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 옥천 사람들
사람의 필요에 의해 길러졌다 버려진 고양이가 길 위에 정착했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멸시받는 생명체 중 하나, ‘길고양이’다.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라지만 길 위의 고양이에게 이 말은 유효하지 않다. 로드킬과 쥐약, 사람들의 학대 등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은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을 2~3년으로 단축시킨다. 아홉 개의 목숨을 아끼고 아껴 살아도 고작 그 시간이면 동이 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
지난 10여년 사이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고양이가 인기 반려동물로 급부상했고, 동물권 논의도 조금씩 확산됐다. 그동안 길고양이를 ‘도둑’으로 몰아가는 인식은 조금 나아졌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캣헬퍼(cat helper)’들은 여전한 냉대 속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그들을 보살핀다.
농촌 지역이지만 도시화 된 옥천읍에서도 캣헬퍼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골목 안 깊숙이. 후미진 어딘가. 시선을 낮추면 사료와 물이 담긴 그릇, 그 주변을 청소한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1월 한 달 간 옥천읍 곳곳에서 캣헬퍼들과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정리해 담는다. 혹시 모를 위협과 혐오 범죄를 방지하고자 이들이 사는 곳과 이름, 밥을 주는 장소 등은 모두 익명 처리했다. 이름과 얼굴, 지명을 공개해도 불안하지 않을 내일을 기다린다.
“한 30년 됐나. 가게 하면서부터 줬으니까. 처음에야 그저 불쌍해서 줬죠. 근데 밥을 주니까 쓰레기봉투도 안 뜯고 주변 정육점 좌판에 올라가는 일도 없고 좋더라고. 주변 가게들은 처음엔 싫어했는데, 밥 주니까 저지레 안한다고 다들 조금씩 챙겨주는 분위기가 됐어요. 그래도 ‘아이고, 고양이 밥을 왜 줘요?’ 하는 사람도 있긴 해요. 그거야 뭐 그 사람 생각이니 내가 뭐라 하기는 그렇고……. 괴롭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전에는 쥐약 같은 거 놓아서 죽이거나, 잡아다 저 멀리 버리고 오는 이도 있었어요. 그래도 나한테 밥 얻어먹었다고 다시 찾아오는 애들도 있고. 죽을 때도 가게 앞에 와서 죽더라고. 참 마음이 아프죠. 김뚜깡, 노랭이, 이쁜이, 굴뚝이……. 이름도 다 지어줬는데.” (ㄱ씨)
“옛날에 하도 쥐가 많아서 고양이를 키웠어요. 여태 밥 주는 건 그 영향도 있지. 우리는 가게에서 쓰고 남은 고기 모아서 주기도 하고 그래요. 고양이가 있으니 당연히 쥐는 못 오는데, 문제는 손님들이 싫어하더라고. 식당 밖에 내놓고 주는 건데도 그렇대요. 대놓고는 못 주고 어디 안 보이는 데 그릇 숨겨두고 조금씩 내다주죠. ‘걔들도 생명인데’ 싶어서요.” (ㄴ씨)
“아유, 고양이 밥 주는 거 남편이 알면 혼나는데. 우리 집 오는 애들이 3마리인데, 숨어서 주고 있어요. 너무 딱해서. 쓰레기봉투 뜯는 거 보고 주기 시작했죠. 한 3~4년 됐어요. 원래 쥐가 있었는데, 고양이 밥 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쥐가 안 나와서 좋아요.” (ㄷ씨)
“원래 저는 고양이를 좋아하진 않았어요. 다만 개를 오래 길러서,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더라고. 밥 챙겨준 것도 그것 때문이지. 주변 식당 쓰레기봉투 뜯는 거 보고 ‘저기 먹을 게 뭐 있다고’ 싶은 마음에 불쌍해서. 그랬더니 확실히 안 뜯어요. 그렇게 주기 시작한 게 한 10년 더 된 거 같네. 자주 오는 애들은 이름도 붙여줬어요. 귀가 커서 ‘당귀’, 덩치가 커서 ‘황소’, 온몸이 까매서 ‘까미’, 누래서 ‘누렁이’. 까미는 유일하게, 새끼 낳으면 데리고 와서 보여주는 애야.
고양이 밥 주는 게 죄라, 골목 청소도 깨끗이 하는데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나 봐요. 쥐약 놔서 죽이고, 막대기로 때리고……. 나도 한동안 보면서 속만 끓였지. 그래도 요새는 동물보호법 얘기 했더니 못 그러는 거 같아요. 이건 동물학대라 신고하면 잡혀간다고 했거든. 차에 치여 죽는 애들도 많죠. 좁은 골목에서 왜 그렇게 빨리 달리는지 몰라. 병으로도 많이 죽고. 죽은 새끼 물고 오는 애들도 있어요. 그러면 다 묻어줬죠. 우리 남편이 30마리 넘게 묻어준 거 같어. 한 번은 우리 집에 오는 애들 중에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았는데, 봤더니 네 마리 다 눈도 못 뜨고 고름이 줄줄 흐르는 겨. 동물병원에 갔더니 이미 실명이 돼서 손을 못 쓴다나. 아이고, 어쩌지 하다가 남편이 사람 쓰는 안약을 하나 가져왔더라고. 혹시나 해서 며칠 넣어줬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눈을 떴어요. 걔는 살았지. 그렇게 간신히 살려놨는데 동네 할머니가 마음에 안 든다고 어디 또 내다버렸대. 어미가 며칠을 와서 울었어요, 제 새끼 찾아달라고…….
따지고 보면 길고양이는 사람들이 만든 거 아니예요? 그런데 왜 그렇게 미워하고 괴롭히나 몰라. 그냥 좀 두면 어때서. 걔들이 그래봐야 쓰레기봉투 뜯는 거 말고 뭘 더 한다고. 그것도 밥 주면 해결될 일이야. 그런데 그 작은 생명 하나 돌보지를 못해서 그러는 게 말이 돼요? 저기 일본 같은 데서는 밥도 주고 중성화 수술도 시켜준다며. 우리는 ‘동물학대하면 안 된다’고만 하지 얘네들 보호해주는 곳이 없어요.” (ㄹ씨)
“10년 전에 귀농했는데, 고양이 밥 주기 시작한 건 7년 정도 됐어요. 우리 밭 주변에 버려진 고양이가 밥 달라고 울어서 주기 시작했죠. 지금 밭 주변에 사는 애들 다 챙기니까 한 30마리 되는 거 같아요. 사람 손 탄 애들이 대부분이에요. 유기된 고양이가 그렇게 많다는 거예요. 넓게 분포돼있어서 밥 주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려요. 15kg 사료 한 포대를 나흘 정도면 거의 다 먹을 정도고요. 한 번에 사료 한 주먹씩, 딱 생존에 필요한 양만 주는 데도 그래요. 술‧담배 안하고 생활비 좀 아껴서 주는 거죠. 이것도 책임감이 생기니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새끼 낳아서 데리고 오는 애들도 있으니 더 그렇고요. 뭐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냥 피해요. 괜히 맞섰다 고양이들에게 해코지라도 할까봐. 그러다 보니 밥 자리가 동네 밖, 길가로 밀려나오게 되더라고요. 길고양이가 머물 자리가 이렇게 없구나 싶었죠. 있는 걸 쫓아내지만 않아도 고마운 상황이니까요.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잖아요. 그 영역 안에서 떠나지 않거든요. 그러면 그 영역 안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길고양이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고민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옥천에도 이런 유기동물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곳이 생기면 좋을 거 같고요. 각 종교에서도 말하잖아요. 자비와 사랑, 다스리라고 한 명령. 각기 다른 것 같지만 결국 생명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한다는 건 모두 동일하죠. 저는 이게 인간에게 맡겨진 책무가 아닐까 싶어요.” (ㅁ씨)
“서울서 살다 2012년 무렵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죠. 서울에서도 유기견을 돌봤는데, 여기 와서도 그렇게 됐네. 주먹만한 새끼 고양이가 병에 걸린 걸 봤는데, 그냥 둘 수가 있어야지. 벌써 3~4년 전이에요. 그게 인연이 돼서 유기견 한 마리, 유기묘 한 마리씩 입양해서 키우고 있고요. 집에서 일터까지 가는 길목에 사는 냥이들 밥을 챙겨주고 있어요. 밥 자리가 대충 15곳 정도 돼요. 그것 때문에 일부러 걸어다녀. 밥 주면서도 두근두근 해요, 누가 뭐라고 할까봐. 실제로 욕도 많이 먹었고. 밥 줘서 나쁠 거 없어요. 내가 밥 주기 시작한 뒤로 우리 아파트 쓰레기장 주변은 깨끗해요, 봉투 뜯는 일이 없어서. 가끔 옆 동네에서 누가 쥐약 놓고 고양이를 다 죽인다더라 하는 얘기를 듣는데, 아유, 열불 나죠. 실제로 약 먹고 죽은 고양이들도 많이 봤어요. 막 토를 하고 입에 거품 물고 그러다 몸을 비틀면서 고통스럽게 죽는데……. 어째 인간이 그런 짓을 해. 읍 외곽에 밭이 있어서 그 주변으로도 종종 가는데요. 거기 가보면 밭 지킨다고 개를 바짝 매달아 놓은 집도 있어요. 그런 거 보면 너무 불쌍하지. 고양이고 개고, 동물권 전반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해요.” (ㅂ씨)
“옥천 토박이로, 여기서 가게 운영한 지 8년 차예요. 사실 알러지 비염이 있어서 고양이를 키울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고양이를 세 마리 구조해서 함께 살고 있어요. 집에 고양이가 있으니 길에 사는 애들에게도 눈길이 더 가요. 저희 집 둘째 고양이는 2018년 6월쯤 딸아이가 하수구에서 구조해왔는데요. 검진을 해봤더니 만성신부전증이더라고요. 병원에서는 어미 고양이가 임신 중에 독극물을 먹었던 거 같다고 추정해요. 고양이 밥 주다 보면 해코지 당해서 다친 고양이도 종종 보게 되는데 마음이 아파요. 대도시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길고양이에게 위협 요소가 많은 거예요.
저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저희 집과 가게 주변에서 밥을 주는데요. 혹시 옥천에 길고양이 보호 정책이 없나 궁금해서 군청으로 문의를 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예산이 없다’, 뭐 이런 반응이더라고요. 아쉬운 부분이죠. 다른 지역은 TNR이나 급식소 사업 같은 걸 해서 생명이 공존하는 지역을 만들자고 하는데, 우리 동네는 그런 게 없으니까. 평생학습원 같은 공공기관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그곳을 찾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거 같고요. 사람과 고양이,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개체로서 서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ㅅ씨)
월간 옥이네 VOL.32
2020년 2월호
글, 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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