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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Sep 17. 2023

8년 전 편지에 대한 답장

2023년 3월 19일, 봄바람이 완연한 일요일 아침. 2015년 친구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 편지는 내가 프랑스로 떠나기 전 친구가 쓴 편지다. 하지만 편지는 부쳐지지 않았고 내가 프랑스에서 돌아온 다음 5년이 지나서야 편지를 받았다. 꾹꾹 연필로 종이에 눌러쓴 감정. 간호사인 너가 간호대학교 3학년을 다니고 있을 때 쓴 편지다. 곧 취업을 앞둔 너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1-2년 간은 농담처럼 자퇴할까 라는 말을 했었어. 내가 여기랑 잘 맞는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비전이 있어서 온건 아니었으니… 3학년이 되니까 보낸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계속 다니긴 한다만 그때는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요즘 취업앞두고 있는 아이들 보면서 좀 찡한데 우리도 내년에 저러고 있겠지. 언제까지 학생일 줄 알았는데 사회인이 된다니까 소름이야. 그때는 좀 어른같이 놀 수 있겠지. 쓰고도 내가 뭐라는지 모르겠다. 넌 알아서 이해해 줄거라 믿는다’


최근까지도 난 그저 진로를 고민하는 22살의 너라고 생각했다. 학생과 사회인 사이엔 선이 있다. 넌 그 선을 바로 건너 갔고 나는 그 선을 길게 늘어 뜨렸다. 8년이 지난 지금 간호사가 된 넌 여전히 퇴사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8년 전 편지에는 자퇴를 할까 말까 고민했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삶 속에서 상황은 달라지지만 같은 고민을 계속 한다. 5년 전 내가 쓴 메모에도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하는 내가 보였다. 나의 안전지대를 얼만큼 벗어나야 하는 걸까에 대한, 궤도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말이다. 난 선을 길게 늘어뜨려 고민을 이어갔다. 다수의 실패와 안전지대로 귀환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2023년 3월 드디어 안전지대를 벗어 나면서 너의 편지가 다르게 보였다. 편지 속 너와 지금 너를 보면서 너와 비슷했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전지대를 벗어난 지금 오히려 난 자유로워졌다. 자유는 불안감을 주고 안정감을 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안정감 정도에 1/5 정도를 주는 거 같다. 4/5는 내가 매일을 살아가면서 채워나가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보고 읽고 느끼고 적용하고 만들어 내려는 모습을 발견한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창의력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겐 안정감이 제일 중요한 요소지만 난 어쩔 수 없이 불안감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이 불안감을 설렘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다 다르다. 내가 불안감이 크고 예민한 사람인 것 처럼 누군가는 더 대담한 사람이고,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도 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벗어난 궤도가 안전지대인 사람들도 있었다. 모든 건 상대적이니까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질투도 많이 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으니까. 편지 말미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 항상 너를 응원한다’ 프랑스에 간 1년은 내가 처음으로 궤도를 벗어난 도전이었다. 내게 주어진 궤도가 아닌 곳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궤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온전히 하나의 궤도를 만드는 것은 어떤 것 일까. 시간에 힘을 빌려 감히 창조해보려 한다. 너가 나에게 준 응원처럼 나도 언젠가 너에게 전할 응원을 미리 적어논다. 너가 올지 안올지 모르지만 먼저 가서 널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너가 한 발자국만 더 걸어 나온다면 나의 안전지대를 내어주겠다고. 지금 난 내가 선택한 궤도에서 나만의 안전지대를 만들고 있을테니.




6개월 전 너를 생각하며 쓴 글이 있다. 2023년 3월 너가 8년 전 쓴 편지를 나에게 건내줬다. 무슨 우연일까. 그때 8년 전 편지에 대한 답장을 썼고 너는 2023년 9월 너의 안전지대를 벗어난다고 말했다. 예전에 쓰여진 편지에는 너의 고민이 담겨있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너도 너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지만 어쨋든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으며 현실을 살았다. 그 마음을 100% 이해하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너에 대한 응원을 건내고 싶다. 왜냐하면 넌 내가 방황할 때 그 어떤 가치판단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오로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줬으니까. 이젠 내 차례라고 느껴진다. 이것만은 알고 가. 항상 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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