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타르, 타블라, 라가의 세계
인도의 어느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바라나시의 강가에 앉아 강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멀리서 가늘게 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바람소리인가 싶었는데,
귀를 기울이자 분명한 선율과 리듬이 귀를 간지럽히더군요.
시타르의 울림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그 리듬을 타블라가 따라붙었죠.
그 둘이 만들어내는 선율 위에, 한 남자가 천천히 ‘라가’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도 전통 음악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시타르는 인도 고전 음악의 상징 같은 존재입니다.
여러 개의 줄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울려 퍼지는데,
그 소리는 마치 안개처럼 퍼지면서도 안으로 파고드는 깊이가 있습니다.
특히 라비 샹카르(Ravi Shankar) 같은 거장이 세계 무대에서 이 악기를 알리면서
비틀즈를 비롯한 서양 뮤지션들에게도 강한 영향을 주었죠.
시타르는 단순히 소리를 내는 악기가 아니라,
연주자의 ‘감정’과 ‘시간’을 함께 연주하는 도구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도 음악에서 리듬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닙니다.
타블라는 손바닥과 손가락만으로 수십 가지의 음색과 타격을 만들어내며,
박자를 넘어선 ‘언어’를 들려줍니다.
연주자들은 리듬을 외워 연주하며,
그 리듬 하나하나에 고유한 이름과 감정이 있습니다.
그걸 ‘보르’(bol)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연주 전에 소리로 읊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죠.
이 박자의 세계는 인도인의 내면 질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혼란처럼 보이지만 정교한 구조,
무작위처럼 들리지만 엄격한 틀 속에서 자유를 노래하는 감각.
‘라가’는 인도 고전 음악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장단과는 달리, 라가는 멜로디의 틀이자
시간의 감각, 감정의 색깔을 지닌 선율의 구조입니다.
인도에선 아침에 연주하는 라가,
해질 무렵에만 부르는 라가,
비 오는 계절에 어울리는 라가가 따로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곡의 종류가 아니라,
우주의 순환과 인간의 감정 리듬을 음악으로 번역한 체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라가를 제대로 듣기 위해선
그날의 날씨, 시간, 청자의 마음가짐까지 고려하는 게 맞는 방식입니다.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리듬 그 자체라는 걸 인도에서 체감하게 됩니다.
인도 고전 음악은 배워야 한다기보다,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하루를 열며 부르는 선율,
기도 속에 녹아든 타블라,
명상 후의 정적을 깨우는 시타르의 떨림.
그 모든 것은 단지 예술이 아니라
인도인의 정신적 생활을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아주 오래된 전통이지만
오늘의 인도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시작과 끝을 음악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밤, 시타르 한 줄이 공기를 가릅니다.
그 떨림은 당신의 하루와 감정, 그리고 시간까지 데려갑니다.
이것이 인도 음악의 힘이고, 인도 문화의 숨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