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 그냥저냥 일어나는대로 출근을 해야지, 매일 밤 바디필로우를 끌어안고 생각한다. 바디필로우는 오래되서 버려야하는데 도통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 대안을 찾지 못한 탓이다.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10분 동안 바디필로우를 검색했고, 20분 동안 유튜브를 보고 돌아왔다. 쇼핑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아래에 링크를 걸어둘테니까 글을 다 읽은 후 이어폰을 끼고 이 영상을 봤으면 좋겠다. 아주 혁신적이다.
알람을 맞추지 않으면 대충 7시에서 7시 반 사이에 일어난다. 혹여나 8시가 넘어서 일어나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보통 여중생들의 고함소리에 깬다. 이제 이사한지 2개월이 된 내 집 앞에는 중학교가 하나 있다. 8시가 넘으면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 교문을 지키고, 중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중생들은 엄청 시끄럽다.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여중생들은 교문 반경 50미터 바깥에서부터 “쌤~!~!~!!” 하고 외친다. 인간의 인생역정에서 여중생이라는 구간은 가장 에너제틱한 순간일 것이다. 분명 남녀공학인데, 남자의 목소리는 선생님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는 매일 아침 헬스를 해서 6시 40분에 알람이 맞춰져있었다. 나는 어디에든 늦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얼마나 늦는 걸 싫어하냐면, 5분 늦게 도착하느니 30분 일찍 도착한다고 말하면서 나약한 마음을 다잡을 정도로 싫어한다. 사실 5분 정도는 인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나에게 아침 일찍 무언가를 해야하는 것은 꽤나 강한 압박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시계를 보면 5시 30분이라거나 하기도 했다. 대학교 3학년 때 9시 수업에 2번 결석한 이후로 또 다시 그런 강박에 빠질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아마 잠의 효율이 20% 쯤 떨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아침에 운동을 않고, 퇴근하고 집에서 턱걸이를 한다. 몸이 좀 얄팍해졌지만 나쁠 것 없다. 마음이 편하다. 몸도 편하다.
저절로 일어나지던 알람에 깨던 아침은 어려운 것이다. 일단 침대에서 신음을 흘리다 커튼이 채 가리지 못해 빛이 새어나오는 창으로 고개를 돌린다. 창 옆으로 캣타워가 있고, 캣타워 꼭대기에는 해먹이 있고, 해먹에는 회색 털뭉치와 길게 삐져나온 뒷다리가 있다. 내 동거묘 장문장이다. 문장이는 러시안블루이고, 수컷이고, 땅콩을 땠고, 3살하고 6개월쯤이다. 아침에는 반드시 문장이를 괴롭혀줘야한다. 애완하는 자의 책임이다. 나는 기꺼이 일어나서 캣타워로 가 문장이 뒷통수를 두 손가락으로 살살살 긁으면서 동시에 스트레칭으로 골반을 열어준다. 다리를 이리저리 뻗고 허리를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도 라스베가스의 숙련된 카지노 웨이터처럼 손은 문장이의 뒷통수를 안정적으로 긁어줘야한다. 종종 대체로 나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매일 아침 면도를 할까말까 고민한다. 3일에 한 번 정도는 면도를 하지 않는다. 어차피 면도를 해도 오후가 되면 거뭇거뭇해지니까. 요새는 다크서클이 점점 짙어진다. 잠은 잘 자는 것 같은데, 그냥 늙어서 그런 건가. 이제 서른이니까. 아직 스물아홉이지만. 내 2020년은 1월에 대충 끝났다. 하루는 아침에 이미 끝나고, 일주일은 월요일에 이미 끝나고, 한 달은 첫 주에 이미 끝난다. 1년은 1월이면 끝난다.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계획이다. 삶은 이미 너무 비대하고, 속도도 빨라서, 웬만한 사건은 그 방향을 바꿀만큼의 충격을 줄 수가 없다.
날씨를 확인하고, 적당한 옷을 고르고, 문장이 얼굴을 붙들고 반죽처럼 쥐락펴락하며 이 집안에서 나의 권위를 세우고, 이제 출발이다.
낙성대역까지 대략 10분 정도가 걸린다. 집을 고를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점이 하나 있는데, 집에서 낙성대역까지 가는 10분 동안 단 하나의 신호등도 없다. 덕분에 명상하듯 앞을 보면서 등속운동으로 쭉쭉 걸어나갈 수 있다.
사람이 2호선을 타면서 행복할수는 없다. 출근시간에 2호선을 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든간에 그 순간 불행하다. 다행스럽게도 낙성대역에서 한 정거장만 지나면 사당이다. 더러운 화장실에 들어가듯 숨을 힘껏 들이마시고 잠깐만 꾹 참으면 된다.
사당에서 열차의 문이 열리면 대왕마마 귀환식처럼 사람들이 양옆으로 도열해있다. 나는 환관처럼 선두에서 고개를 숙이고 잽싸게 내린다. 2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는 구간에는 꼭 좌측보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연어라고 부른다. 흐름을 거스르고 종족의 본능을 위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이 꼭 알맞다. 아침의 사당역에는 반달가슴곰이 필요하다. 연어를 쳐낼 우람한 발톱과, 연어를 쳐낼 정당한 권리가 있는 질서의 수호자 말이다.
4호선 승강장으로 가기 전 천장에 달린 모니터에는 당고개행 열차 2분전이라고 나와있다. 1년차일때만 해도 모니터 속 열차에 타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지만, 지금은 모니터와 실제 열차의 위치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서울교통공사는 모니터 하나 관리하지 못하지만 터치가 가능하고 무선충전기능이 있는 새로운 광고판을 만들어서 시범운영중이다. 회사들 하는 짓이 다들 비슷하다.
회사는 우면산 아래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회사 위치를 이야기할 때는 양재라고 하지만, 사실 양재역까지는 12분에서 50분 정도 걸린다. 지도에서 선바위역과 양재역 중간을 집으면 대충 우면산 중턱이고, 거기서 조금만 아래로 손가락을 내리면 회사 언저리다. 회사는 도시의 끝자락에 섬처럼 있다. 선바위 역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당에서 두 정거장, 4호선을 타고 남태령을 지나면 선바위다. 나는 이 회사에 오기 전에는 사당역에서 아래로 내려가본 일이 없다. 말하자면 사당역은 서울의 끝이었고, 그 아래로는 수심이 너무 깊어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해수욕장의 안전선 너머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매일 그 안전선 너머의 선바위역에서 회사로 가는 셔틀버스를 탄다. 나는 회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셔틀버스는 선바위역에서 7시부터 10시 사이, 매 10분마다 출발한다. 이제는 홈스윗홈이나 다름 없는 관광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이북리더기를 켠다. 보아라! 나는 출근시간에 책을 읽고 있다! 이 공간에서 가장 생산적인 나를 보아라!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20분이 지나면 버스는 우회전을 하여 영동중학교를 지나 회사에 도착하고,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내려서 바닥에 떨어진 구슬처럼 각자의 경사를 따라 사무실로 흩어진다. 여기까지가 나의 출근이야기다. 이제야 하루가 시작한다.
(https://youtu.be/eqcwH_ZhvNo 모두 이것을 보라. 이건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