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비하르와 우타르프라데시에서 마주한 침묵의 울림
처음 인도에 갔을 때,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붓다’를 향했다.
정확히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 전부터 열반에 들기까지 머물렀던
그 장소들을 따라가보고 싶었다.
‘붓다의 길’이라고 불리는 이 여정은,
수도인 델리에서 시작해 비하르(Bihar),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를 지나
네팔 국경 근처까지 이어진다.
이 글은 그 여정을 따라가며 내가 느낀 것들을 나누기 위해 적는다.
관광보다는 사유의 시간이었고,
종교보다는 인간을 보는 시선이 더 깊어진 여정이었다.
여정은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붓다의 출생지는 현재 네팔 영토에 있는 룸비니다.
작은 돌기둥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고,
그 주위엔 현대식 보호관이 지붕처럼 씌워져 있다.
그 돌기둥은 인도 아소카왕이 세운 ‘아소카 석주’로,
“이곳이 붓다의 탄생지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붓다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 사리 나무 가지를 잡은 채
여기서 붓다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누군가가 세상에 처음 온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종교 이전에 하나의 생명이 시작된 공간이었다.
그리고 모든 여정의 중심은 보드가야(Bodh Gaya)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로,
세계 각국의 불자들이 평생 한 번은 오기를 소망하는 성지다.
여기엔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이 있다.
그 웅장함과 세밀한 조각은 단순히 ‘오래된 사원’이 아니라
정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건축이었다.
그리고 그 사원 옆에는 보리수나무가 있다.
붓다가 7일간 그 아래에서 고요히 앉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그 나무 아래 돌 바닥에 잠시 앉았다.
눈을 감자, 먼지 바람과 불교 경전 낭송 소리,
수천 마리 새의 지저귐이 섞여 하나의 고요한 파장처럼 느껴졌다.
그 자리에선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종교적 개념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감각처럼 다가왔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이제 말을 해야 했다.
그는 사르나트(Sarnath)로 향해
5명의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했다.
그 첫 설법은 ‘초전법륜’이라 불린다.
이곳엔 거대한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가 있다.
원형의 붉은 벽돌 구조물인데,
그 앞에 서면 붓다의 목소리를 상상하게 된다.
‘고통이 있는가? 있다면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이 존재하는가?’
질문 하나하나가
종교 이전에 인간 존재의 뼈아픈 고백이었다.
여정의 마지막은 쿠시나가르(Kushinagar)다.
붓다가 열반에 들었던 장소다.
이곳에는 열반사(Parinirvana Temple)가 있다.
그 안에는 길게 누워 있는 대형 석상이 하나 있다.
붓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누운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그 조각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관광객은 없었고,
주위엔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석상 앞에 앉아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죽음조차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방식이
이토록 잔잔할 수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 처음으로 실감했다.
이 여정은 단지 ‘불교 유적지 탐방’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앉고, 바라보는 동안
어느 순간 마음속에 조용한 공간이 하나 생겼다.
붓다는 신이 아니었다.
그는 한 인간이었고,
삶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고,
마침내 삶과 고통의 본질을 이해했다.
붓다의 길은 우리 모두가 걷는 인생 그 자체였다.
다만, 그는 질문을 놓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을 놓지 않는 삶이야말로,
가장 치열하고도 따뜻한 길이라는 걸 알게 해준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