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가 남긴 감각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종종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도시는 복잡하고, 사람들은 분주한데,
그 안에 이상할 정도로 오래된 질서가 숨 쉬고 있다는 느낌.
벽돌 하나, 도로의 구조,
우물의 위치나 배수로의 방향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수천 년 전 누군가가 이 땅 위에 도시라는 구조를 놓고
사람과 자연, 물과 시간을 설계했다는 흔적.
이 글은 그런 보이지 않는 고대의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흔히 고대 문명을 이야기할 때
'돌무더기'나 '유적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인도의 고대 도시문명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곳엔 철저히 기획된 생활이 있었습니다.
정돈된 도로, 규칙적으로 배치된 주거지,
공공 목욕탕과 물을 분배하는 시스템.
이는 단순히 ‘집단 거주’가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리듬과 배려를 설계한 도시였다는 증거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살지 않았습니다.
'함께 살기 위한 질서'를 고민했고,
그 결과는 오늘날에도 인도인들의 생활 감각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인도 곳곳에 남겨진 고대 유적을 보면,
놀랄 만큼 물에 대한 배려가 많습니다.
빗물을 모으고 저장하는 구조,
거주지 사이사이 놓인 공동 우물과 배수로들.
이것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철학에 가까웠습니다.
물은 ‘신성’이자 ‘생활’이었고,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자원으로 다뤄졌습니다.
이 전통은 지금도 이어집니다.
인도인들이 여전히 강에서 정화하고,
물을 중심으로 제례를 치르며,
공동체 속에서 ‘물의 공유’를 중시하는 이유는
그 오래된 도시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죠.
도시의 탄생은 언제나 권력의 결과였지만,
고대 인도의 도시들은 공존과 균형을 중심에 두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특별히 우위에 서지 않도록
거주지 간의 거리는 균형을 이루었고,
공공 공간은 중심이 아니라 생활의 주변에 녹아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는 지금도 인도의 전통 마을이나
도심 속 커뮤니티에서 은근하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가족 문화나 공동 주거 방식은
단순한 풍습이 아니라,
오래된 도시 설계에서 비롯된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이 고대 도시는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무너지고, 덮이고,
현대 도시의 층 아래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시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익숙하지 않은 낯선 구조,
너무 정연한 벽돌 길,
이상하게 잘 흐르는 빗물 배수로 같은 데서
그 유산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유산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으로 전해진 기억입니다.
도시는 사라져도,
도시를 만든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지금도 인도인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 있고,
우리는 그 흔적을 무의식 중에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