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치는 게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시간
그해 여름, 나는 지쳐 있었다.
몸은 늘 피곤했고, 머리는 멍했고,
감정은 이유 없이 들쑥날쑥했다.
병원을 가보았지만 ‘이상 없음’이라는 진단만 반복됐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했다.
“인도에 가면 아유르베다를 한번 받아보세요.
그건 몸만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전체로 봐줘요.”
그렇게 나는 남인도 케랄라 지역의 한 작은 아유르베다 센터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몸과 마음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라는 감각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아유르(Ayur)’는 ‘삶’을,
‘베다(Veda)’는 ‘지식’을 뜻한다.
그러니까 아유르베다는 삶의 지혜,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살아야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 오래된 답변이다.
현대 의학이 증상을 중심으로 접근한다면,
아유르베다는 사람의 체질과 내면 상태, 기후와 계절, 음식과 감정까지 포함해서 몸 전체를 바라본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거다.
“당신은 어떤 기운으로 태어났고,
지금 무엇이 그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있나요?”
첫날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청진기도, 혈압계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내 손목을 잡고 맥을 짚더니,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바타(Vata)’가 과해요.
생각이 너무 많고, 불안정한 기운이 지금 몸을 흔들고 있어요.”
나는 놀랐다.
이곳에선 내가 어떤 병명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어떤 에너지 상태에 있는지가 먼저였다.
그 다음엔 내 식습관, 수면 상태, 배변 상태, 최근 겪은 감정 변화까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내게 어떤 약을 처방하기보단,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치료는 마사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마사지가 아니었다.
약초 오일을 데운 뒤, 두 명의 테라피스트가 네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며 몸 전체를 감쌌다.
그 촉감은 따뜻했고,
오일은 마치 내 몸이 오랫동안 버텨낸 것을 위로하듯 스며들었다.
아비얀가는 몸의 독소를 밖으로 끌어내고,
신경계를 안정시키며, 깊은 휴식을 주는 요법이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처음으로 몸이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를 고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몸의 리듬을 들어주는 시간.
그건 고요하면서도 굉장히 강력한 경험이었다.
치료가 끝나면 식단이 조정된다.
뜨겁고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자극적인 것, 찬 것, 날 것들은 일시적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음식을 왜 먹는가’에 대한 인식이었다
.
한 그릇의 수프도
“이건 당신의 속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약이기도 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 한 숟가락이 다르게 다가온다.
무언가를 금지당하는 느낌이 아니라,
‘이것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한 뒤, 스스로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아유르베다는 억제보다 수용,
치료보다 조율의 개념에 가깝다.
균형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아유르베다 체험 마지막 날,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치료는 시작일 뿐이에요.
당신이 진짜 배워야 할 건
자신의 상태를 매일 살피는 감각입니다.
몸은 늘 말하고 있어요.
잘 듣기만 하면, 치유는 이미 시작된 거예요.”
그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그건 삶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였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나는 매일 아침, 내 몸과 마음에 조용히 물어본다.
오늘은 어떤 기분이지?
속이 편한가?
무언가가 과하거나 모자라진 않았나?
그 질문들이 쌓이자
삶의 리듬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무시했을 작은 피로, 작은 분노, 작은 허기까지
이제는 나의 균형을 지키는 소중한 신호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