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달글 Dec 31. 2020

[셸터] 엘크를 보셨나요 - 2


라스베가스 시내는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였다. 쉼 없이 돌아가는 룰렛 옆으로 온갖 달다구리며 즉석음식을 파는 가판대들이 늘어서 있었다. 프레첼 가게에선 빨간색 모자를 쓴 젊은 여자가 아무 표정 없이 밀가루 반죽을 주욱주욱 뽑아냈다. 시나몬 프레첼을 하나 달라고 하자 또 아무런 표정 없이 설탕 뿌려줘요? 하고 물어왔다. 나는 한손에 프레첼을 들고 카지노 한 바퀴를 돌았다. 어차피 잃을 돈도 없는 나에겐 도박장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라스베가스에 간 건 오직 그랜드캐니언을 보기 위해서였다. 계획 없이 다니는 편이지만 그랜드캐니언을 위한 캠핑 투어만큼은 두어 달 전에 예약을 해두었다. 약속된 날 아침 눈을 떴을 땐 미미라는 사람한테서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아 망했다’
눈을 뜨기도 전에 느껴지는 쎄함.
“지호씨 맞죠? 지금 빨리 안 오시면 저희 출발해야 돼요.”


세면대 위에 있는 물건들을 가방에 던져 넣고 하필 입고 잤던 I love LA 티셔츠를 입은 채 호텔 앞으로 뛰쳐나갔다. 투어용 차량에 도착하자 미리 타있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박수를 쳐댔다. 꼴등으로 오는 사람이 휴게소에서 음료수를 사기로 했다며 미미가 호탕하게 웃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창피함에 두 손 뒤로 얼굴을 숨겼다.
미미는 함께 가지 않았고 투어 가이드인 톰이 운전하는 7인승 승합차를 타고 출발했다. 톰이 1박 2일을 함께하게 된 우리들을 서로 소개시키며 일부러 혼자 온 사람들을 한 팀으로 묶었다고 말했다.혼자 여행을 하며 주로 나처럼 혼자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들과 친구가 된 적은 없었다. 사실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여행으로 맺은 인연은 여행에서 마무리 짓는다는 요상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여행은 도피였고, 그곳은 내게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이 아닌 곳에서 만난 사람은 현실로 돌아오면 사라져야 했다. 그 잠깐의 도피는 그저 아름답고 흐릿하게 기억되었으면 했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건조한 대화가 오갔다. 여기엔 언제 왔는지,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나이는 직업은 뭔지, 약속이라도 한 듯 준비된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었다. 왼쪽에 앉은 희원은 뉴저지에 사는 전업주부였고, 오른쪽에 앉은 종찬은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 뒤에 앉은 요섭과 나리는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 중인 학생이었다. 심심치 않게 톰이 이 도시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어제 먹다 남은 시나몬 프레첼 가루가 가방 안에 범벅이 되어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네바다 주를 벗어나 애리조나 주에 들어서 처음 멈춰선 곳은 후버댐이었다. 후버댐 건설은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었을 법한 규모였다. 톰은 멀리 네모반듯 깎인 콘크리트를 가리키며 저 아래로 수많은 인부들이 희생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가방을 뒤집어 설탕을 다 털어내고 나서야 회갈색 콘크리트 벽에 묻어있는 수천명의 세월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살기 좋죠? 아이 키우기도 좋을 것 같고요.”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희원 언니의 결혼 스토리에 주목했다.“그건 그렇죠. 두 살 배기 아들이 있는데 아이들 자라기 정말 좋은 곳이에요. 그런데 주부인 저한텐 생각하는 것처럼 좋지만은 않아요. 친정 엄마도 옆에 없고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여기는 산후조리라는 개념이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열흘 전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만났던 여자가 떠올랐다. 화장 예쁘게 했다며 말을 걸어온 그녀 또한 어린 아이를 둔 젊은 엄마였다. 친정 엄마한테 아이를 맡겨놓고 도망치듯 떠나왔다며 결혼은 일찍 하지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취업, 결혼...? 그 결과가 행복일지 불행일지 알 수 없으나 다들 하고 싶어 안달인 것들. 그 어느 것도 해보지 않은 스물둘의 나에겐 그저 행위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지호씨는 만나는 사람 있어요?”“네 있어요. 남자친구 못본지도 벌써 열흘이네요.”
내 남자친구는 고시생이었다. 미국으로 떠나오는 날 전화기 너머로 어쩐지 기운 없는 그의 목소리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좋은 거 많이 보고 오라는 그의 목소리에는 질투에 가까운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무시하려면 무시할 만한, 그러나 근본적으로 중요한 결정에 단서가 될 만한 가치에 차이가 있었다. 고시의 끝에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평범한 결혼생활을 꾸려나갈 상상을 하곤 했다. 그가 열심히 돈 벌어서 처자식 고생시키지 않는 게 꿈이라고 말하면, 나는 ‘처자식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닐지도 몰라’ 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의 미래에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사실 그는 미래를 함께할 내 모습도 한 번쯤 그려보았을 터이지만 나는 원대한 계획이나 목표 따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흘러가는대로 사는 게 인생이라고 믿었다.
늘 짜여진 계획 속에서 철저히 아끼며 사는 그는 가끔 이런 나를 질투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셸터] 엘크를 보셨나요 -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