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직물과 염색 기술

사리의 문화사

by 형형색색

처음 인도에 왔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긴 건 사람들의 옷이었습니다.

특히 거리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여성들의 사리.

그건 단순한 천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과 전통, 계절과 감정까지 걸쳐 입은 풍경이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인도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각기 다른 직물의 촉감과 색,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직접 보고 만지게 되었습니다.


반디니 – 점과 점 사이의 이야기, 라자스탄의 색

라자스탄에서 가장 먼저 접한 건 ‘반디니(Bandhani)’였습니다.

작은 매듭들을 묶어 염색하는 방식.

그저 염료가 스며든 천이 아니라,

수백 개의 매듭 하나하나에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 있죠.

염색 후 매듭을 풀면, 그 자리엔 작은 점들이 남습니다.

그 점들이 모여 꽃이 되기도 하고 파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이 반디니 무늬는

신부가 결혼식 날 걸치는 사리에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 무늬를 보고 처음엔 단순한 패턴이라 생각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그 안엔

가족의 바람, 여인의 인내,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 같은 게 녹아 있었습니다.


칸치푸람 – 남인도의 웅장함이 직물로 흐르다

남쪽으로 내려가 타밀나두의 칸치푸람에 닿으면,

사리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집니다.

여기는 실크의 고장, ‘칸치푸람 사리’의 본고장입니다.

이 지역의 사리는 황금 실로 장식된 두꺼운 실크가 특징입니다.

문양은 종종 힌두 사원의 조각이나 자연을 닮아 있고,

두루마리를 펼치듯 펼쳐 보면

직물 하나에 신화와 사원, 기도와 자부심이 들어 있습니다.

이건 사리이자 갑옷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결혼식, 제례, 큰 행사를 위해 만들어지는 이 사리는

한 여인이 삶의 중요한 순간에 걸치는 ‘의식’이자 ‘표현’입니다.


바틱 – 왁스의 기억을 따라가는 자바식 염색의 흔적

보통 인도 하면 바틱보다는 인도네시아를 떠올리는 분들도 많지만,

인도에도 오래전부터 바틱(Batik) 스타일의 왁스 저항 염색이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구자라트나 벵골 지방에서는

이 염색기술을 응용한 텍스타일이 발전했죠.

뜨거운 왁스를 붓으로 그린 후, 염료에 담갔다가

다시 왁스를 걷어내는 반복 작업.

그 결과는 마치 누군가의 기억이 천 위에 덧칠된 것처럼 보입니다.

바틱 문양은 즉흥적인 듯 보이지만,

정해진 틀과 흐름이 있어 마치 음악처럼 반복됩니다.

저는 이 직물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왁스가 남긴 선 하나하나가

이 지역 장인의 호흡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 위의 시간, 인도 직물이 말해주는 것

이렇게 지역마다, 기법마다 다른 사리와 직물을 보다 보면

인도는 정말로 ‘입는 문화유산’을 지닌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멋으로 입는 옷이 아니라,

혼례와 장례, 축제와 일상, 신과 인간 사이의 공간까지

한 겹 한 겹 쌓여 있는 천의 나라.

염료 냄새가 배어 있는 좁은 작업장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직조하는 이들의 손길을 떠올리면,

그 사리가 단순한 직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를 담은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그곳에서 사온 낡은 사리를 꺼내 만져봅니다.

약간의 바람결, 손에 닿는 거친 실크의 감촉,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시간들.

그건 옷이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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