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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Sep 30. 2021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연주된 모든 순간들

존 케이지, '4분 33초'


옷장에서 가장 격식 있는 옷을 꺼내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연주장에 모여 들어
연주회를 감상하러 온 사람들.
피아노 앞에 앉은 연주자.

박수갈채가 울려퍼지고,
오로지 연주자를 위해 준비된 무대.

그런데,
연주자는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다.



시방아트



연주자는 그저 앉아있다가
악장이 바뀔 때 피아노 뚜껑을 여닫고
4분 33초가 지나자
인사만 꾸벅 하고 들어가 버렸다.

이게 무슨 일일까?









1952년,
음악계를 뒤흔든 한 곡이 탄생한다.

작곡가 존 케이지가 완성한 곡,
'4분 33초'.

악보는 이렇다.



아무런 음표도 적혀 있지 않은 이 곡.
음표가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있을 뿐이다.

연주란 응당 음을 연주해야 하지 않나?
이걸 하나의 곡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시 음악계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순간들을
어떻게 연주라고 할 수 있나'며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사상 처음 '연주 없는 연주'를 접한 사람들은
저마다 혼란스러워 했다.



매일경제



작곡가 존 케이지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왜 연주자에게
텅 빈 악보를 전해주었을까?

그에게 이 곡은 어떤 의미였을까?









존 케이지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흥미가
대단히 많았던 사람이었다.

경력 초기에는 무용 음악을 작곡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금껏 없던 음악,
특히 '우연성의 음악(musique aleatorie)'을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다시 말해 그는,
미리 준비되고 짜여진 음악이 아니라
우연히 만들어진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



NPR music



이 곡 '4분 33초'는
존 케이지가 추구했던 우연성의 미학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어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꽉 찬 곡이다.
'우연히 발생한 소음'들로 말이다.


ORDINARYSTRANGE



첫 연주회 장면을 함께 상상해보자.

연주자가 피아노에 앉은 순간
관객들은 일동 침묵하며
화려하게 펼쳐질 연주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미동도 않는 연주자를 보며
이내 당황한 사람들은

헛기침을 하거나,
지루한 마음에 물을 들이키거나,
자세를 고쳐앉으며 삐걱대거나,
브로슈어를 만지작대거나,
서로 속닥대었을 것이다.

악기 소리는 단 하나도 없지만,
관객들이 우연히 낸 이 모든 소리들.
바로 이것들이 모여 '4분 33초'라는 곡을 완성한다.



SASSAS



어떤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대중주의.
완성품보다 과정을 강조하는 과정중심적 태도.

그리고,
창작자의 일방적인 전달매개로서의 텍스트보다는
퍼포먼스라는 과정 안에서 독자의 참여로 채워져가는
가변성의 텍스트.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그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총체라고 볼 수 있다.



MoMA



'For any instrument or combination of instruments.'
(모든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곡. 한 개든 여러 개든.)


존 케이지는 이 곡을 통해
'음악은 응당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음악의 범주를 넓히고자 했다.

이 곡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노라면
아무렇게나 들려오는 일상적 소음 또한
훌륭한 예술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오늘 하루가 조금 지루했는가?
특별한 일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냈는가?

그렇지 않다.
당신이 오늘 만들어낸 작은 소음들 모두,
오늘을 장식한 다채로운 음계들이었다.


오늘 하루,
당신도 남못지 않게 훌륭한 연주자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JTEFKFiXSx4

> A performance by William Marx of John Cage's 4'33.

   Filmed at McCallum Theatre, Palm Desert, CA.








글,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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