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학 PD 추모제 현장
그가 떠나던 날은 눈이 왔다. 그 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일까. 신록이 푸르른 계절이 왔지만 남은 가족은 여전히 겨울에 살고 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죽음을 선택했을까요. 이재학은 얼마나 죽고 싶었고, 또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요. 누나인 저는 동생이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보다,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미어집니다.”
CJB 청주방송에서 14년을 일하다 지난 2월 스스로 세상을 등진 고(故) 이재학 PD의 추모제가 5월 13일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CJB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열렸다. 이날은 이재학 PD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2004년 조연출로 CJB에 입사한 이재학 PD는 2011년부터는 연출PD로 일하며 출연진 섭외부터 프로그램 마지막 검수 작업까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했다. 다른 것이라고는 그가 비정규직이라는 점. 때문에 회당 연출료 40만원이라는, 월급으로 따지면 120~160만원의 박봉을 받으며 일했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그렇게 14년을 헌신한 직장에서 그는 동료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된다. “나를 위한 소송이 아니라 또 다른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소송”이라며 1년 6개월 간 CJB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이어갔지만 이 역시 패소하고 만다.
동생이 떠나던 날을 회상한 고(故) 이재학 pd의 누나 이슬기 씨는 “왜 혼자 그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을까, 회사와 소송을 시작하게 됐다고 가족들에게 처음 말하던 그 날로 돌아간다면 뜯어말리고 싶다”면서도 “생전 이재학이라면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기에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동생의 명예회복과 가해자 처벌로 편히 쉬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재학 PD처럼 방송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싸우는 이들도 추모제 무대에 올라 추모사를 전했다.
대구MBC 비정규직다온분회 윤미영 분회장은 “남은 후배들이 전철을 밟지 않도록 판례를 남기고 싶다고 말한 이재학 PD 기사를 보며 정말 큰 힘을 얻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저희도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대구MBC는 프로그램 자막을 맡는 프리랜서의 임금을 주급으로 지급하며 21년차 직원의 주급이 40만원 선에 불과한 등 비정규직 처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사업장 중 하나이다.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 선지현 공동대표는 “왜 그토록 열심히 일했냐”고 반문하며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했다. 선 대표는 “이재학 PD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맡은 프로그램 평균 개수가 9.5개였는데, 이걸 본 다른 팀장급 PD는 ‘연출과 조연출을 막론하고 프로그램을 2개 넘게 맡는 경우는 드물다. 말도 안 되는 기록’이라는 말을 했다”며 그가 처했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비판했다.
2016년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절망하며 앞서간 고(故)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 씨도 이날 추모제 현장을 찾았다. 이한빛 PD는 tvN 정규직 공채로 입사해 일했으나 방송 현장에서 발생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문제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 이후 방송계 노동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만들어졌지만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혜영 씨는 “한빛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한빛에게 끝낼 수 있는 숙제도 해나가겠다고 결심했다”며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 함께 걸어가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로 이재학 PD의 가족에게 위로를 전했다.
한편 이재학 PD 사망 이후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결과보고서 채택을 두고 현재 진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이재학 PD 사망 대책위원회는 5월 26일 ‘고인의 명예회복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약속한 CJB청주방송의 약속 이행과 문제 해결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월간 옥이네 VOL.36(2020.6)
글 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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