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AI과 그림쟁이 1편
최근 지브리 스타일 AI 모델이 공개되면서 업계는 떠들합니다. 이 글을 보고 있을 여러분 중 다수는 그림을 그리며 수익을 내고 있거나, 그런 삶을 꿈꾸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아마 적잖은 절망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까지 AI는 누군가의 화풍을 직접적으로 학습하고 그것을 대규모로 배포하는 일을 공공연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성되는 이미지도 애매하게 중립적이거나, 누군가의 스타일을 은근슬쩍 모방한 수준에 그쳤죠. 그마저도 ‘눈치’ 보면서 조심스레 사용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릅니다. GPT가 나서서 마치 공식 인증이라도 하듯 말합니다.
“누군가의 고유한 화풍은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저작권도 없어. 자유롭게 학습시켜서 써도 돼. “
뿐만 아니라 이제는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의 퀄리티도 눈에 띄게 올라갔습니다. 과장되고 어색했던 초기 디지털 이미지와는 달리, 점점 더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만 수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일정한 캐릭터 유지도 가능해졌으니, 이젠 만화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착한 AI그림일꾼은 클라이언트 말에 토 달지도 않습니다.
그림 AI가 등장한 지 2년동안 그 사이 우리는 무엇을 목격했을까요?
많은 유튜브 채널들은 더 이상 내용에 맞는 이미지를 검색하지 않습니다. 대신 AI 이미지로 콘텐츠의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광고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SNS나 웹사이트 광고 배너이미지는 이미 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TV 영상에서도, 그리고 대형 게임이 아닌 이상 소규모 게임 업계에서도 AI 활용은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자료를 찾는 핀터레스트에서는 AI로 생성된 이미지가 발에 채일 정도로 넘쳐납니다.
(대충 AI 이미지)
ㄴ who is the artist?
ㄴ ai
(뭔가 이상하다싶은 이미지는 꼭 이런 댓글이 있더랍니다)
처음엔 AI 이미지에 거부감을 가졌던 사람들도, 반복 노출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사람 손으로 그린 것보다 퀄리티는 떨어집니다. 그리고 사실, 대중도 그걸 압니다. 대중은 바보(!)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최고’를 고르진 않습니다. 특히 지갑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패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질 좋은 옷을 만지면 그 옷이 고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구매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저렴한 보세 옷을 사고, 입고, 버리고, 또 다시 삽니다. 이미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럴듯한 외견을 가진 ‘보세 이미지’를 굳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의 AI는, ‘보세’라고 부르기조차 머쓱할 정도로 퀄리티가 올라왔습니다.)
그렇게까지 좋은 이미지가 필요하지 않은 곳들은 모조리 저퀄리티 AI 이미지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미지가 필요한 상업적 작업들, 즉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수많은 일자리들은 줄어들 겁니다.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화풍의 가치도 희미해집니다. AI가 학습하지 않은 독특한 스타일을 만든다고 해도, AI에 넣고 돌리면 끝입니다. 이미지의 희소성은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미지는 그림만이 아니라, 사진, 동영상, 디자인 등 디지털상의 거의 모든 시각 콘텐츠를 포함합니다.
즉, ‘이미지’ 자체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 옹호자들은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산업혁명 당시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새로운 기술이 또 다른 일자리를 만들었다. 지금의 AI시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저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려 다르게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p.354
그러니 과거 산업혁명을 들먹이며 지금의 AI 혁명을 단순히 비교하는 건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마주한 이 변화는 시대도, 기술도, 성격도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간과하는, 가장 중요한 착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19세기의 마차 몰이꾼이 아닌 말의 운명을 맞을 수 있다. 마차 몰이꾼은 택시 기사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말은 점점 고용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해 결국은 완전히 퇴출됐다.“
—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p.60
슬프게도, 우리는 ‘몰이꾼’이 아니라 ‘말’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림을 그리는 우리는 “그래도 이건 나만의 기술이야!”라고 말합니다. 말도.. 예전엔 그런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제주도 승마체험장에 계십니다)
그리고 만약 지금 아무리 재빠르게 택시기사가 되었다 해도, AI는 계속해서 진화합니다. 지금 ‘말’의 신세를 면했다고 할지라도 다음 번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또다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새로운 기술에 맞는 ‘숙련된 지식 노동자’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숙련도는 단순한 재교육이나 빠른 적응만으로 충당되기 어려운 속도와 수준입니다.
이것은 비단 그림업계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닙니다.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직업들은 이러한 대혼란의 격변을 겪게 될 운명입니다.
그렇다면 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2편에서 계속)