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엔젤레스에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15번 도로 옆 덩그러니 자리해 있던 휴게소에서 얼마 남지 않은 현금을 세어보고 있었다. 한손에는 지갑과 휴대폰을 들고 겨드랑이에는 물병을 낀 채로 손바닥에 동전을 펼쳐 보았다.
25센트짜리 하나가 차가운 바닥에 쨍그랑 떨어진 건 누군가 “저기요” 하는 목소리를 내었을 때였다. 열흘 간 홀로 서부 도시들 곳곳을 다니면서 한국사람과 한 번도 대화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빠 손잡고 콜라 사달라며 칭얼거리던 꼬마의 목소리, 거스름돈을 잘못 줬다고 따지며 계산대를 탕탕 치는 소리, 팔뚝만한 핫도그를 들고 뛰어가던 발소리 따위가 나에겐 배경음악처럼 늘 함께하고 있었다. 저기요, 오랜만에 들려온 이 세 음절은 갑자기 라디오 주파수를 바꾼 격이었다.
“한국 분이시죠? 우리 버스로 몇 시까지 돌아가야 해요?”
“아 네… 맞아요. 15분이요.”
미국에서 도시 간 이동은 커다란 이층버스가 가장 편했다. 여행자, 현지인 할 것 없이 그날의 큼직한 버스도 빈 자리 하나 없이 묵직했다. 8월이 끝나갈 무렵, 여름휴가의 끝자락을 붙잡고 아쉬움에 짐가방을 풀지 못한 이들이었다. 여섯 시간을 달려 라스베가스로 가는 동안 광활한 사막이 계속됐고, 엉덩이가 아파올지 언정 시원하게 뻥 뚫린 길 위에 초조한 마음은 없었다. 나는 잔돈을 모아 사온 피넛버터 초콜릿을 입안에서 녹였다. 타지의 언어만이 들려오던 낯선 땅에서, 마치 사막의 모래알이 된 것 같은 은밀한 고독을 찬찬히 맛보았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 법한 사람이 나뿐은 아니라는 사실에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뜨거운 바람을 내뿜으며 터미널에 멈춰 섰다. 나는 내 소박한 짐을 챙겨 나와 잠시 방황의 눈으로 라스베가스를 훑어보았다.
“저기, 숙소가 어디쯤이에요?”
방금 전 그 사람이었다.
“괜찮으시면 택시 카풀 하는거 어때요? 어차피 다들 같은 방향일텐데, 돈도 아낄 겸 해서요.”
왜일까, 혼자일 때보다 더 큰 경계심이 드는 건. 하지만 이내 40도를 웃도는 열기를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그의 찡그린 표정에서 나는 그가 진심임을 알았다. 돈 한 푼이 아쉬운 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라도 그의 제안을 승낙하려고 했다.
“저는 엑스칼리버 호텔로 가요.”
“저랑 같네요. 그럼 제가 택시를 부를게요.”
택시 안 에어컨 바람으로 한참 동안 열기를 식히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는 나처럼 혼자 여행 중이었고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었으며 귀한 휴가를 몰아붙여 먼 땅 미국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지호씨는 몇살이에요? 학생같아 보이는데.”
“스물두살이요. 대학교 3학년이에요. 지금 방학이거든요. 엘에이 먼저 구경하고 여기로 왔어요. 아 참, 우리 같은 버스를 탔군요.”
“하하 맞아요. 대학생이라니 진짜 부럽네요. 저는 취업을 너무 빨리 해서 제대로 못 즐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더 필사적으로 놀러 다니는 거지만… 학생 때랑은 확실히 달라요. 이번에도 휴가 길게 써보겠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같이 오기로 한 친구놈은 결국 못 오게 되었구요.”
그렇다면 배낭여행의 자유와 낭만은 대학생 한정인 걸까, 어른이 되면 어떤 종류의 행복을 가지고 살게 될까.
“회사에서 무슨 일 하세요?”
“아, 나는 TV 만드는 일을 해요. 정확히 말하면 TV 모니터에 들어가는 부품을 담당해요. 음, 설명이 어려운데 아무튼 기계 만지는 일이에요. 근데 원래는 이 일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서.”
“그러면요?”
“조리 고등학교를 나왔거든요. 어쩌다 보니 회사에 다니게 되었지만 요리하는 게 더 재미있죠. 뭐, 지금처럼 좀 재미는 없어도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생활도 나쁘진 않지만요.”
얼마간의 정적 후 택시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택시비는 내가 낼게요. 학생한테 돈을 어떻게 받아. 여행 조심히 다니고, 오며 가며 또 봐요. 한국 사람들끼리는 자꾸 또 마주치게 되더라고.”
그렇게 헤어진 뒤로 그와 다시 만나진 못했지만 낯선 사람의 따뜻한 배려와 그리웠던 대화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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