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달글 Mar 01. 2021

[장문장] damon92.lee : LEAVING

나의 이직 수기

2017.02 : 내가 인사팀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지금은 SW 개발자지만, 원래 나는 HR 지망이었다. 업무 환경, 복지, 평가와 보상 등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 흥미로웠다. 2년간 HR 학회를 했고, 훌륭한 교수님 아래서 조직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두 차례 썼다. 국내지만 저널에도 올라가고 책에도 실렸으니 나름 실적이 뚜렷했다. 


4학년 2학기, 그러니까 2017년 상반기에 네이버의 한 계열사에서 HR 인턴을 했다. 현업은 기대와 조금 달랐다. 내가 배우고 공부했던 것들은 인사 컨설팅에서나 다룰 수 있는 주제였고, 실제로 HR에서 하는 일은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충실하게 동작시키는 것이었다. 

HR은 보수적이다. 인사제도는 니트로글리세린처럼 민감해서 쉽게 변화를 줄 수가 없다. 작은 충격에도 직원들은 펑-하고 터져버린다. 나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열광하는 사람이고, 그닥 꼼꼼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제서야 내가 HR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전환형 인턴도 아니었지만!


2017.07 : 개발자가 되다


나는 취업이 절실했다. 졸업을 미루면서 취준을 하는 건 내게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 즘에 삼성전자에서는 SCSA라는 특별한 채용을 진행했다. 일단 공채를 통해 비전공자를 뽑아서, 6개월간 교육을 시킨 후 SW 개발자로 채용하는 전형이었다. 게다가 교육기간 동안 월급까지 준다고 하니, 누구보다 나를 위한 전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경영학과 출신에 학부에서 실제 서비스를 돌려보기까지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채용 모수보다는 적을 것이었다. 물론 지금에야 합격하는 게 당연한 듯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절실했다. 번갈아가며 하루는 탈락하는 꿈을 꾸고, 하루는 합격하는 꿈을 꿀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상반기에 합격해서, 7월부터 12월까지 교육을 받고, 다음 해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2018.03 : 삼성전자, 삼성리서치, 네트워크 플랫폼


삼성전자에 입사할 당시, 나는 온갖 소리를 다 들었다. 대체로 결은 같았다.   


축하한다. 그런데 너는 분명 스타트업에 갈 줄 알았다.

축하한다. 그런데 원래 대기업에는 다양성을 위해서 자신들의 문화와 맞지 않는 사람을 10% 정도 뽑는 시스템이 있는데, 그 수혜자가 너인 것 같다.


감사합니다. 물론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싸우는 인간이었다. 불합리를 공론화시키고, 책임자의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전투적인 구성원이었다. 내게 삼성전자는 거대한 불합리의 덩어리로 보였다. 물론 그때는 삼성전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편견일 뿐이었다. 3개월의 연수를 마치고, 나는 삼성리서치에 배치되었다.


삼성리서치는 삼성전자의 선행연구소다. "3년 뒤에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에 대해 답을 내리고,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여, PoC (Proof of Concept, 컨셉 시연)를 통해 사업부에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 박사님들이 많고, 논문이나 특허를 산출물로 내기도 한다.

나는 선행 네트워크 팀에 배치되었다. (분명 지원할 때만 해도 IoT 랩이었는데, 언젠가부터 5G로 도메인이 바뀌었다)  '제발 네트워크만 안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운명이란 단어는 대체로 체념이나 비관의 뉘앙스가 있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네트워크는 전공자들도 기피하는 분야였다. 혼자서는 평생 하지 않을 네트워크 공부를 억지로라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현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내가 상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어떤 개념을 모를 때, 나만 모르는 건지, 아니면 신입 전공자 대부분이 모르는 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끙끙 앓았다.

그 뒤로 1년 반 정도 지나, 2개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책을 4권 정도 땠을 때쯤에야 나는 상식적인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상대가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때 상대를 탓할 수 있게 되었는데, 영어회화로 치면 "내 발음이 잘못되었나" 같은 불안에 휩싸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2020.12 : 이대로 괜찮은 걸까


HR에서 개발로 커리어를 급격하게 전환하면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어떤 환경과 맞닥뜨리든 3년 동안은 삼성전자에서 개발자로 일하겠다는 결심이었다. 그 뒤는 3년이 지나고 생각해보자. 현업 3년은 학위가 없는 사람을 그 업계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주 40시간 근무, 자율 출퇴근, 맛있는 밥, 다양한 복지와 높은 연봉. 삼성전자라는 이름값. 그중에서도 삼성리서치는 누가 뭐래도 좋은 직장이다. 특히 내가 있던 부서는 사람들이 다들 친절하고, 서로 친해서 분위기가 부드럽고 따듯했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했다. PoC 중심의 개발은 코드 퀄리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트렌드를 쫒아서 매년 다른 기술, 컨셉을 찾아보니 계속해서 도메인이 달라졌다. 동기들끼리는 "또 경력단절 당했다"라며 농담을 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 탓에 의미 없는 숫자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음 해 목표를 세우니 기술 인플레이션이 생겼다.

편한 회사에 느긋하게 다니면서 받는 높은 연봉의 대가는 바로 내 성장가능성, 잠재력이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시간과 경험을 거래한다. 삼성에서의 첫 3년은 나를 한 명의 개발자로 성장시키는 중요한 경험이었지만, 두 번째 3년은 결코 좋은 거래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허술한 기획에 기반한 PoC,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버려진 오픈소스를 심폐 소생하는 일만 계속 해서는 도저히 좋은 미래가 보이질 않았다. 내가 느낀 불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여기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다고 해서 내 커리어가 보장되지 않는다.


3년 차 주니어가 단정 짓기에는 너무 성급하지만, 스스로의 성급함을 인지한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나 말고 다른 주니어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3년은 있는다, 라는 결심은 3년 있다 무조건 나간다, 라는 것으로 미묘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나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사내 벤처였다.

삼성전자에는 C-LAB이라는 사내 벤처 제도가 있다. 공모전을 통해 선정되면 1년 동안 창업하듯이 아이디어를 구현해볼 수 있는 제도였다. 창업을 해보고 싶지만 삶이 배수진인 나에게 공짜로 실패할 수 있는 기회는 엄청난 것이었고, 회사를 떠나더라도 사내 벤처는 꼭 하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내 벤처를 하면서 그마나 도메인이 맞는 클라우드 공부를 해서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로 가는 것이 일단의 계획이었다.

그때 마침 이직을 준비하던 동기가 내게 채용공고를 하나 보내왔다. 


너 DPDK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공고가 열린 계열사는 마침 내가 17년에 HR 인턴을 했던 그곳이었다.


2021.01 : 생애 첫 기술 면접


DPDK는 인텔에서 개발한 네트워크 관련 오픈소스였는데, 나는 6개월 정도 DPDK를 하면서 이걸 우리나라에서 누가 할까, 라는 외로움을 느낀 바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네이버의 한 계열사, 내가 HR인턴을 했던 그 곳에서 DPDK 경험을 우대하는 공고가 열렸고, 나는 서류는 붙겠거니 하고 지원했다. 

나는 기술 면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알고리즘이야 자신 있었지만, 애초에 기술 면접을 본 적이 없으니 내 수준이 어느 정도고, 어떤 걸 공부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영 자신감이 없어 추천인도 쓰지 않고, 네이버에 재직 중인 지인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나름 주변 사람들에게 직군을 바꿔버린 특이케이스로 유명한데, 1차에서 떨어지면 부끄러우니까.


서류를 넣고, 코딩 테스트 하나 없이 바로 1차 면접이 잡혔다. 그제야 내가 6개월 단위로 했던 프로젝트들을 찬찬히 돌아보며 면접을 준비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나는 프로젝트 관련된 질문은 비교적 잘 대답했다. 하지만 그 외에 온갖 기초적인 질문에 모조리 침묵했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경력 면접에서 컴퓨터공학(CS) 기초를 물어볼 줄은 몰랐다. 내가 했던 프로젝트와 사용했던 기술, 도메인 위주로 복기했는데, 막상 기초적인 CS 지식을 물어보니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물론 무엇을 하든 기초가 탄탄해야 하기에, CS 지식 자체가 부족한 것을 인정해야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3년차 정도는 경력 있는 신입 같은 느낌으로 뽑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기본기에 더 집중했어야 했는데, 고작 3년의 경력에 너무 자만했었다. 


수치심이 드는 걸 보니 좋은 연습이 되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주 정도가 지나 1차 면접에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게 붙어? 나뿐만이 아니라 내 면접 이야기를 들은 동기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물론 면접관이 숨겨진 내 진가를 알아본 것이 분명했다.


2차 면접은 더 가관이었다. 한 면접관이 지원동기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는데, "실제 개발기간이 2년이 채 안 되는데, 우리 회사에서도 2~3년 하고 나가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라는 말에 "물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온다면 가야겠죠."라고 대답했다.

최소 5년은 무조건 있고, 내 프로젝트를 갖는다면 얼마든지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가 되어버렸다. 

 또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말을 줄기차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면접관이 무척이나 싫어하는 말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다르다고 반박하기에는, 일단 내 면접관은 무척 싫어했다.

3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던 면접은 30분 만에 끝났다. 판교역 지하철을 타면서 다시금 생각했다. 수치심이 드는 걸 보니 좋은 연습이 되었다.


그리고 2주 정도가 지나 최종 합격 통보가 왔다. 투자한 시간이 원체 많고 마음을 많이 썼다 보니 기쁜 마음이 먼저 왔지만, 곧 스스로 크게 당황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 인생이 아무리 제멋대로라지만, 일이 이렇게 풀리나? 마치 저 하늘의 누군가가 나를 이직으로 밀어 넣는 느낌이었다. 2월에 있을 사내벤처 공모전을 위해서 아이디어 시트를 구성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2021.03 : 4년만에 다시 뵙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2017년 인턴을 했었던 네이버 계열사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짜잔. 직무는 HR에서 개발로 바뀌었다.

주 52시간도 모자라다는 소문이 자자하고, 몸센티브라고 부르는 야근 수당과 얼마일지 모르는 스톡옵션을 제외하면 원천징수액도 낮아진다. 잘 쳐줘봐야 옆그레이드라고 할 만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계약 연봉이 올랐다는 건데, 그조차 기대만큼 많이 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직을 결심한 것은 단 한 가지 때문이다.


여기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내면 내 커리어는 보장된다.


1차 면접에서 면접관들의 나이스한 태도 안에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성장하고 있는, 그래서 지독하게 바쁘고 할 일이 많은 회사에서 미친 듯이 일한다면 분명 국내에서는 이 분야를 가장 잘하는 개발자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지적 기대가 들었다. 주 40시간을 일하면 어차피 10시간은 집에서 자기 계발을 하는데, 성과가 불분명하고 커리어에 일치가 안 되는 자기 계발을 10시간 하느니 성과가 분명한 업무를 50시간 하는 것이 더 이득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수당도 주니, 더할 나위 없다.

또한, HR 인턴을 했던 곳에 기술자로 들어가는 것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스토리다. 운명적이다. 이런 재미 요소는 참을 수 없다.


P.S.


2차 면접을 보고 건물에서 나오는 길에 대표님을 마주쳤다. 4년 전 인턴을 할 때 자주 봬서 엄청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대표님이야 4년 전 3개월 인턴한 친구를 어떻게 기억하겠나. 당황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당황해서 "면접 보러 왔어요! 그럼 잘 들어가세요!" 하고 도망쳤다. 

어떤 면접 보러 온 인간이 대표에게 이렇게 반갑게 인사를 한단 말인가. 이 또한 수치스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문장] 출근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