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인도에 도착했던 날, 공항에서부터 나는 ‘노래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택시 기사님은 도로를 달리며 흥얼거렸고, 골목 구멍가게 주인은 짐을 나르며 코로 반 박자 늦은 선율을 흘렸다.
버스 안에서는 운전기사와 보조원이 번갈아가며 인기 힌디어 곡을 틀고 따라 불렀고,
어떤 날은 옆자리 승객이 창밖을 보며 조용히 랙나(전통 노래)를 읊조렸다.
그때 생각했다.
"왜 인도인은 이렇게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부를까?"
인도에선 노래가 감정의 언어다.
기쁠 때, 슬플 때, 심지어 혼잣말을 대신할 때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
한 인도 친구는 말했다.
"우린 무언가를 설명하느니, 그냥 노래를 불러. 그게 더 잘 통해."
말보다 멜로디가 앞서는 사회.
인도인의 노래 문화는 이성과 감성을 연결하는 다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자주 부르는 ‘노래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볼리우드 영화 음악이다.
인도 영화는 대부분 OST 중심의 구조를 갖는다.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면 노래를 부르고,
이별을 맞으면 슬픈 발라드가 흐른다.
심지어 액션 장면 뒤에도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따라붙는다.
어릴 때부터 매주 가족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인도인들에게,
이 노래들은 ‘감정을 설명하는 방식’이 되었다.
말보다 노래가 먼저이고, 이야기를 노래로 전달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인도 길거리에서 버스 기다리며 콧노래 부르는 사람,
채소를 팔며 리듬 타는 아주머니,
학교 끝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며 부르는 대화 같은 노래.
이 모든 풍경이, 처음엔 낯설고 웃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그 틈에 스며들어,
설거지를 하며 힌디어 영화 주제곡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인도에서는 노래가 ‘무언가를 하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일부라는 것을.
한 번은 친구 결혼식에 초대받아 갔을 때,
신랑의 사촌이 신부를 위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불렀다.
다들 박수를 치고 눈물을 훔쳤다.
그날 신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이 노래가 우리 첫 만남보다 더 오래 기억날 거야.”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한국에선 결혼식 축가가 특별한 이벤트지만,
인도에선 노래가 인생의 주요한 기억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었다.
한국에선 말을 아껴야 깊은 사람이라 여겨지고,
감정 표현이 노골적이면 유치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인도에서 살며 느낀 건,
삶은 말보다 감정에 가깝고, 감정은 멜로디로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때로는 말보다 나은 전달 방식이 있다면,
그건 노래일지도 모른다.
특히 감정을 억누르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는 더더욱.
인도인의 잦은 노래는 단순한 ‘기분’의 산물이 아니다.
그건 문화적 무장해(無障害)의 표현이며,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이며,
또 하나의 자기표현 방식이다.
그것을 보며 나 역시,
혼자 있을 때 작은 목소리로 좋아하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됐다.
그리고 느꼈다.
세상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