사업의 경우, 캣헬퍼들이 개별적으로 챙겨주던 길고양이 밥을 지자체가 나서서 함께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2013년 서울 강동구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간 대표적 길고양이 정책 중 하나. 2017년엔 국회 안에 길고양이 급식소가 설치되는 등 관련 인식과 활동은 성역 없이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이 실제 개체 수 조절에 효과가 있을까? 서울시의 경우 지속적인 정책 실시로 2013년 24만6천 마리의 길고양이가 2015년 20만3천 마리, 2017년 13만9천 마리까지 줄어드는 효과를 보고 있다. 제주도 역시 길고양이 TNR 사업을 통해 새끼 고양이 수가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굳이 이런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이미 국제적으로 효과가 입증돼 세계 각국의 고양이 개체 수 관리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견은 없을 듯하다.
인도적으로 길고양이를 보호하고 개체 수를 조절하는 정책에 대한 국민 의식 역시 높다. 2018년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길고양이 TNR에 80.3%의 응답자가 찬성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 사업이 되면서 전국적으로 길고양이 보호 의무를 명시한 관련 조례 제정이 이어진 것 역시 이 같은 의식이 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지역은 갈 길이 멀다. 길고양이 관련 정책이 전무한 곳도 적지 않은 것. 옥천군 역시 마찬가지다. 설을 앞두고 옥천읍 상가에서 만난 주민들은 입을 모아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고양이 영역다툼으로 밤잠을 설친 경험이 있다는 한 60대 여성(옥천읍 양수리)은 “원래 길에서 살던 애들도 있지만 새로 유기된 애들도 적지 않고, 여러 부분에서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생명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다른 지역은 중성화 수술을 해 개체 수도 조절하고 울음소리 민원도 줄인다는데 옥천은 왜 아직 그런 게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내 대부분의 지자체 역시 올해 TNR 사업을 실시한다. 충청북도 농정국 축수산과 박성규 담당자는 “국비 지원 사업이 되면서 2018년부터 매년 수요조사를 받아 각 시군으로 예산을 내려 보내고 있다”며 “올해는 옥천과 영동, 단양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8개 시군)에서 TNR 사업이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옥천군은 해당 사업의 필요성이 높지 않고, 인력 및 예산 부족 등으로 실시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옥천군 친환경농축산과 축산팀 박준무 팀장은 “길고양이 민원이라고 하면 쓰레기를 뒤지거나 밤에 우는 소리 정도인데 그런 것을 TNR 사업으로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또 농촌 지역에 적합한 정책인지 조금 의문”이라며 “무엇보다 예산과 인력이 없고, 당장 길고양이 보다 유기견 문제가 더 많기 때문에 시행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동물권행동 카라의 권혜라 활동가는 “TNR은 도시, 농촌 관계없이 가장 효과적이고 인도적인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 방법”이라며 “옥천에 실제 쓰레기봉투를 뜯는 민원이 발생하고 있고, 여기에 별도로 밥을 주는 캣맘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옥천 역시 TNR 사업을 함께 진행한다면 분명 주민 불편과 민원 해결 효과를 볼 수 있을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길고양이 보호 정책, 생명 존중‧민관 협치‧지역 공동체 활성화 이끈다
예산이나 인력 문제와는 별개로 동물권에 대한 행정의 고민이나 인식이 현저히 낮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옥천군은 길고양이 쓰레기봉투 훼손 방지를 위해 살충제를 뿌리는 시범사업을 실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옥천읍 한 동물병원에서 만난 60대 남성(안남면 종미리)은 “대체 그런 정책은 어떻게 나오는 건지 의문”이라며 “사람이 뭐 하나 잘못했다고 바로 죽이나? 공무원이 실수하면 바로 잘라야 하나? 그런 게 아닌 것처럼, 생명을 존중하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왜 안일한 생각으로 진행해 논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역시 비슷한 반응이다. 옥천군 쓰레기 수거 업무를 담당하는 (주)한일개발공사 소속 오대성 씨는 “한여름 파리나 구더기 방지 차원의 효과는 있어도 길고양이 쓰레기봉투 훼손 방지에 그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그럴 예산으로 사료를 놔주면 봉투 훼손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과 에세이로 길고양이 문제를 알리고 있는 김하연 작가는 “국가 정책으로 장려하고 전국에서 도시‧농촌 가릴 것 없이 진행되는 사업인데 이에 대해 별다른 인식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민원 해결 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생명을 존중하면서 함께 문제를 풀어간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만큼 행정을 비롯해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모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 등 광역 단위 지자체 외에 기초지자체 중에서는 전북 전주의 관련 정책이 눈길을 끈다. 전주시는 지난해 ‘동물복지팀’을 동물복지과로 승격하고 동물복지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등 기초 단위에서는 드물게 관련 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전주시는 지역사회 내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도모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풀뿌리 자치,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동물복지 정책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차원에서 전주시는 지난해 시청과 완산구청, 한옥마을, 전북대, 전주교대 등 5곳에 직접 급식소를 설치했다. 관공서와 교육기관, 대표 관광지에 설치한 것은 길고양이와 같은 동물을 법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전주시 동물복지과 이지현 주무관은 “급식소 외에 올해는 권역별 TNR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며 “그동안은 민원이 들어온 길고양이를 한 마리씩 포획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보다 효과적인 개체 수 조절을 위한 방법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주무관은 “캣맘들의 활동과 정책이 만나 지역 민원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길고양이 급식소와 TNR 사업은 대표적인 민관 협치 사례”라며 “‘다울마당’이라는 이름으로 동물복지 정책을 함께 논의하는 회의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주시는 이밖에 취약계층 반려동물 중성화 수술 지원사업, 반려인 에티켓 교육과 유기동물 입양률을 높이기 위한 순치교육, 반려동물 놀이터 사업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동물 공존도시, 서울 기본계획 / 서울특별시 시민건강국
2018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보고서 /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검역본부
고양이 반려+돌봄 Q&A북 ‘해피나비 Talk to U’ / 해피나비프로젝트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 이용한‧한국고양이보호협회
월간 옥이네 VOL.32
2020년 2월호
글, 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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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32호는 옥천 길고양이 화보와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 이야기, 전주 해피나비 프렌즈, 홍성 길고양이보호협회, 길고양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조은성 감독 인터뷰 등을 담았습니다. '길고양이'를 특집으로 다룬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