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18년 2월호
88 서울올림픽은 그야말로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행사였다. 정부는성공적 개최를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 당시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이었던 조영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디자인전문위원장을 필두로 지난해 작고한 양승춘 서울대학교 교수가 엠블럼을, 김현 전 디자인파크커뮤니케이션즈 대표가 마스코트를 디자인했다. 또홍익대학교 한도룡 교수가 환경 디자인을, 황부용 전 디자인브리지 대표가 타입페이스와 픽토그램 디자인에참여했으니 말 그대로 한국 디자인계의 어벤저스라고 할 만했다. 그리고 올해 2월, 꼬박 30년이라는세월을 돌아 다시금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시대적 관심사도 변했고 올림픽의 인기역시 예전만 못하다는 평마저 듣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올림픽이라는 목표를 향해열정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헌신이다.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두 대회의 디자인을 나란히소개하는 기사를 준비했다. 두 세기에 걸쳐 보여준 디자이너들의 열정이 남다른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서울올림픽의 엠블럼은 본래 공모전을 통해 선정할 계획이었다. 이때총 924점의 응모작이 몰렸지만 당선작 없이 가작 2점만선정되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다시 가작 당선자 2명을포함 총 10명의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지명 공모를 실시했고 결국 고(故) 양승춘 서울대학교 산업미술학과 교수의 삼태극 엠블럼이 선정됐다. 양승춘교수는 삼태극을 모티브로 원심운동과 구심운동의 요소를 형상화했다. *디자인: 고 양승춘 서울대학교 산업미술학과 교수
평창 동계올림픽의 엠블럼은 초성 ㅍ과 ㅊ을 모티브로 활용했다. ㅍ에는천지인(天地人) 사상을 기반으로 하늘과 땅, 사람이 모이는 광장이라는 뜻을 담았으며 ㅊ은 눈과 얼음 등을 조형적으로 풀어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편. 한편에서는 오방색이나 한글이라는모티브에 지나치게 얽매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면이나 패턴이 아닌 라인으로 풀어낸 아이덴티티라는점에서 새로운 시도였다는 반응도 있다. *디자인: 하종주(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www.cheil.com
호돌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호돌이는 글자 그대로 국민 캐릭터였다.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반 공모와 7명의 디자이너를 대상으로한 지명 공모를 거쳤다. 이 중 지명 공모를 통해 당시 대우 기획조정실 제작부에서 근무하던 김현 전디자인파크 커뮤니케이션즈(이하 디자인파크) 대표의 시안이채택되었는데 이렇게 탄생한 아기 호랑이 캐릭터는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국민들의 대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각종기념 굿즈는 물론 만화책,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되었으며 호돌이의 이름을 따온 적금 통장이 등장하기도했다. 대회가 끝난 뒤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졌던 호돌이.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힙스터들 사이에서회자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디자인: 김현(전 디자인파크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수호랑과 반다비
서울올림픽과 달리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 선정은 철저히 입찰 방식으로 이뤄졌다. 콘텐츠 융·복합 크리에이티브 그룹 매스씨앤지는 스토리텔링을 강조한접근법으로 조직위원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탄생한 마스코트가 수호랑이다. 백호를 모티브로 한 이 캐릭터는 호돌이의 직계손이라 할 만한데 시대의 흐름에 맞게 소통형 마스코트로 디자인하는데 주력한 모습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강원도 반달곰을 형상화한 패럴림픽 마스코트 반다비다.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던 호돌이에 비해 같은 해 열린 서울패럴림픽 마스코트 곰두리는 주목도가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당시 마스코트의 원작자는 이윤수 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이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조차 많지 않다). 반면 반다비는 수호랑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이 또한 시대의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디자인: 매스씨앤지(CMO 이희곤), masscg.kr
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성화봉. 서울올림픽 성화봉은 전통 공예 느낌이가미된 것이 특징이었다. 이우성 전 숙명여자대학교 산업미술과 교수는 고대 궁중의 용 무늬 화로를 모티브로디자인했는데 성화봉을 감싼 2마리의 용은 올림픽이 무진년 용해에 열린다는 뜻이다. 또 둥글게 사방으로 뚫린 24개의 불 구멍은 제24회 올림픽을 상징한다. 화로 바로 아랫부분의 엠블럼은 칠보로 조각해전통적 색채를 가미한 점이 눈에 띈다. *디자인: 이우성 전 숙명여자대학교 산업미술과 교수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은 전통적 문화 DNA와 모던한 조형미가 적절하게밸런스를 이룬 모습이다. 성화봉 표면의 유려한 곡선과 화이트 컬러는 전통 백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며, 타오르는 불꽃을 모티브로 한 다섯 갈래의 불길 형상과 상·하단의오각형은 전 세계 오대륙을 뜻한다. 이 불길이 모여 이뤄진 하나의 불꽃은 하나 되는 올림픽 정신을 상징한다. 금빛으로 빛나는 상단부에 ㅊ자 타공과 하단 손잡이 부분의 ㅊ자 패턴의 개수는 모두 합쳐 750개. 남북한 7500만인구를 상징한다. 성화봉 길이는 700mm인데 평창이 해발 700m에 위치해 있다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올해 성화봉은 기술적측면에서도 심혈을 기울였다. 사실 역대 올림픽을 돌아보면 각종 사고나 천재지변 등으로 종종 성화의 불이꺼지는 일이 발생했는데, 미국 스포츠 전문 주간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성화 봉송 도중 불꽃이 꺼진 횟수가 최소 44회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번 성화봉은 바람이 불 때 불꽃이 격벽 반대 방향의 산소원 쪽으로 이동하도록설계했다. 또 상단의 우산형 캡을 통해 빗물이 외부로 배출되도록 버너 시스템을 디자인해 악천후에 대비하기도했다. 제작은 1988년에 이어 올해도 한화그룹에서 맡았다. *디자인: 이노디자인(대표 김영세),innodesign.com
서울올림픽 메달은 입상 메달, 참가 메달, 기념 메달로 이뤄졌다. 하계올림픽의 입상 메달 앞면은 1928년 이래 월계수를 든 승리의 여신을 새기는 것이 IOC의 전통. 반면 뒷면은 1972년 뮌헨 올림픽을 기점으로 각국에 따라 다양하게변형된 디자인을 선보여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경우 조폐공사 디자인실에서 뒷면을 조각했고 서울올림픽엠블럼과 월계수를 문 비둘기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가 메달에는 국보 1호인 남대문을 중심으로 십장생의 소재를 배경에 넣어 동양적인 느낌을 강조했다.기념 메달에는 남녀 성화 주자, 올림픽 주 경기장, 멀리뛰기선수의 연속 동작 등을 새겨 넣었다. *디자인: 조폐공사디자인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디자인은 아마 메달이었을 것이다. 하계올림픽과달리 동계올림픽의 경우 양면 모두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험적인 디자인이 더 자주 나오곤 했다. 산업 디자인 전문 회사 SWNA는 흥미롭게도 메달의 전면이 아닌측면에 집중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공일팔’의 자음 ‘ㅍㅇㅊㅇㄷㅇㄱㅇㄹㄹㅍㄱ’을 순서대로 측면에 둘러 레이저로 새긴 것. 이는 전면에 추상적으로 표현한 역동적 사선과 잘 어우러진다. 메달끈은 한복에 사용하는 비단의 종류인 갑사를 활용했다. *디자인:SWNA(대표 이석우), www.theswna.com
20세기 올림픽 포스터는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총집약시킨 예술 작품과같았다. 북미와 유럽 중심이었던 개최지가 1956년 멜버른하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지역적 특색과 미학을 수용하게 됐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이후에는 TV가 보급되며 포스터는 정보 전달의 기능을 넘어 각 올림픽이 표방하는 분위기와 스타일, 가치관 등을 반영하게 됐다. 여기에 표현 기술의 비약적 발전도 올림픽포스터의 예술화에 한몫했다. 이에 걸맞게 서울올림픽에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활용했다. ‘인류의 화합’을 의미하는 올림픽 정신을 오륜으로형상화하고 여기에서부터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래픽으로 형상화했다. 컴퓨터 그래픽이 보편화된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이 정도 기법을 디자이너 개인이 표현해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팀워크로 포스터를 제작한 것 역시 특징이다. 오륜의 그러데이션은 조종현 전 JDR 실장이, 발광하는 CG 효과는 일본인 디자이너 겐다 에쓰오가 각각 맡았고유영우 현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시각디자인과 명예교수가 달리는 성화 주자를 촬영했다. *디자인: 조영제 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이번 올림픽의 공식 포스터는 엠블럼과 마스코트, 픽토그램을 활용했으며엠블럼에서 도출한 기하학적 조형을 패턴화해 배경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실험성보다는 안정성을택했는데 20세기와 달리 대회를 알리는 채널이 다양화되면서 상대적으로 포스터의 비중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보인다. 30년 만에 돌아온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여름에는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예술 포스터 공모전(주관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을열었는데 여기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순수 예술 작가, 도예가 등 총 8팀의작품이 선정되었다. 이들의 작품은 작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한 차례 전시를 가졌고 오는 2월 9일부터 3월 18일까지 문화역서울284RTO에서 열리는 전시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에서 다시금 선보일 예정이다. 이 전시에서는 예술 포스터 외에 역대 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공식 포스터, 서울올림픽과평창 동계올림픽의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 서울올림픽에 대한 사진 아카이브 자료 등도 만날 수 있다. *공식 포스터 디자인: 함영훈(스튜디오니모닉) *예술 포스터: 기은/하동수, 홍현정/황수홍, 김재영, 김주성, 박성희, 전창현, 김예슬, 김종욱
기획·글: 최명환 기자 ⓒ월간 <디자인>
*월간 <디자인>은 1988년 9월호거의 전권을 할애해 ‘1988 서울올림픽 디자인 특집’으로꾸몄다. 이번 기사에 사용한 1988년 자료는 당시 기사화한자료를 스캔한 것이다. 1988년 당시 기사는 월간 <디자인> 디지털 라이브러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